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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무통 LeMouton Oct 09. 2024

한글 따라 가을로

광화문 한글가온길에서 인사동 한글간판 거리를 거쳐, 회기동 세종대왕 박물관까지


서울에 깃든 한글을 찾아서. 



날이 좋아서, 신을 신었다. 해마다 조금씩 지각하는 가을이지만, 이번엔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늦어져 조바심이 났었다. 거짓말처럼 찬바람이 일었을 때 혼자 안도했다. 계절이 바뀌자 제일 먼저 밖으로 나가 걷고 싶었다. 발은 편하게, 옷과 손은 가볍게. 그렇게 한걸음에 서울의 심장부 광화문 광장으로 나왔다. 


평일 이른 시간인데도 외국에서 온 관광객으로 광장이 북적였다. 한 언론사의 조사에 따르면 서울의 랜드마크로 서울 시민은 한강을, 외국 관광객은 광화문을 꼽았다고 한다. 과연 산수화 병풍처럼 둘러진 산과 한국의 미감을 드러내는 고궁, 근대 건물과 현대 빌딩이 어우러진 광화문 일대는 서울의 모든 것을 응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광화문의 중심에 세종대왕 동상이 있다. 10월 9일 한글날을 앞두고, 한글을 기리는 여정을 이곳에서 시작할 참이다. 





#한글가온길 제1곳,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공기나 햇빛처럼 무료로 풍성하게 주어지기에 때때로 소중함을 잊고 지내는 것, 우리 한국사람에게 어쩌면 한글이 그런 존재가 아닐까? 지금 누구나 당연하게 쓰는 한글은 갖은 난관을 거쳐 창제됐고, 목숨 걸고 지켜 오늘에 이르렀다. 그래서 1년에 한번은 한글의 소중함을 다시 기억해내야 한다. 한글날은 그런 날이다. 문자의 날을 국경일로 정해 기념하는 나라 또한 오직 우리뿐이다.



광화문 광장을 하나로 모으는 힘은 모두 세종대왕 동상에서 나온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가을 하늘 때문일까? 오늘따라 동상이 더욱 뚜렷하고 묵직하게 보인다. 조선왕조 500년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임금이지만, 이 동상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인자로운 표정과 왼손에 들고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실제로 온화한 성품에 실리적이었던 세종대왕은 백성에게 도움을 주고자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한글은 오늘날까지 우리 가운데 생생히 살아 있는 업적이다.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세종대왕은 백성의 무지함을 언제나 마음 아파했다. 시골의 한 여인이 무지로 인해 누명을 쓰고 고초를 겪는다는 얘기를 듣고 손수 재수사에 들어가 누명을 벗겨준 일도 있다. 백성을 가르치기 위해 그림책을 만들기도 했으나 이 또한 한계가 있어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자를 창제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문자를 독점한 기득권 세력의 반대, 중국과의 외교적 갈등 등 수많은 난관에 부딪쳐 외롭고 고독한 싸움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한글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위대한 글자다. 그렇다면 그 위대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과학적 원리? 독창성? 디자인의 아름다움? 이 모든 것이기도 하지만 이를 뛰어 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쉽다는 것이다. 만백성이 쉽게 쓸 수 있도록, 그래서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무지로 인해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무엇보다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창제됐다. 한글은 세종의 애민정신 그 자체인 것이다. 


#이야기를 잇는 한글가온길




#한글가온길 제2곳, 세종문화회관 세종 예술의 정원 

광화문에서 청계천에 이르는 지역은 전체가 세종대왕을 기리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세종대왕의 이름에서 유래한 세종대로, 세종문화회관, 세종 예술의 정원, 세종로 공원, 세종마을. 그도 그럴 것이 세종대왕은 경복궁 옆 서촌에서 태어나, 경복궁에서 즉위하고 승하한 최초의 조선 임금이었다.


[르무통 타임트래블] 한글날 X 르무통 메이트 (다크네이비)


세종문화회관 뒤편에 세종 예술의 정원이 자리하고 있다. 공연을 보러 왔다가 바삐 지나치곤 했다면, 이번 가을엔 그곳에 머물면서 조용한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가만히 둘러보면 다양한 한글 조형물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온다. 한글을 기하학적으로 새겨 넣은 금속판, 보고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터져나올 것 같은 ㅎㅎㅎㅎ 조형물. 읽고 쓰기에 탁월한 한글은 특유의 조형미로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 된다. 세종문화회관 지하에서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아래로 이어지는 전시공간인 ‘세종이야기’에서는 한글창제, 해시계, 천문도, 국악 등 세종대왕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한글가온길 제3곳, 한글학회 

이야기의 흐름상 세종대왕 동상에서 여정을 시작했지만, 한글가온길의 시작은 사실상 표지석이 있는 한글학회 쪽이다. 한글과 가운데를 뜻한 옛말 가온이 합쳐진 한글가온길은 서울시가 2013년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세종대로 주변에 지정했다. 이 길을 걷다보면 마치 보물찾기처럼 한글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와 조형물, 공간을 발견할 수 있다. 시작점이 되는 한글학회는 한글에 있어서 세종대왕 다음으로 의미가 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낳았다면, 한글학회는 한글을 지켜내고 현대 한글의 체계를 완성했다. ‘나는 한글이다’라는 글씨 조형물이 붙어 있는 건물이 오늘날 한글학회 건물이다. 조선어연구회, 조선어학회를 거쳐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한글학회는 건물 입구의 주시경 선생 흉상으로 이곳이 어떤 곳인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글의 미학을 찾아볼 수 있는, 한글학회


