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갈 때 많이 들은 말 중 하나는 '학창 시절에 만난 친구보다 좋은 친구는 없다'였다.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들은 말 중 하나도 '공부할 때 친한 친구가 진짜 친구다'라는 말을 들었다. 먼저 산 사람들의 말이니 한 귀로 흘리진 않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학창 시절의 우정이 지금까지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예전에 잠시 함께 했던 프로젝트를 계기로 꾸준히 만나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 친밀도를 형성하는 것은 잦은 만남이 아니다
우리는 친구를 구분한다. 그리고 그 구분의 기준이 대부분 '어느 시절에 함께 한 사람인지'를 기준으로 구분한다.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사이, 대학을 같이 보낸 사이, 이전 직장에서 같이 보낸 사이 등 그렇다. 통상적으로 그렇게 나뉘다 보니 '학창 시절만 한 친구가 없다'라는 말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그 시절이 대부분 친구를 편견 없이 사귀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기 때문에 남다른 친밀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부라는 공통의 적(?)을 두고 있기에 서로 응원하면서 보낼 수 있는 것도 그 시절이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은 학창 시절에 비해 서로 만나는 빈도가 매우 낮다. 그리고 학창 시절에는 협력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서로 얼굴 붉힐일이 없어 좋은 면만 보고 자란다면, 직장에서 만난 사람과는 얼굴 붉힐 일도 종종 발생한다. 이때 잘 해결하면 오랫동안 가는 인연이 되는 거고, 한번 틀어지면 다신 안 볼 사이가 된다. 흥미로운 건 학창 시절에 보낸 친구와의 관계도 비슷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로 보아 사람과의 친밀도는 특정 시점에 만난 것이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자주 만난다고 해서 영원히 함께 간다고 할 수 없는 것 같다.
이 두 가지의 전제조건을 내려놓으면 당장 내일 만날 사람과도 평생을 함께 할 수 있을 만큼 매우 돈독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인관관계에서 깊은 관계만이 의미를 가지고 긴밀해질 수 있을까?
# 깊은 관계만이 의미가 있을까?
사람을 사귈 땐 상대방과의 깊은 관계를 기대한다. 누군가 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 사람이랑 친해'라는 말이 좋지 '그냥 아는 사람'이란 말을 듣는 게 좋을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또 이야기를 나누거나 함께 놀 때도 친한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게 마음이 편하다. 친밀도가 높기 때문에 심리적 안정감이 생기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도 좋을 거 같단 생각이 든다. 곤란한 상황이 처했을 때 어떤 부탁을 하면 도움을 줄 것 같기도 하다. 배신하지 않을 거 같고, 적어도 나에게 해가 되는 행동은 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친밀감이 모든 것을 대변해준다면 친한 친구에게 사기를 당한 경험이라든가, 얼굴을 붉히고 다시는 안보는 사이가 된다거나 하는 상황이 벌어질 리 없다. 상황은 상황이고 친밀감은 친밀감일 뿐이다. 문제는 사람은 상황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친밀감이 높다고 해서, 관계가 깊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관계로 유지될 거란 보장이 없다. 가장 가까운 예가 바로 가족이다. 이론적이라면 가족은 항상 나를 위해, 혹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존재여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가장 많이 싸우는 사람이 바로 가족이다. 때론 밖에선 하지도 않을 심한 말을 가족에게 하기도 한다.
# 당신에게 진짜 도움이 되는 친구는 따로 있다
언젠가 한번 프로젝트를 했을 뿐인데 그 사람이 내게 직장을 소개해준 경험이 있거나 주변 사람이 그렇게 취업하는 경우를 들은 적이 있다. 요즘은 이전보다 자주 목격하는 거 같다. 그들은 왜 타인을 소개해주는 걸까? 누군가를 소개해줘야 하는 입장에서 자기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을 거 같으면 소개를 해주는 게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친밀도에 따라 내게 기회를 주기 전에 친한 사람에게 먼저 알리는 경우도 있겠지만 한 사람이 친한 사람을 둔다 해도 그 수가 많을 순 없으므로 내게 기회가 올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만약 상대방과 전혀 인연이 없었다면 결코 없을 일이다.
소규모 신뢰 그룹을 보유함으로써 많은 비즈니스를 공유하고 배우고 성장하며 서로의 관계를 더욱 다져나갔다. 동시에 적당히 거리를 두는 관계(약한 유대관계)를 많이 보유함으로써 전체 환경을 살펴보고, 더 많은 기회를 찾을 수 있었다. - <친구의 친구>
이는 노출의 법칙을 따른 것이다. 많은 사람과 인연이 있기에 기회에 내가 노출되는 확률이 높아지는 현상이다. 이는 그들이 새로운 정보를 접하게 될 때 내게 알려줄 기회를 높이는 방법이다. 이런 정보를 친한 사람보다 '그냥 아는 사람'에게 듣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친한 친구일수록 이런 정보를 주는 게 쉽지 않다. 친밀할수록 비슷한 환경에 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비슷하기 때문에 어떤 걸 제안하는 기회가 빈번하질 못하다. 게다가 서로 직업마저 다르면 더욱 그렇다. 만약 나의 직업이 마케터이고 친구의 직업이 회계사라고 한다면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그러나 어느 마케터 모임에 가서 나를 노출하면 내게 기회가 올 가능성이 더 높다. 모임 사람들과 깊은 관계로 발전하지 않아도 말이다. 비슷한 업종에 있으니 서로에게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으며 서로 좋은 정보를 공유하기가 유리하다. 그래서 적당히 아는 사람에게 소개받아서 직장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여행이 좋은 이유는 낯선 곳에 나를 던짐으로써 새로운 것을 경험하기 위해서다. 그 안에서 평소라면 몰랐을 나를 발견하고, 새로운 감정을 경험하며, 외부와의 경험을 연결시키는 짜릿함을 사랑해서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짜릿함을 동반한다. 상대방을 알아간다는 새로움도 있겠지만, 그가 가진 세계에 이제 막 접촉할 것이기에 흥미로운 것이다.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로 충분하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 친숙한 사람들은 내가 미처 모르고 있는 유용한 정보나 실마리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 그들은 대체로 지인들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당히 친한 사람과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지인을 공유하지 않는다. 때문에 정말 중요한 것은 누구를 아느냐가 아니라, 그 사람과 연결되어 있는 네트워크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적당히 친한 사람과의 인맥은 대체로 서로 다른 인맥 집단을 갖게 되며 때론 거기서 내게 매우 유용한 정보가 올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어떤 사람들을 만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한 번쯤 생각해 볼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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