나는 꽤 어릴 적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생활고보단 당시엔 사고 싶었던 게임기가 있어서 했고 커서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했다. 굉장히 많은걸 해본건 아니지만 한번 하면 꽤 오랜 시간 했다. 짧게는 6개월에서 길었던 건 2년 정도까지. 주말만 하는 것도 있었다.
일에 익숙해지기까지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저마다 공통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손님을 대하는 방법이나 어디서 물건이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비슷한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유형은 다르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시키거나 가르쳐서도 아니었다. 누군가의 일을 대신하게 되면서 그렇게 되었다.
가장 오래 일한 피시방의 경우엔 다른 시간을 대신 서주는 것도 많이 했는데, 시간대마다 손님의 성향이 다르고 그에 따라 해야 하는 일이 다르다는 것을 배웠다. 가장 많은 시간이 몰려오는 점심시간은 반복적인 일이 많다. 사람이 한가한 새벽은 청소나 컴퓨터나 소프트웨어 점검, 물건을 채우고 주문하는 일 등 가게를 준비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많이 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만 했다. 가게가 한가한 아침이나 늦은 저녁시간에 어떻게 그 자리를 채울 것인지, 한번 온 손님을 계속 오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금 이 피씨방에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같은건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뜻이 없기에 묻지 않고 그저 시키는 것만 했고 그 상황에 필요한 것만 했다.
나무가 아닌 숲을 보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은 현상이 아닌 구조를 보라는 말이고 시스템을 보란 뜻이다. 나는 나무를 보았고 시스템에 관심이 없었다. 만약 그때 사장님에게 가게에 대해 좀 더 상세히 묻는다면 아마 이것저것 알려주었을 정도로 친했지만 묻지 않았다. 그래서 그 단계에서 머물게 되었다. 현상에 따른 일방식은 노동소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기껏해야 좀 더 높은 연봉의 노동자가 될 뿐이다. 나의 시급은 늘었지만 결코 높은 금액을 받을 순 없었다.
당시 왜 그런 궁금증을 갖지 못했을까? 아는 게 없어서였기 때문이다. 질문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궁금한게 없어서가 아니라 아는게 없으니 궁금증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당시의 나는 그랬고, 그 버릇은 오랜 사회생활에도 이어졌다. 여행지를 그냥가서 몸으로 체험하는 것도 좋지만, 그 지역의 역사나 배경을 알고 보면 더욱 재미있다. 그러다 궁금한게 생기면 질문하며 더 많은 경험을 하게 된다.
구조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의 선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흐름이 보이고, 흐름 속에 기회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창의력과 통찰력을 키워야 한다. 그러나 당시엔 몰랐다. 세상엔 거저 얻는게 없다는걸 너무 늦게 깨달았지만 그래서 따라잡기 위해 매일 마라톤을 뛰듯 한다. 앞으로의 인생이라도 잘 챙겨보고 싶단 욕망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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