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덕근 Sep 10. 2019

부모가 아이를 내버려 둘 때 더 잘되는 이유

학창 시절 나는 지독히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학창 시절이 끝나는 그 시점까지 어떤 드라마틱한 일 하나 없이 일관되게 공부를 못했다. 언젠가는 엄마가 참다못해 학원이라도 다닐래 하면서 넣어줬지만 6개월도 못 다녀 그만두었다. 과외도 종종 받았지만 마찬가지였다. 공부에 취미가 없다 보니 어떤 것을 붙여놔도 금세 그만두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그러려나 보다'싶었는지 내버려 두었다. 이후로도 내가 가고 싶단 말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나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 속을 썩이지 않아서인지, 정말 나를 믿어줘서인지 알 순 없지만 어쨌든 엄마는 내게 그런 것에 대해 전혀 터치하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 나서 왜 그랬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어차피 니 인생인데 내가 가타부타할게 뭐 있냐. 그냥 니 인생 살아. 힘들면 네가 힘들지 내가 힘드냐'라고 말씀하셨다. 딱히 감당하지 못할 단위로 사고 친 적은 없었기 때문에 별로 터치하지 않은 거 같단 생각도 든다.


# XX 하는 사람이라 부르는 게 익숙한 사회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면 선생님의 관심이 몰리거나 '저 애는 공부를 잘하는 애'라고 주변에서 부르기 시작한다. 부르지 않더라도 암묵적으로 그렇게 이해를 한다. 물론 반대편도 있다. 공부를 잘 못하거나 말썽을 자주 일으키는 사람은 주변에서도 그렇게 부르거나 대우를 받는다. 사회생활에서도 똑같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을 못하는 사람, 말만 번지르한 사람, 게으른 사람, 지각을 잘하는 사람, 보고서를 잘 쓰는 사람 등 상대방이 가진 어떤 것을 칭하는 일이 익숙하다.


그런데 이 익숙한 신호가 당신을 평범한 사람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누군가가 나에게 일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가 있다. 일을 열심히 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아예 무시하거나. 어떤 것을 취하는지는 개인의 성향이지만 여기에는 하나의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바로 '일을 못하는 사람'이라는 신호를 지속적으로 받는다는 것이다.


일이라는 것은 참 애매하다. 어떤 일은 내가 가진 것을 십분 발휘하여 쉽게 풀어낼 수 있는 것임에 반해 어떤 일은 내가 전혀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색하여 시간도 오래 걸리고 대체로 잘 해내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것을 퉁 쳐서 그 사람에게 일을 잘하고 못함을 판단한다. 문제는 다음이다. 그것을 기반으로 상대방을 평가하여 그렇게 신호를 주기적으로 주게 된다. 부정적 신호를 계속 받는 사람은 스스로를 생각할 때 자괴감에 빠지기 쉽다. 혹은 실망감으로 짓눌릴 수도 있다. 그것이 꼭 말이 아니어도 그렇다. 인식이 하나의 신호가 되어 내게 지속적으로 주입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신호는 점점 현실이 된다.


보통 사람들은 교실에서 밀려난 학생들을 노력의 부족으로 판단하지만 심리학자들은 노력을 하게 만드는 환경의 신호에 주목한다. 그들이 관찰할 때 성적이 낮은 학생들은 상위권 학생들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고난도 문제를 의욕적으로 풀려하지 않고 이미 자신은 풀 수 없다고 먼저 생각한다. 이것은 노력과 무관한 문제다. -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


신호가 점점 현실이 되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더욱 발전한다. 못하는 것을 개선하기 위해 모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방향을 잡아야 할 시간에 엉뚱한 방법으로 노력하기 시작한다. 부정적인 신호는 본질을 놓치게 하기 쉽다. 당장 눈앞에 깨진 독을 쳐다보며 그것을 채우는데 급급하다. 중요한 것은 깨어진 독을 보수하는 게 아니라 왜 거기에 물을 채워 넣어야 하는지, 물을 어떻게 저장할 것인가가 중요한데 말이다.



