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덕근 Sep 06. 2019

죽은 목표 살리기

이제 곧 1년. 지금 회사에 입사하고 다닌 기간이다. 얼마 전 이 사실을 알고 벌써 1년이나 됐다는 것에 놀랐다. 항상 일이 쌓여있어서 그것들을 처리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지내온 탓이었다.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는 몇 가지 목표들이 있었다. 그 목표들은 나와 회사 둘 다 윈-윈 할 수 있는 전략으로 구성했다. 그래야 내가 일을 주도하게 될 때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 좋은 일은 회사에 어필하기에도, 호응을 얻어내기에도 힘들다. 운 좋게 넘어갈 때도 있겠지만 회사생활의 대부분을 대립하고 투쟁하며 보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인상을 주면 내가 어떤 일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대체로 믿음을 가지고 지켜봐 준다.


때문에 처음 들어갔을 때부터 나는 개인 브랜딩에 신경 썼다. 가장 많이 신경 쓴 것은 역시 실력적인 부분이다. 내가 어필하기 가장 좋은 것은 내가 항상 하고 있는 일, 혹은 맡은 일에 효율성을 올리고 관련된 객관적 지표를 내밀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엉뚱한 것에서 잘하려고 하는 것보다 우선 내가 맡은 일을 우선으로 잘해놓고 다른 일을 벌여야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대로 내가 하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다른 일에 기웃거리면 그것만큼 꼴사나운 것이 없다. 나는 지금 하는 업무를 하기 위해 회사에서 채용된 것이지 예정에도 없던 것을 하기 위해 채용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실력이 곧 인성이다'라는 말을 어느 정도 공감하는 바다.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목표하는 바가 있어 입사를 했으니 목표한 것이 얼마나 진척되고 있는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러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 잊혀가는 목표


올해 여름부터 예상치 못한 업무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부분 소모성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해도 해도 계속 요청이 들어왔고 그 일들을 처리하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되었다. 일을 쳐내다 보니 시간은 잘 갔지만 어느 순간 허무함이 몰려왔고, 얼마 전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아직 한 것도 없는데 벌써 1년이라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둔 것이 없어 보이니 기운조차 나지 않았다. 정확히는 한 게 없는 건 아니지만(오히려 더 많은걸 했지만) 그것들은 내가 입사할 때 생각하던 원하는 것, 하려 했던 것과 동일한 것은 아니었다. 해야만 하는 일이었고 빨리하면 더 좋을 일이라 자연스레 요청 오는 일에 몰두하다 보니 나의 시간은 손에 쥔 모래처럼 줄줄 새어나갔고, 어느덧 나는 기계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지 못했다. 그리고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다 보니 목표가 점점 희미해져 갔다.


# 죽은 목표 살리기


반복적인 일을 쳐내기 위해서는 '못해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단축시킬만한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못한다고 말해봤자 평판만 나빠지고 더 최악은 어차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결할 수 없는 것에 구시렁대며 부정적인 감정을 키우는 것보다 어떻게 해야 빨리 해결할 수 있을지, 자동으로 처리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게 훨씬 건설적이고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고 있던 일들을 단순화와 자동화로 바꾸기 시작했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덕분에 주말이 홀라당 날아가 버렸다.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켜기가 꺼려지는 적이 몇 번 있었는데 한번 손에 잡으면 2~4시간을 꼬박 날려먹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번 손에 잡으면 좀처럼 놓지 못하는 성격 탓에 이것저것 만들었고 몇몇 개는 가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가져오는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비슷한 요청 건이 2개나 들어왔었고, 본래라면 건당 30~60분 동안 씨름해야 할 것을 간단한 버튼 하나로 10분 내에 결과가 나와 전달할 수 있었다. 당장은 20분을 절약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것들이 쌓이다 보면 분명 더 큰 보상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는다.


무엇보다 불필요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이것은 처음에 내가 생각한 회사와 나의 윈-윈 관계에 가장 적합했다. 회사에 '못한다'라고 말하는 대신 결과물을 내고,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들어간 기술을 경험하고, 기록하고,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이젠 무엇을 할지 구체적으로 노트에 적어두었다. 매일 쓰는 노트에 적어둔 것이니 매일 눈에 들어온다. 자주 보지 않으면 잊히는 것처럼, 사는 것에 치여 내가 정작 해야 하는 것을 놓치는 것처럼 되기 싫어 자주 눈에 띄는 곳에 적어두었다.


떠오르는 일들을 써 나가는 중간중간 고개를 들어 흘깃 앞으로 쳐다보면 다섯 가지 큼직한 목표가 눈에 들어온다. 이는 사명서에 따라 새해에 작성하고 필요할 때 조금씩 수정되는 소위 연간 목표들이다. 이들은 자칫 매일 해야 하는 일에 치여 정작 중요한 삶의 목적과 방향을 잃지 않게 해주는 이정표 기능을 한다. - <나는 아마존에서 미래를 다녔다>




'생각하지 않고 살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는 표현이 있다. 벌써 이 문구를 접한 지 몇 년이 되었지만 나 역시도 이런 저주에 자유롭지 못하 다는 걸 깨달은 지금이다. 누군가 내게 자기 계발서를 왜 보냐는 질문을 해온다면 단연코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기억력이 좋지 못해서 자주 잊어먹으니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상기해야 해야 하고 때문에 자기 계발서를 본다'라고. 삶에 치여서 서있는 미래가 아니라 내가 그리고 꿈꾸던 미래가 내 눈앞에 펼쳐지기를 싶기 때문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는 밥을 먹기 위해서도 아니고, 잠을 자기 위해서도 아니고, 놀기 위해서도 아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을 때, 그리고 그것이 차츰 실현되어가고 있을 때 인간은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해지며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




함께 보면 좋을 글:

https://brunch.co.kr/@lemontia/52

https://brunch.co.kr/@lemontia/49


작가의 이전글 창의성을 갖기 위한 두가지 조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