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도 멘토가 있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멘토라고 생각할 어떤 결정적 인물을 만나본적이 없어서다. 회사에서는 존경할 사수를 만난다고들 하는데 내게는 그런 운조차 없었다. 입사하고 나서 몇 달 뒤에 한 명 두 명 퇴사하더니 어느새 사수가 부재하는 상황을 자주 접했다. 그게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이젠 회사가 아닌 외부에서 찾아보기로 했지만 그마저도 쉽진 않았다. 어떤 계기가 있어야 멘토를 만날 수 있을 텐데 속된 말처럼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런 가능성은 점점 줄기만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멘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일을 하다가 막히거나,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누군가 길을 제시해주면 좋겠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멘토를 갈구하게 된 것은 책을 보기 시작하면서부터 였던 거 같다. 그전까지는 '어떻게든 나 혼자 알아서'하는 편이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인터넷을 뒤지든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든 하면서 상황을 잘 넘겼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자연스레 '이 정도면 괜찮지'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문제에 대한 상황을 넘기는 스킬뿐 아니라 원론을 공부해야 했는데, 당시에는 그걸 몰랐다. 멘토가 필요한 이유다.
하고 싶은 또는 배우고 싶은 일이 있어 선생을 찾을 때는 지인에게 물어보거나 리뷰를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내게 맞을지는 전혀 알 수 없다. 내 기준에선 전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별다른 대안을 찾지 못했고, 그래서 책을 더 보기로 했다. 누군가 말한 것처럼 책은 위대한 스승이라고 했으니까.
실제 책은 좋은 스승이자 나쁜 스승이었다. 나쁜 스승인 이유는 책역시도 내가 보는 한계만큼만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별력이 없으면 머릿속을 이상한 지식으로 가득 채운다. 반대로 다양한 장점이 있는 스승이었다. 각각의 책이 좋은 것도 있지만 다양하게 읽음으로써 장점만을 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로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할 수도 있고, 흩어진 논리들을 취합해 나만의 이론으로 정립할 수 있게 돕는다. 나는 책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고 스스로 답을 했지만, 그 질문거리를 생각하게 해 준 것은 책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결국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에게서 어떤 영감을 얻는 것은 책을 보면서 영감을 떠올리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상대방의 좋은 점을 보고 닮아가고 싶은 것은 어쩌면 마음속에 멘토로 삼는 것과 다르지 않은 거라 생각이 든다. 즉 멘토는 내가 정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보면 세상 모든 사람은 나의 멘토다. 누구에게나 하나 이상의 배울 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때론 그게 내가 굉장히 싫은 모습이라 해도 저렇게 되지 말아야겠지 라면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 거 같다.
어떤 사람을 만날지 고민하고 찾기보다
지금 만나는 사람의 어떤 면을 볼 것인지를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