# 평범한 길을 향해 가고 있는 건 아닐까


최근에 브랜드 관련 인상 깊은 글을 읽었다. 거기서는 브랜드의 본질을 차별화라고 말한다. 이미 적지 않은 서적에서 차별화를 언급했을 때에는 잘 들리지 않던 말이 왜 이제야 내 머릿속에 콕 박힌 걸까. 나는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사이에서 통용되는 브랜드의 본질을 어떤 특별한 것, 이벤트 적인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 본질이 결국 차별화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통하는 신호에 물들어져 있을 때 나는 새롭게 생각하기보다 기존의 생각 방법을 고수했다. 브랜드라는 용어의 본질을 보기 위한 노력을 하기보다 그것이 어떻게 쓰이는 가에 대해 더 많이 관심을 기울였다. 그렇게 정작 중요한 것은 점점 숨어버리고 화려한 것들만 눈과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파편 된 지식에만 매달려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특별한 존재가 되길 희망한다. 그리고 유명한 사람은 저마다의 특별함이 있다. 그 특별함이 타인과 다른 점으로 부각되고 장점으로 발휘되어 인지도가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에 가면 이런 것들이 모두 사라진다. 전체를 위해 개개인이 가진 독창성, 차별성은 사라지고 획일화된 것만이 남는다. 획일화된 것의 본질은 그것을 지켜보고 관리하는 사람이 편해진다는 점이다. 소수가 다수를 돌보기 위해서는 획일화된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래야 효율적으로, 골고루, 많이 돌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같은 이유 때문에 학교의 주인공은 아이가 아니라 선생이 된다.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류에 속해 지지 않고 삐져나온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은 처음에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끊임없이 설득당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모두 손을 놓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흔한 예상으로 그 아이가 더 나쁜 행동을 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전혀 다른 결과치를 내보일 때도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태어날 때부터 금을 만져본 아이가 계속 금을 만지게 되고, 가난한 아이는 주류에서 밀려나 주변부를 맴돌고 있다.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대다수의 평범한 아이들은 계속 중간 지점에서 평범해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주류에서 밀려난 아이들 중에 새롭게 조명을 켜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글자를 제대로 학습하지 못하고 성적표에서 처참한 기록을 보이던 학생들이 왜 새롭게 등장할 수 있을까? 겉으로 보면 지독한 노력들이 관찰된다. 그러나 그것을 가능하게 한 힘은 바로 그들이 애초 주류에서 밀려나면서 환경 속의 부정적인 신호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다른 길을 걷는 아이들은 전혀 다른 신호를 만난다. -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


그들이 지독한 노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주변의 소음이 차단되었을 때였다. 제한된 집중 상태에서 대상에 몰입되어 더 많은 관찰을 하고 더 세심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보게 만들었다. 만약 그들이 평범한 신호를 지속적으로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에서 소개된 나디아 코민의 사례는 매우 흥미롭다. 그녀는 미술적 재능은 뛰어났지만 언어 능력 발달이 늦었다. 이에 걱정한 부모는 자녀가 안정적인 길을 걷는 모습을 지켜보고자 좋은 교실과 좋은 선생님들에게 보내졌다. 그러나 이 같은 결정은 전혀 다른 결과를 몰고 왔다.


나디아는 전통적인 학교 시스템에 맡겨지면서, '제한된 집중'이 해제가 되고 특별했던 미술의 재능을 잃게 되었다. 나디아의 뛰어난 차단과 집중력은 더 많은 언어를 익히고 일상 속에 살아가는 법이 주입되며 희석되어갔다. (...) 이는 가장 비참한 재능의 균형이다. -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평범하게 살게 되면서 이전에 가졌던 깊이 생각하는 방법, 그림에 대한 몰입감이 죽었다. 그녀는 비범함에서 평범함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다.




환경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여기서 환경이라는 것이 저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저자는 평범할 수 있는 환경을 차단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깊게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금을 만져본 아이가 계속 금을 만지게 되고, 가난한 아이는 주류에서 밀려나 주변부를 맴돌고 있다.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대다수의 평범한 아이들은 계속 중간 지점에서 평범해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주류에서 밀려난 아이들 중에 새롭게 조명을 켜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글자를 제대로 학습하지 못하고 성적표에서 처참한 기록을 보이던 학생들이 왜 새롭게 등장할 수 있을까? 겉으로 보면 지독한 노력들이 관찰된다. 그러나 그것을 가능하게 한 힘은 바로 그들이 애초 주류에서 밀려나면서 환경 속의 부정적인 신호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다른 길을 걷는 아이들은 전혀 다른 신호를 만난다. -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


지금 당장 주변의 부정적 신호를 차단해보자. 그리고 나만의 세계에 깊게 몰입해보자.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2차원적으로만 보지 말고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던져도 보자. 이런 일련의 행동이, 남들이 볼 때는 시간낭비처럼 보이는 행동이 나의 관찰력을 자연스레 상승시켜 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부정적 신호로 인해 위축되어 평범해지는 것으로 회귀한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다시 좋아하는 것을 찾는다. 언젠가 이 루틴을 끊어야 한다. 남들의 말에 흔들리지 말자. 조금 특이하면 어떤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데 말이다.



홀로 행하고 게으르지 말며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말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은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숫타니파타> 중





함께 보면 좋을 글:

https://brunch.co.kr/@lemontia/56

https://brunch.co.kr/@lemontia/50


참고서적: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



작가의 이전글 친한사람이 전부는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