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검도 – 선두리 갯밭마을 – 분오리돈대 – 동막해수욕장
계절 사이에 틈이 있다면, 낙엽이 지고 눈이 내리기 전까지 무채색으로 기록된 시간 어디 즈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무렵의 사람들은 매일 조금씩 낮아지는 기온 외에 모든 것에 무심하다. 그래서 눈치 채지 못했을 미세한 틈, 가을과 겨울 사이의 흐릿한 경계를 비집고 강화도로 향했다. 추수를 끝낸 논과 잎을 떨군 나무와 해안선을 멀리 밀어낸 갯벌까지, 모든 게 비어 있었다. 그 무채색의 여백을 따라 계절의 틈을 살폈다.
썰물 때면 강화 갯벌은 지평선을 드러낸다. 이웃한 섬 사이에 바다가 사라져 걸어서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섬의 크기도 수십 배는 커진 기분이다. 어떻게 이렇게 넓은 갯벌이 형성된 걸까. 강화도는 바다에서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과 만난다. 강물을 따라 흙과 모래가 바다로 유입되면, 무거운 모래는 가라앉고 모래보다 작고 가벼운 입자는 파도를 타고 바다 위를 떠돌다 갯벌에 쌓인다. 서해는 경사가 완만하고 평균 조차가 8~9m로 큰 데다가 섬이 많아 물의 흐름이 느리기 때문에 갯벌이 발달하기 좋은 조건이다. 강화도와 다리로 연결된 동검도 역시 여의도보다 작지만 썰물 때면 수십 배 커진다.
갯벌은 육지도, 바다도 아닌 독특한 생태계를 형성한다. 갯벌에 서식하는 생물과 염생식물은 바다로 유입된 육지의 오염 물질을 분해하는 역할을 하는데, 서해안에서 적조현상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이유도 갯벌의 정화작용 덕분이라고 한다. 초지대교를 건너 강화도 남쪽의 해안선을 따라 동검도로 가는 길, 물 빠진 바다 위에 갯골이 훤히 드러나고, 상대적으로 파도의 영향을 덜 받는 방파제 쪽으로 염생식물이 빽빽하다.
동검도는 강화도 남쪽의 섬이다. 과거에는 남쪽 지방이나 중국에서 오는 배가 강화해협을 지나 한강을 통해 서울로 진입했는데, 그 ‘배들을 검문하는 동쪽의 검문소’라 해서 동검도라 불리게 됐다. 동검도는 강화도와의 사이에 1985년 연륙교가 놓이면서 육지와 이어지게 됐다. 그런데 다리를 제방 형태로 지어 해수가 유통되지 않아 갯벌의 침/퇴적 현상이 심화됐고 갯벌 생태계도 건강성이 악화됐다. 이에 2017년 해수가 유통될 수 있는 교량으로 교체하고, 갯벌 생태계를 복원 중이다.
동검교를 건너 외길을 따라 가다 보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왼쪽이 큰말 방면이고 오른쪽이 서두물포구 방향이다. 빛을 받아 매혹적으로 반짝이는 갈대를 찾아 포구 쪽으로 이동했다. 해안선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도로 사이사이로 갈대 군락이 얼굴을 내민다. 자세히 보니 바싹 말라 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얇은 구름 사이에 갯골처럼 패인 빈 공간으로 빛이 쏟아진다. 그제야 얼어붙었던 갈대가 부옇게 일어난다. 무채색의 세상에 내려 앉은 빛이 시리게 반짝인다.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는 서두물포구에는 추운 날씨에도 캠핑과 차박을 즐기려는 이들로 붐빈다.
분명 갯벌 위로 게들이 사뿐사뿐 거닐고, 말뚝망둥어가 펄쩍펄쩍 뛰어다닌다고 했는데 한참을 지켜봐도 미동이 없다. 조업을 마치고 그물을 정리하는 어부에게 물으니 ‘날이 추워 겨울잠을 자는 모양인데, 물이 고여 있는 곳의 돌을 들추면 바람을 피해 숨어 있는 망둥어를 볼 수 있을 거’라고 답한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방파제 끝을 가리키며 저기에 가면 물고기를 낚으러 온 낚시꾼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 덧붙인다. 촌부의 손끝이 가리키고 있는 방파제는 갯벌만큼 길다. 갯벌에 비스듬히 몸을 뉘인 어선 몇 척을 지나 방파제 끝에 이르자 바다로 내려가는 계단 끝이 만실이다. 바닷물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세월을 낚는 사람들, 멀리 물과 풀이 만나는 곳에 새들도 나란히 앉아 세월을 낚고 있다. 결국 망둥어는 보지 못했다.