한글학회 길 건너 편에는 10개의 그림 이야기가 설치된 나무 벽이 있다. 1443년 창제부터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 등록에 이르기까지 한글의 주요 장면을 10개의 이야기로 풀어놓았는데,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이를 테면 임진왜란 때 암호로 사용되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다. 한글가온길에는 이뿐만 아니라 자그마치 18개의 한글 조형물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생의 몸짓을 표현한 ‘삶의 나무’, 정서의 기본인 한글을 건축의 기본인 벽돌에 비유한 ‘한글벽돌’ 등 일상에 스며든 한글의 미학을 찾아보자. 




#한글가온길 제4곳, 주시경 마당

안타깝게도 이날 주시경 마당은 공사로 인해 들어가볼 수 없었다. 그러나 이곳 또한 한글가온길에서 가장 의미 있는 곳 중 하나다. 한글의 아버지, 겨레의 큰 스승인 한힌샘 주시경 선생을 기리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도심 속 작은 녹지 공간으로 조성된 이곳에는 두 개의 입상이 있다. 하나는 주시경 선생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구한말 한국에 들어와 한글 연구와 교육에 투신한 미국인 독립유공자 호머 헐버트 선생의 동상이다. 헐버트는 한글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라고 이야기했으며, 한국 최초의 한글 지리 교과서인 사민필지를 집필했다. 


[르무통 타임트래블] 한글날 X 르무통 메이트 (다크네이비)


1876년에 태어난 국어학자 주시경은 한글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우리 글에 한글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사람도 바로 선생이다. 그는 조선어연구회를 만들어 한글 연구와 현대화의 초석을 다졌다. 연구뿐 아니라 교육으로 한글의 대중화에도 힘썼는데, ‘주 보따리’라는 그의 별명은 교육할 곳이 있으면 책 보따리를 들고 어디든 찾아간 데서 붙여졌다. 일제에 나라를 잃은 그에게는 간절한 소망이 있었는데, 바로 우리말 사전을 만드는 것이었다. 우리말이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선생은 사전편찬을 통해 민족정체성을 지키고 독립을 이루고자 했다. 1914년,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으로 사전편찬은 중단됐지만, 그 씨앗은 훗날 큰 결실을 맺는다. 




#한글가온길 제5곳,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 기념탑

세종로 공원 한쪽에 담담히 서 있는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 기념탑. 일제강점기, 빼앗긴 것은 나라의 주권만이 아니었다. 우리의 말과 글까지 짓밟혔던 것이다. 서슬 퍼런 일제의 감시와 탄압 아래 한글을 지켜내는 일이 얼마나 지난했기에 이런 기념탑까지 세워졌을까? 탑 아래 빼곡히 적혀 있는 이름들, 목숨을 걸고 한글을 지킨 이름들이기에 이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담담히 서 있는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 기념탑


주시경 선생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중단된 한글 편찬 작업은 1929년, 한 인물의 귀국으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바로 국어학자 이극로 선생의 등장이다. 독일 베를린에서 유학했던 이극로는 영국의 오랜 지배로 모국어인 켈트어를 잃고 영어를 공용어를 쓰게 된 아일랜드의 현실을 보고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조선어학회 문을 두드리고 한글사전 편찬에 투신했다. 주시경 선생의 제자들이 주축이 된 조선어학회 회원들과 함께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들은 사투리를 모으고, 표준어를 정하고, 표기법을 통일해 나갔다. 


그러나 1936년 표준말 모음 발표회 자리에 도산 안창호 선생이 축사를 한 것이 빌미가 되어 일제의 감시망이 더욱 좁혀왔다. 어느 밤 갑자기 들이닥친 일제는 목숨과도 같았던 사전 원고를 빼앗아 갔고, 관련 인사 33명을 검거했다. 모진 고문 끝에 내란죄가 선고됐다. 회원들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최종 판결은 모두 유죄였다.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던 일제강점기도 갑작스러운 광복으로 막을 내렸다. 회원들이 옥살이를 한 지 3년 만이다. 그러나 석방의 기쁨도 잠시, 사라진 사전 원고 때문에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광복 24일 후 조선어학회로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경성역 창고에 조선말을 풀이한 원고 뭉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곳엔 400자 원고지 26,500여 장 분량의 원고가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사연은 이랬다.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재심을 신청했기 때문에 재판의 증거였던 원고가 폐기되지 않고 경성역으로 보내져 보관됐던 것이다. 말모이, 조선말 큰 사전 제1권이 1947년, 드디어 빛을 보게 됐다. 한글말 수호 기념탑이 간직한 고통스럽고 안타까운 순간들. 우리가 너무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르무통 타임트래블] 한글날 X 르무통 메이트 (다크네이비)




