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는 만큼 일하는 것, 가성 비적으로 일하는 걸 추구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제시한 연봉은 내 가치를 온전히 대변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받은 만큼만 해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르다. 나는 나 자신을 증명하는데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와의 약속 또는 회사와의 계약으로 체결된 연봉은 나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 한때 나의 화두였고, 실제로 해낸 것들, 즉 이뤄낸 것들을 기반으로 증명해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생각하니 받는 만큼 일하면서 스스로의 능력을 숨기는 것보단 마음껏 발휘하고 발판으로 더 나아가는 게 낫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때문에 나는 항상 전력질주를 목표로 한다. 그러나 에너지나 육체적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완급조절은 한다. 다만 조절의 기준이 일을 의도적으로 줄이는 것은 아니다. 일의 질과 양보다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조절하는 것이다. 나는 일정 수준 이상의 속도를 유지 & 향상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며,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걸 선호한다. 그래야 나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전력질주를 하면 두 가지가 좋다. 첫 번째로 방금 말한 대로 나에 대한 이해도가 올라간다는 점이다. 내가 어느 부분에서 지치고 더 힘을 낼 수 있는지, 현재 미흡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있는 그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한계까지 몰아붙이면 거기서 나오는 데이터들은 대부분 순수하고 직설적이다. 그래서 피드백도 직관적이고 개선사안도 명확히 나온다. 메타인지가 높아진다.
다른 하나로는 아리송한 사안, 혹은 무언가 하기에 앞서 생기는 두려움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된다. 전력질주를 한다는 것은 현 상황에서 생기는 많은 고민사항을 잊고 하고 있는 것에 극도로 몰입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창조성, 브레인스토밍, 지적인 모험, 까다로운 상황 헤쳐 나가기. 이 모든 일들이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두려움을 떨쳐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마도 전력질주일 것이다. 전력 질주할 때, 내적인 속삭임은 모두 흩어진다. 최대한 빠르게 달려 나가는 데에만 집중한다. 전력 질주할 때, 무릎 통증도 느껴지지 않는다. 땅이 고르지 않을까 걱정하지도 않는다. 무조건 달릴 뿐이다. 물론 영원히 전력 질주할 수 없다. 딱 100미터만 그렇게 할 수 있다. 전력질주가 가능한 것은 짧은 순간만 지속되기 때문이다. - <린치핀>
100m 달리기 선수가 훈련을 할 때 다칠 것을 걱정하여 전력으로 뛰지 않는다는 것은 넌센스일 것이다. 한계까지 달려봐야 현 위치를 가늠하고 기록을 확인하며 새로운 기록에 도전할 수 있다. 머릿속에만 있는 나의 기록은 도전을 방해하고 안주하게 만든다. 때문에 실제로 달려서 진짜 나의 한계를 맞부딪혀봐야 현실과의 괴리를 좁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마찬가지로 어느 분야에 전문성을 기르는 중이라면 자신의 한계를 끊임없이 두드리고 부셔야 한다. 그래야 발전할 수 있다.
화장실 갈 것을 염려하여 밥 먹기를 꺼려하는 사람은 없다. 죽음이 두려워서 오늘을 포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기왕 사는 인생 오늘이 지나면 다시 오지 않은 오늘과 매일에 가끔씩 전력으로 부딪혀보는 건 어떨까? 그 어느 경험보다 강렬하고 의미 잇는 경험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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