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여행 중 하루는 일찍 일어나야 한다. 시차에 시달리고 피로에 버거워도 어느 하루는 반드시 아침 일찍 준비를 마치도록. 파스테이스 드 벨렝 오픈런에 성공하려면 적어도 구시가에 있는 숙소에서 7시에는 나가야 하니까. 파스테이스 드 벨렝은 세계 최초의 에그타르트집이다. 그깟 에그타르트가 뭐라고 오픈런까지 하느냐 싶겠지만, 달콤한 에그타르트가 있는 벨렝지구 주변엔 달콤했던 포르투갈의 오래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벨렝지구, 하루쯤은 그곳에서 대항해 시대의 대서사시를 만나보기를.
여행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경우는 대개 두 종류다. 일출 같은 이른 아침이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을 봐야 하거나, 정해진 조식 타임을 놓칠 수 없거나. 리스본에서는 하나가 더 추가되는데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에그타르트를 먹어야 하는 날이다. 이렇게 말하면 에그타르트 맛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닐까 의심할지도 모르겠다. 리스본을 여행을 계획하면서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면 꼭 가보시라 권하겠다. 파스테이스 드 벨렝의 에그타르트가 얼마나 맛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전날 다른 곳의 에그타르트를 먹어보는 것이다. 리스본 구시가 곳곳에 에그타르트집이 있고 웬만한 카페에 디저트로 에그타르트가 준비되어 있으니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다. 다른 것을 맛보고 먹어보면 왜 오리지널인지 왜 아침부터 줄을 서야 하는지 납득이 간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해서 아침 식사로 부담이 없다.
파스테이스 드 벨렝의 에그타르트는 바로 옆에 있는 건물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시작됐다. 당시 수도원에는 수녀원도 함께 있었는데 수녀님들이 달걀흰자로 깃에 풀을 먹이며 노른자가 남아 시작됐다. 깃이 빳빳한 수녀복을 입은 수녀님들이 달콤한 냄새를 풍기며 만들던 에그타르트는 이제 전 세계적인 디저트가 됐다. 200여 년이 넘은 가게인 파스테이스 드 벨렝의 안으로 들어가면 세월이 지나면서 계속해서 확장을 한 널찍한 내부가 나온다. 이곳이 끝인가 싶으면 다른 통로가 나오는데 공간마다 포르투갈 전통 타일 장식 아줄레주가 멋스럽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달콤한 시간을 보냈을까 상상하면서 새삼스럽게 시간의 힘이 대단하다는 걸 깨달았다. 시간은 평범한 디저트 집을 역사적 명소로 만들었다.
리스본식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향하는 곳으로 따라 걷기만 하면 된다. 큰길을 하나 건너면 새하얗고 기다란, 거리를 압도하는 건물이 등장한다. 바스쿠 다 가마의 항해를 기념하기 위한 제로니무스 수도원이다. 이 건물은 100년에 걸쳐 지어졌다.
수도원 내부로 입장하려면 표를 예매하고도 긴 시간 줄을 서야 하는데 밖에 서 있는 그 시간이 지루하지 않다. 해양 생물, 식물, 조개껍데기 등의 자연 요소를 장식으로 많이 사용한 16세기 포르투갈에서 유행한 건축양식인 마누엘 양식으로 지어진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300m 내내 어느 하나 똑같은 장식이 없다. 밧줄, 그물, 닻, 해초, 물고기를 찾으며 긴 줄을 기다려 마침내 실내로 들어가면 캄캄한 공간에 계단이 하나 보인다. 사람들을 피해 조심스럽게 그 계단을 올라가면 입이 벌어지도록 아름다운 수도원의 내부가 등장한다.
아이보릿빛 석회암이 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아치와 공들여 짠 아름다운 레이스 같은 문양으로 장식된 회랑이 이어진다. 오래전 수도원의 수도자들은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고 그곳에만 머물기도 했다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라면 평생을 머물로도 괜찮을 것 같았다. 회랑의 안쪽은 정원과 푸른 하늘이 바깥쪽에는 엄숙하고 웅장한 공간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중엔 바스쿠 다 가마의 무덤과 페소아의 무덤이 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의 풍부한 건축미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페소아는 사후 50주년 이곳으로 옮겨졌다. 무덤이라지만 우리의 봉분을 떠올려서는 안 된다. 리스본을 대표하는 두 남자는 부드러운 빛을 띈 돌 안에 잠들어 있다.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달라진 21세기에도 절대로 대항해 시대 영광의 빛이 깎이지 않는 제로니무스 수도원의 앞쪽 강가에는 발견기념비가 있다. 바스쿠 다 가마 정원 옆 제국 광장을 지나면 엔리케 왕자의 500주기를 기념해 1960년 세운 것이다. 대항해시대를 가능케 한 것은 탐험 정신 가득한 엔리케 왕자였다. 그의 계획과 결단 그리고 지원이 없었다면 대항해시대의 주역은 다른 나라가 됐을 것이다. 발견기념탑은 엔리케 왕자 뒤에 선원, 지리학자, 시인, 선교사 등이 함께 조각되어 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등지고 광장을 지나 앞으로 걸으니 돛을 세우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가는 뱃머리를 표현한 기념비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600년 전 사람들에게 바다는 어떤 의미였을까? 날아서 이동한다는 것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었던 그 시절 바다는 그들에게 꿈이자 희망이고 도전이면서 좌절이었겠지. 그들이 바다를 통해 얻고자 했던 것들을 다 얻은 지금의 우리는 행복한가? 발견기념비 곁으로 길지도 짧지도 않은 거리를 찬찬히 걸어 나가면서 요즘의 우리들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다 이루어져서 더 이상 발견할 게 없다는 건 쓸쓸한 일이라는 그런.
달콤한 것에서부터 시작된 벨렝지구 여행은 벨렝 탑으로 마무리됐다. 바스코 다 가마의 위대한 발견을 기념해 세워진 등대 벨렝 탑은 테주 강을 지키는 요새로 쓰였고, 지금은 대항해시대를 책으로 배운 현대인들이 다녀가는 관광지가 됐다. 고딕과 르네상스가 섞인 마누엘 양식에 인도의 영향을 받은 첨탑, 지하감옥과 총독의 방까지 볼거리가 가득했지만 나는 사실 누군가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탑보다 그 옆의 정원이 더 좋았다.
탑을 중심에 두고 부채꼴처럼 펼쳐진 벨렝탑의 정원은 500년 전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리스본의 이야기가 있었다. 꽃을 피운 가지가 늘어진 나무 아래 돗자리를 깔고 아이와 노는 아빠, 아이스크림을 들고 뛰어다니는 아이들, 벤치에 앉아 지팡이 위에 양손을 포개 얹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노인들, 삶의 달콤함이 느껴지는 풍경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죽은 자의 위대함이 아닌 살아 있는 사람들의 위대한 하루가 얼마나 아름답던지. 그러니 리스본에 간다면 하루쯤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 달콤함과 웅장함이 번갈아 가며 감동을 선물하는 벨렝지구 여행을 위해.
<걸음 속의 유럽> 포르투갈 리스본2 산책은 르무통 버디(다크그린)와 함께했습니다.
원고 내 여행 코스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maps.app.goo.gl/CBfiwT1JAKyNi1BN9
포르투갈 리스본을 거닐은 '르무통 버디' 만나보기↓
벗고 싶지 않은 편안함, 르무통 (lemout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