#한글가온길 제6곳, 한글 글자마당 

한글가온길에서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한글의 과학성과 현대성을 한눈에 직관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한글 글자마당이다. 실제로 이곳은 한글의 독창성과 과학적 원리를 알리고자 2011년 서울시가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 조성한 곳이다. 마당은 주춧돌 31개와 낱개 돌 78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글의 구성인 초성 중성 종성을 조합해서 만들 수 있는 글자 11,172개가 모두 새겨져 있다. 글씨를 자세히 보면 글씨체가 모두 다른 것을 볼 수 있는데, 공모를 통해 글씨를 받았기 때문이다. 다문화가정, 재외동포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한 글자 한 글자 내놓은 만큼 각 글자들에 담긴 사연도 다 다르다. 재미있는 것은 글자에 담긴 사연을 인식할 수 있는 큐알코드도 돌에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한글의 가장 놀라운 점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디지털 시대에도 정말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글자라는 것이다. 세종대왕이 500년 후의 세상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본질에 충실했던 그의 탐구와 비전은 이미 시대를 초월한 건지도 모른다. 


[르무통 타임트래블] 한글날 X 르무통 메이트 (다크네이비)




#인사동 한글간판 거리 

전통과 현대가 뒤섞인 인사동은 외국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장소 중 하나다. 인사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골동품이나 고미술뿐 아니라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화랑에서부터 사진과 판화, 영상을 전문으로 하는 갤러리까지 다채로운 예술적 면모를 보인다. 여기에 표구사, 전통찻집, 전통 음식점, 그리고 전통을 오늘의 생활양식으로 되살린 현대 사업가들의 결실까지, 인사동은 인사동만의 분위기가 있다. 이곳에선 특히 한글간판이 분위기를 주도하는데, 외국 관광객들이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한글 덕에 진짜 한국에 온 게 실감된다고 말한다. 


#전통과 현대가 뒤섞인 인사동


스타벅스, 지에스25처럼 외국어나 알파벳을 한글로 표기한 간판은 모습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한글이 외국어 또는 외래어와 맺고 있는 관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한글에는 여러 가치가 있지만, 모든 소리를 기록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놀라운 가치다. 영어, 불어 등 외국어는 물론, 자동차 소리, 동물 소리, 바람 소리까지 다채로운 소리를 표현할 수 있다. 애초에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목적 중 또 다른 목적은 한자음의 정확한 기록에 있었다고 한다. 다양한 외래어도 한국어인 요즘, 순우리말만 쓸 수는 없지만, 한글은 더 많이 써도 되지 않을까? 한때 전체가 한글이었던 인사동 간판이 다시 하나둘 영어 간판으로 바뀌는 것을 보니, 마음이 씁쓸하다.





#회기동 세종대왕 박물관 

소란스러운 시내를 벗어나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서 한글길을 마치고 싶었다. 이제 막 시작된 청명한 가을날이 발걸음을 회기동 세종대왕 박물관까지 옮겨주었다. 고종 황제의 후궁 순헌황귀비의 무덤인 영휘원과 의민황태자의 첫째 아들인 원손 이진의 묘 숭인원, 그리고 명성황후의 능터가 있는 홍릉숲까지, 박물관 주변은 조선왕조 500년의 마지막을 바라보게 하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녹지로 가득했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녹지로 가득했던 세종대왕 박물관


세종대왕 박물관 역시 아름다운 정원이 인상적이다. 1973년에 준공된 모던한 기념관 건물은 어느덧 50년 세월을 덧입고 당시의 시대정신을 드러내고 있다. 박물관에는 세종대왕의 성덕과 위업을 보여주는 다양한 전시물이 있다. 과학실, 국악실, 일대기실은 물론 한글실로 구성되었는데, 세종대왕 당시 펴낸 도서류와 주시경, 최현배 선생의 출간물 등 한글 역사 자료를 만나볼 수 있다. 또, 옥외에서는 세종대왕 동상과 함께 세종대왕신도비와 구영릉석물, 수표 등의 문화재가 전시되어 있다.


[르무통 타임트래블] 한글날 X 르무통 메이트 (다크네이비)


세종대왕 박물관 정원에 앉아 잠시 다리를 쉬어간다. 전시물 하나하나를 눈여겨보는 것도 좋겠지만, 그보다는 정원 나무 그늘에서 숨을 고르면서 책을 읽거나 글을 써보면 더 좋을 것 같다. 


공기처럼 언제나 곁에 있는 우리 말과 우리 글, 한글 따라 가을로


높고 푸른 하늘, 귓가를 간질이는 시원하고 부드러운 바람, 단풍들일 채비를 마친 색색의 나뭇잎, 가을 냄새. 그리고 공기처럼 언제나 곁에 있는 우리 말과 우리 글. 모든 것이 좋은 가을날이다. 


[르무통 타임트래블] 한글날 X 르무통 메이트 (다크네이비)


날씨 좋은 한글날, 서울을 거닐은 르무통 메이트 (다크네이비) ↓

벗고 싶지 않은 편안함, 르무통 (lemout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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