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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근 Sep 01. 2019

일요일, 카페에서 사색한 것들

# 부지런한 사람들


매주 토요일 저녁이 되면 내일 어디에 가서 책을 볼까 생각한다. 초반에는 많은 고민과 선택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3개 정도로 압축되어 있다. 회사를 가거나, 할리스를 가거나(24시간), 동네 카페를 가거나. 


연초에는 회사에 자주 갔었는데 요즘은 잘 안 간다. 출근하는 기분이라는 그런 이유는 전혀 아니고,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기 때문에 오히려 안 가게 된다. 회사는 내게 익숙한 공간이며 주말이라 아무도 없다. 즉 할 수 있는 게 많다. 사둔 책도 거기 있고, 유튜브를 크게 틀 수도 있고 엎드려 잠을 자도 된다. 선택할 수 있는 폭이 굉장히 넓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은 마치 내방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마 이런 경험들 있지 않을까. '카페에선 책이 잘 읽히는데 집에선 책이 잘 안 읽히더라'같은. 그런 이유로 요즘은 잘 안 간다.


두 번째로 고려되는 곳은 24시간 운영되는 할리스다. 정확히는 어느 곳에 있는 할리스다. 내가 선호하는 의자가 있는데, 바로 그 매장에 있기 때문이다. 24시간에다가 선호하는 의자도 있으니 금상첨화 아닌가. 그래서 대체로 주말에는 7시~8시 사이로 도착한다. 오늘도 그런 기대로 가봤는데 2층에 사람이 이전과 달리 북적인다. 내가 원하는 자리를 살펴보니 이미 다 차있다. 아니 여러분 오늘은 일요일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동네로 왔다. 그곳을 가기 위해 지불한 버스비는 다소 아까웠지만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금요일에 들린 서점에서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라는 책을 서서 조금 봤는데 초반에 중국 입국심사에서 거절당한 경험을 적은 파트가 있었다. 그 사람이 거절에 대해 분노하거나 그러지 않았다고. 갈 수 있으면 좋고, 못 가면 쓸거리가 늘어서 좋다고 했다(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대충 그런 뉘앙스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 이야기가 묘한 위로가 되었다.


이곳도 이제 사람들에게 제법 알려졌는지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이 차였는 걸 보고 '세상에 부지런한 사람이 참 많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일시적인 현상일지 지속적 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게 믿기로 했다. 왠지 그게 내게 자극 거리가 될 거기 때문에 그러기로 했다.



# 카페에 가는 이유


적당히 통제되어 있는 공간은 사람에게 몰입감을 준다. 집이라는 더 편한 공간보다 굳이 돈을 내고 카페를 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적당히 통제되어 있는 공간은 내가 해야 할 것에 집중하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할 일이 너무 많을 때는 도리어 할 일을 하지 못한다.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게 되고, 하다가 금세 다른 생각이 나 집중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로 이미 유명하신 강원국 씨는 자신의 저서인 <강원국의 글쓰기>에서 매일 아침 글을 쓴다. 글을 쓰기 위해 매일 아침 일어나 산책을 하고, 카페에 들러 커피를 사고,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거실에 앉아 글을 쓴다. 이것을 매일 반복하고 그 시간에 다른 일이 들어오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게 반복된 학습이 그를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었다.


강원국 씨의 사례처럼 방안에 특별 용도를 위한 공간을 만든다면 굳이 카페를 찾아다니기 위해 전전긍긍할 필욘 없겠지만 아쉽게도 내방은 그런 구조와는 거리가 멀다. 컴퓨터가 놓여있고, 모니터가 놓여있고, 마음대로 음악을 틀어도 되었다. 음악을 틀기 위해 유튜브를 켠 순간 나는 진다. 다른 매력적인 콘텐츠가 나를 반기고 있고, 나도 모르게 그것들을 클릭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의지가 약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인정했다. 그래서 카페로 나선다.



# 지금 어디에 귀 기울이나요?


어느 순간 이것저것 따지는 게 많아진 거 같다. 이 카페는 화장실이 불편해, 여기는 음악소리가 커, 여기는 의자가 불편해 등 다양한 것을 고려하게 되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모든 것을 만족하는 곳은 없다는 점이다. 고민이 길어지는 이유는 고만고만한 것들을 이리저리 재야 할 때이다.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선택지는 고민을 길어지게 하고 머뭇거리게 만든다.


처음 카페를 들락거릴 때는 그냥 앉을 수 있는 공간이면 다 좋았다. 책 하나 보는데 뭐 그리 중요하겠느냐 라는 생각을 하며 장소를 고르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지 않은 거 같다. 그런데 요즘은 갈 카페를 정하는데 적어도 10분 이상, 길게는 1시간도 고민하는 거 같다. 이리저리 따지다 보니 낭비되는 시간도 적지 않다. 경험이 쌓이다 보니 더 좋은 곳을 찾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긴 하나, 그것이 카페를 가는 이유가 아님에도 그렇게 되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따라가 보니 이전에는 환경에 나를 바꾸는 게 익숙했다. 의자가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음악소리가 크면 그것대로 신경 쓰지 않고 이용했다. 그런데 지금은 완벽한 환경이 있고 내가 그것을 이용하길 원하는 방식으로 우선순위를 선택하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완벽한 공간은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것이다. 아니면 돈을 많이 지불하거나.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그곳에서 할 것들인 거지, 그곳의 상황이 나의 기분과 감정을 좌지우지하게 두어선 안되었다. 스스로가 점점 유연성이 떨어져 가는 느낌이었다.


"당신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지요? 당신이 배운 것,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지요?"
"저는 사색할 줄 압니다. 저는 기다릴 줄 압니다. 저는 단식할 줄 압니다." - 싯다르타


이전에 읽은 싯다르타에서 이 구절은 내게 어떤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이 말이 왜 중요한지 조금은 알 거 같다. 나는 내 몸이 요구하는 어떤 욕망들에 점점 목소리를 기울이면서 정작 중요한 욕망에 귀 기울이는 것에 등한시했다. 그렇게 점점 참을성은 없어지고 인내력은 줄어들면서 몰입할 수 있는 어떤 공간만 찾았고 환경 탓만 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쓴 이유는 그러지 말아야겠다 라고 스스로를 다짐하기 위한 것이다. 잘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의식적 노력의 힘을 믿는다. 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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