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덕근 Aug 29. 2019

어떡해야 승인받을 수 있을까

일을 하다 보면 타 부서에 이것저것 요청을 들어주게 된다. 시스템을 개발, 관리하는 역할이 주라 업무 특성상 그렇게 된다. 그래서 타 부서에 의뢰하는 일보다 의뢰받는 일의 빈도가 훨씬 많다. 아니 거의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어떤 때는 일을 흔쾌히 받는데 반해, 어떤 때는 거부감이 들어 거절하거나, 시간을 미루는 경우가 있다. 심할 때는 안 되는 이유를 만들기 위해 두뇌를 풀가동하기도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생각해보면 내가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과 어떻게든 미루려 했던 일에는 일의 경중보다는 다른 요소가 더 중요했다. 원칙대로라면 먼저 요청 오거나 또는 급한일을 일을 먼저 하는 선입선출 방식으로 해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런데 종종 그런 것을 잊고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데드라인을 넘길 정도로 미뤄두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일찍 끝낼 수 있는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루는 경우가 있다.



# 일을 가리더라


며칠 전 타 부서에서 업무 요청이 왔다. 일을 가만히 듣다 보니 대충 어느 정도 기간에는 마무리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현재 팀 내에서 더 중요시되는 일이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은 반드시 성공적으로 안착시켜야 하는 일이다. 때문에 요청 온 타 부서 분에게 일을 착수하려면 조금 오래 걸릴 수 있겠다 대답했다. 우선순위가 높은 프로젝트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다른 일을 더 할 수 있다는 것은 무리에 가까웠다. 그래서 우리 측 입장을 이야기했고 착수 날짜를 미루게 되었다


다음날 오후 경쟁업체에서 푸시가 날아왔다. 독특한 이벤트를 한다는 알림이었는데 이벤트 내용을 읽어보니 우리 쪽에서도 비슷한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도 이런 거하죠'라며 이야기했다. 다행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그 이벤트는 여러 이유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서 뒤로 미뤄졌다.


그 순간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요청이 온 타 부서의 일은 미뤄질 수밖에 없다고 말해놓고, 왜 이번 일은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이야기한 걸까? 두 개의 일은 업무량이 비슷하진 않았지만 적지 않은 시간을 쏟아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한쪽은 해보자고 말했고, 한쪽은 미루자고 말했다.


무엇을 우선순위에 둘까


사람은 합리적인 존재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방금의 사례는 부적절한 듯 보인다. 일의 경중, 혹은 업무난이도에 따라 수용/거부의 의견을 내비친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라는 감정적인 부분에 의거해 판단했다. 업무에서는 이성을 가지고 냉철한 판단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이번같이 어긋나는 사례가 처음은 아니었다.


사람은 어떤 정보를 받아들일 때 이성보다 감정과 무의식을 먼저 느끼게 된다. 사실 이 과정이 없었다면 인간의 두뇌는 진작에 파업했을지도 모르겠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영국의 수도가 어디예요?라고 물어본다면 쉽게 런던이란 대답이 들려온다. 그런데 영국에서 10번째로 큰 도시 이름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는데요'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다. 반면 컴퓨터는 이 10번째 도시가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리소스를 모두 파악하고 대답한다. 인간은 반사적으로 대답이 나가는 반면 컴퓨터는 모든 것을 다 스캔해보고 알고 모름을 판단한다. 모른다는 말을 1초도 걸리 않고 대답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두뇌가 풀가동되지 않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방법이다.


누구나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똑같은 일인데 어떤 때는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반면 어떤 때는 열과 성을 다해서, 밤을 새워서라도 찾아내는 경우가 있다. 이로 미루어보아 인간은 판단을 해야 할 때 감정이 우선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누가 진행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회사생활을 유심히 살펴보면 누군가는 결재를 올리는데 쉽게 승낙을 받는데 반해 누군가는 자주 거절당한다.  누군가는 서류가 작성되는 방법에 따라 결정이 달라진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합리적인 이성으로 생각해봐도 이 말이 맞는 거 같다. 그러나 실은 누가 작성하고 보고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요소가 더 크다.


