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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근 Sep 18. 2019

엄마랑 실랑이를 벌였다

어젯밤에도 괜히 엄마의 말에 신경질적으로 받아쳤다. 아침을 먹으면 속이 부대끼는 거 같다며 간편식을 인터넷으로 주문해달라 말했다. 아침을 안 먹으면 되지 굳이 그런 걸 찾아먹을 필요가 있냐고 물었다. 내가 볼 때 문제점은 아침을 먹고 나서 바로 누워 한숨을 잤던 것이 소화불량의 원인이라고 보아 그렇게 말했는데 반해 엄마는 속이 불편하기 때문에 잠을 잔다고 했다. 어찌 됐든 행동 부분만 보면 아침을 먹은 후 잠을 자는 것은 사실이다.


한바탕 실랑이가 있은 후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만약 내가 타인이 비슷한 걸 요청했다면 그 사람과 나는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을까? 최근에 보기 시작한 [멜로가 체질] 드라마를 보면서 조금 오버랩이 되었다.


등장한 임진주는 이전 남자 친구인 김환동과 7년을 교재 했다. 교재 하는 초반에는 분위기가 좋았지만 1년 즈음이 되고 나서부터는 싸우는 장면을 연속해서 보여준다. 그들이 싸우는 이유를 가만히 살펴보면 대부분 말투에서 시작한다. 이미 짜증이 잔뜩 나있는 말투로 말을 건네거나, '넌 이해할 수 없어'라는 전제가 깔린 상태로 대화가 시작한다. 그들은 이미 말을 꺼내기 전부터 상대방과 싸우는 듯 보였다.



그 커플들은 이미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든 관계없이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싸움이 익숙해진 것이다. 그럼 그 대상은 어디에서 온 걸까? 아마 상대방에 대한 나의 기억 속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가상의 상대방을 머릿속에 그려 넣고 그를 바라볼 때마다 화가 솟구쳐 올랐을 것이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연애 초반에 서로 사이가 좋은 이유는 머릿속에 '사랑하는 상대방을 이미 그려놓음으로써 마음이 충분히 너그러워져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일종의 프레임을 씌운 상태로 상대방을 보는 게 더 익숙하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라는 말이 어려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나 역시 이런 말을 처음 들어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는 이유는 상대방이 지금껏 내게 보여온 모습들이 이미 머릿속에 콕 박혀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런 현상이 나쁘기만 한 걸까? 아쉽게도 우리는 이런 관습적인 판단에 많이 의지한 채 살아간다. 상대방에 대한 기억이 매번 리셋된다고 해보자. 그럴 경우 대화 내용이 대부분 겉돌거나 진득하지 못할 것이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모르는 것에 따라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가 전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현관문을 매번 열 때마다 밀어야 하는지, 당겨야 하는지, 옆으로 밀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관계가 돈독해지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개인적인 생각으론 상대방의 태도를 가지고 감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을 최대한 배제하거나 새롭게 갱신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랫동안 미웠던 상대가 몇 년 동안 보지 않았다가 갑자기 만났을 때 반가운 경우가 있다. 그가 반가운 이유는 이전에 가졌던 기억과 감정이 희미해진 상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싫은 포인트가 발견되면 '네가 그럼 그렇지'라며 돌아오게 된다. 즉 상대방을 어떻게 바라보냐는 것은 오롯이 나의 감정에 의해 시작된다.


일전의 사태에서 나는 엄마에게 그런 감정이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평소에도 엉뚱한 논리로 자기 합리화를 잘하는 엄마를 이번에도 그런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엄마의 말처럼 속이 불편해서 그런 거라면 간편식으로 식사를 해결하면 좀 덜할 것이라는 엄마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상대방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도, 그 사람이 처한 환경을 알 수 없다. 그 와중에 내가 상대방을 보고 느끼는 것은 이미 과거의 것이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때문에 내가 하는 말은 하나의 의견일 뿐이며 그 이상의 역할을 하진 못한다. 상대방이 그렇다고 하면 의견을 더하는 것에서 끝내야지 그 의견이 맞네 틀리네를 따질 수 없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나 스스로이듯, 상대방 역시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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