섬을 나가기 전 큰말로 향했다. 목적지는 지난 4월에 지어진 작은 예배당, 천주교 사제이자 유리화를 그리는 작가인 조경호 신부가 세운 7평짜리 성당이다. 종교를 초월해 누구든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도록 예배당 문은 항상 열려 있다. 하루에 두 번 밀물과 썰물이 소리 없이 들고 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소망할까. 스테인드글라스 위로 볕이 쏟아져 예배당 내부를 밝힌다. 예배당 옆 갤러리에서는 조경호 신부의 유리화가 전시되어 있다.
동검도를 나와 선두리로 향하는 길, 구름이 점점 두터워진다. 예측할 수 없는 섬 날씨, 모퉁이를 돌 때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구름의 속도가 바뀐다. 선두리는 뱃머리를 돌려야 부두에 배를 댈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한민국 경관대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선두리에는 아기자기한 카페와 음식점, 펜션과 캠핑장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현대식으로 정비사업을 마친 어판장에는 횟집이 나란히 들어서 있고, 고깃배가 드나드는 선착장 쪽에는 부잔교가 놓여 있다. 갯골을 사이에 두고 갯벌 위에 기우뚱하게 배들이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한쪽에는 천연기념물인 저어새를 관찰할 수 있는 전망대가 놓여 있는데, 귀한 몸이 쉽사리 자태를 드러내지 않는다. 모든 시간이 멈춘 느낌이다.
해가 기울자 메마른 갯벌에 촉촉하게 바닷물이 차오른다. 분오리항에는 동막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해안데크길을 설치해뒀다. 바다에 물이 들어오면 들어온 대로, 물이 빠지면 빠진 대로 서해를 감상하기 좋다. 강화도에서 가장 큰 모래톱을 자랑하는 동막해수욕장은 여름이면 갯벌체험을 하면서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한데, 바람이 날카로운 겨울 해변에는 인적이 드물다. 하늘이 붉어지자 발목까지 내려오는 두툼한 패딩을 입고 일몰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동막해수욕장 남쪽에 곶처럼 튀어나온 분오리돈대에 올랐다. 돈대는 적의 침입을 감시하고 방어하기 위해 해안에 쌓은 방어 시설인데, 분오리돈대는 해안으로 돌출되어 흐르는 산의 끝에 위치한 지형을 그대로 살려 지었다. 동쪽 절벽 위에 돌을 쌓고 그곳을 기준으로 반대쪽에도 돌을 쌓아 높이를 맞추다 보니 바다 쪽으로 5m가량의 절벽이 만들어졌다. 분오리돈대는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는 데다가 시야를 가리는 나무가 없어 해가 뜨고 질 무렵이면 여행자가 모여드는 곳이다.
겨울 강화도 바다는 텅 비어 있었다. 넓은 백사장도 기대했던 파도도 없었다. 갯벌에는 바다생물이 살고 있다는 숨구멍과 새들의 발자국이 남아 있지만, 겨울잠이라도 자는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보호색을 입은 것처럼 바다도 하늘도 모두 무채색으로 무장하고 있는 듯했다. 색이 사라진 자리에는 바람의 자국이 남았다. 빛을 머금은 갈대는 은빛으로 출렁이고, 빠르게 지나는 구림 그림자는 갯벌 위에 거대한 추상화를 그려낸다. 촘촘한 바람 줄기가 계절의 빈틈을 채운다. 넓은 백사장과 사이다 포말처럼 부서지는 파도를 기대했던 마음을 내려놓았다. 계절의 빛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좁은 곳에서 넓은 곳으로 스며들길 기대하며 한해의 끝 서해에서 만난 회색빛 여백 위에 참회록 같은 일기를 쓴다.
Info.
강화도는 담수와 해수의 이동통로다. 썰물 때면 강에서 운반된 물질이 먼 바다까지 쌓이고, 밀물 때는 조류성 운반 물질이 섬 주위에 퇴적된다. 바다와 갯벌의 생태계가 궁금하다면 강화갯벌센터(032-930-706)에 들르는 것이 좋다. 갯벌은 물론 철새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소장하고 있으며, 실제로 탐사에 나설 수도 있다. 영화를 좋아한다면, 동검도 예술영화 전용 극장 DRFA365에서 시간을 보내도 좋다. DRFA는 ‘Digital Remastering Film Archive’의 머리글자 조합으로, 디지털로 재생시킨 영화 보관소를 말한다. 간단한 음료와 식사를 판매한다. 수익금은 극장 운영과 희귀 영화 구입 및 번역, 시나리오 작가 양성에 쓰인다고 한다. 프로그램은 홈페이지(drfa.co.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르무통 X 강화도] 시리즈 작가 소개
이미선
다양한 형태의 글을 쓰는 용역 라이터.
여행 매거진 <KTX Magazine>과 <AB-ROAD>를 거치면서 최근에는 주로 여행에 대한 글을 쓴다.
과거에는 여행하면서 감정을 메모로 남기는 것을 좋아했는데,
여행이 업이 된 후에는 여행지의 소리를 녹음하는 걸 더 좋아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