우리는 감정적인 이유로 결정하고 논리적인 이유를 댄다
- <협상 바이블> 중


이 말은 함축적이지만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생각보다 인간의 판단능력은 굉장히 빠른 편이다. 그래서 어떤 사안에 대해 들었을 때 그것이 가능할지 안 할지에 대한 판단 역시도 빠르게 진행된다.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것과 실제 행동되는 것 사이의 간극은 어느 정도 존재하더라도 그래서 이것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결정하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판단이 서고 나면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이유들에 살을 붙인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목적과 결과보다 수단과 과정에 온 정신을 쏟다가 중요한 본질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 쉽게 승인받는 사람들.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회사 생활의 대부분은 협상으로 이루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와 타인의 상황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때 일을 진행할 수 있다. 협상은 서로 만족하는 합의점을 찾는다는 목적성을 띤 행위다. 따라서 상대방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파악해야 그 부분을 공략하여 업무 부분에 참조할 수 있다.


명확한 선을 긋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신뢰다. '저 사람이 가져온 일은 내게 부당하지 않을 것이다'는 믿음, '저 사람은 신뢰할만하다'라는 것이 있다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하게 된다. 반대로 허무맹랑한 일을 가져오거나 혹은 불필요해 보이는 일, 혹은 내게 불리해 보이는 일을 가져오는 것이 빈번한 경우였다면 부정적 관점에서 검토하게 된다.


협상에서 불신은 숨겨진 거래비용을 증가시킨다. 눈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드는 시간, 비용, 에너지, 인력낭비는 생각보다 크고 이 과정에서 협상 담당자는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반면 지속적으로 신뢰관계를 형성해온 상대방과의 협상은 숨겨진 거래비용을 현저히 줄이고 시간을 단축시킨다. 이는 협상에 대한 만족도와 직결된다. - <협상 바이블> 중


신뢰라는 것은 어떻게 쌓을 수 있을까? <협상 바이블>의 저자 류재언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신뢰모델을 나눴다.


Able: 핵심 역량을 보여줄 것
Believable: 솔직하고 진심으로 대할 것
Connected: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할 것
Dependable: 일관되게 행동할 것


일을 잘하는 사람, 그래서 믿을만한 사람에게서 오는 결재서류는 그 사람이 가져왔다는 이유만으로 허락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평소 일을 잘 해내지 못하는 사람, 혹은 부정적 이미지를 가진 사람은 일을 가져와도 쉽게 승인하지 않는다. 일의 프로세서나 문서의 꼼꼼함을 더 살펴보게 되고, 더 깐깐한 조건을 들이밀게 된다. 협상을 위한 비용이 증가하게 되고 작은 꼬투리에도 다시 점검해 보자고 미루게 된다.




내게 일감을 가져다주는 사람들과 나 사이에는 묘한 교류가 흐른다. 어떻게 일을 맡겨야 좋을지 조심스러워하는 상대방과, 어떻게 하면 이 일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나 사이에 생기는 일종의 갈등 같은 것이다. 타인에게 일을 요청한다는 것은 일거리를 만들었다는 의미가 되고 수용하는 사람에게는 일이 늘어난 샘이다. 그래서 서로 조심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 둘의 관계가 평소 신뢰를 쌓고 있지 않았다면, 혹은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이었다면 과연 흔쾌히 받아줄 수 없을 것이다.


큰 약속을 못 지키면 이유도 알 수 있고 변명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작은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이유를 모른 채 변명할 기회도 없이 멀어지게 된다. - <협상 바이블> 중


내가 하고 있는 행동들은 나의 평판과 신뢰를 구축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을까?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함께 보면 좋을 콘텐츠:

https://brunch.co.kr/@lemontia/52#comment


https://brunch.co.kr/@lemontia/49


https://www.youtube.com/watch?v=nZTp499Y3hE&t=1s



참고서적: 

<협상 바이블>

<열두 발자국>

<브랜드가 되어간다는 것>


작가의 이전글 백팩을 사달라고 품의서를 올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