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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 Oct 17. 2018

조용한 일 - 김사인

내맘대로 시 오독하기

조용한 일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 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우리네 삶은 선택의 순간들로 이루워져 있고 현재의 나를 이루는 건 그 선택의 결과라고 한다. 하지만 정말이지 무엇도 선택할 수 없는 정신적 경련의 순간들도 우리내 삶에는 분명 존재하지 않나.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선택만을 하며 다만 이 아픈 시간의 마디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밖에 할 수 없는 그런 시절들을 우리는 건너오지 않았나.

그렇게 ‘이도 저도 마땅치 않는 저녁’에는 그 어느 누구의 그 어떤 조언이나 잔소리도 소 귀에 경 읽기다. 그 말들의 온도와 밀도와 질감과 무게에 무관하게 내 신경은 오로지 이 절망의 통증을 견디는 것에만 오롯이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맥락을 알아주고 ‘내 곁에 저도 그냥 말없이 있’으며 지금의 고비가 지나가길 함께 기다려주는 당신의 ‘조용한 일’은 그래서 나의 존재 전체로 육박해온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것이다’

이런 조용한 일에 종사하는 것이 있다. 바로 시다. 시는 말없이 조용히 곁에 있다. 당신이 힘들 때 고개를 돌려 옆을 보면 시는 언제나 그곳에 말없이 있다.

당신 곁, 그곳이 시의 자리이며


함께 있어주는 것, 그것이 시의 역할이며

당신을 위로하는 것, 그것이 시의 존재의 이유이다.

따라서 이 시는 시에 대한 시, 시의 존재론에 관한 시, 김사인 시인의 시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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