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나 블로그를 통해서 본 타나라의 문화는 왜 그리 좋아 보이는 걸까? 나는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살아가는데, 영상이나 사진에서 보이는 곳은 새로운 것 투성일 것 같고 온갖 상상이 떠오른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듯 여기엔 함정이 있다. TV든 블로그든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콘텐츠는 대부분 좋은 부분만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때론 다큐멘터리처럼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긴 해도, 매일을 살아가는 일상의 지겨움보다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체로 어느 나라의 문화가 좋아 보일 때는 지금 살고 있는 곳의 만족도가 떨어질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혹은 상대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을 때도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 사실 문화의 우월성을 결정하는 상당 부분은 경제적으로 뛰어난 나라인 경우가 많다. 나는 지금껏 미국이나 유럽에서 살고 싶다는 사람은 봤어도 동남아시아 어느 지역에 가고 싶다고 말한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나라가 문화적으로 향상될 수 있는 이유는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대량의 미술품을 사면서 거대한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세우거나 각국의 유명인사들을 초대하며 인기를 끌기 때문이다. 패션의 중심지인 뉴욕은 2차 세계대전 때 대규모 전쟁무기를 만들던 공장이 있던 곳이라 천장이 높은 곳이 많았는데, 전쟁이 끝난 뒤 특별한 생산품이 없어 폐허가 되다시피 한 곳에 예술인들이 들어가 살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예술품들, 예쁜 거리들이 자본가들의 눈에 띄게 되었고, 자본가들은 웃돈을 주며 그들의 집을 하나 둘 매수한다. 그러다 어느새 높아진 집값에 가난한 예술가들은 다른 곳에 터를 잡으러 떠나고 높은 가격대가 형성된 지역만 남게 된다. 한국에서는 홍대가 대표적 예다. 파리나 영국의 유명한 박물관은 20세기 세계를 호령하며 식민지의 예술품을 갈취하여 세운 것이다.
문화는 뛰어난 우열이 있는 게 아니라 나라마다 가지는 환경과 정서에 의해 결정된다. 만약 우열화 될 수 있는 것이라면 모든 나라는 획일화된 문화를 가지게 될 것이다. 상상해보면 얼마나 따분할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즉 문화에 우열을 가리는 것은 의미 없는 행위다. 무엇을 기준으로 우열을 가려야 할까? 경제의 규모로 봐야 할까 아니면 문명의 발달로 봐야 할까. 그러면 우리가 명시적으로 알 수 있는 GDP가 한국보다 낮은 동남아 국가들은 문화 수준이 낮다고 봐야 하는 걸까? 한국의 문화는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열등하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선진국이라는 환상에서 오는 우열 주의, 혹은 등수 매기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문화는 기본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기준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머물고 살면서 온몸으로 느끼는 경험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어느 관광상품이나 잠시 머무는 여행으로는 온전히 체험할 수 없다. 어느 문화든 생활과 연관된 활동을 하다 보면 고유문화에 자주 노출되고, 문화의 장단점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장단점 조차도 개인마다 느끼는 편차가 다르기 때문에 단면만 보거나 한국과 비교하여 어떤 것이 좋더라 라고 말하는 것도 어느 정도 필터 하여 들어야 한다.
결국 살다 보면 사람 사는 곳 다 똑같단 이야기를 한다. 특정 문화에 대해선 좋아할 수 있지만 그 좋은 장점이 어느 순간엔 단점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한국의 정 문화가 명절 같은 날에는 폭력 아닌 언어폭력으로 다가올 때도 있지만 내가 큰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도와줄 수 있는 것이 바로 혈연이다. 그러나 명절은 매년, 주기적으로 오는데 반해 인생에 큰 도움을 받을뻔한 일은 몇 년에 한 번, 혹은 아직까지도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빈도수가 높은 불편함이 체감상 더 크고 느껴진다. 즉 빈도의 문제이지 크기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물론 그 빈도가 사람을 미치게 한다. 끊임없이 잔소리하는 사람이 꼴 보기 싫은 것과 같은 이유다.)
타인을 배려하는 문화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유가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특징에 가깝다. 당장 오늘 해결할 끼니에 전전긍긍하고 있다면 타인을 배려할 여유가 있을 리 만무하다. 만약 선진국이 타인을 배려하는 따뜻함으로 무장 헸다면, 드라마나 영화에서 등장하는 냉철 하거나 잔인한 인간성을 표현할 리 만무하다. 우리가 타지에서 친절함과 배려를 받는 이유는 우리가 낯선 사람이자 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자인 이유도 한몫한다. 마음이 따뜻해서 도와주는 것도 있겠지만, 현지인에 비해 여행자는 대부분 약자의 위치에 서있게 되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에게 한국사람은 대부분 친절하다.
결국 어느 정도 판타지적인 요소가 섞여 있는 샘이다. 내가 사는 곳이 힘든 이유는 매일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여행지가 즐거운 이유는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즉 여행지도 살아야 하는 곳이 된다면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힘듬을 느끼게 된다. 타인에게 간섭하지 않는 문화가 좋아 보이는 이유는 간섭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받았기 때문이며 그로 인한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섭이 전혀 없는 곳에 가면 외로움과 고독감을 느끼게 된다. 해방은 잠시지만 금새 익숙해지고 다시 사람이 그리워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