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사람들

by Lena Cho

집값이 최고점을 찍을 때쯤 5년 전 나는 이

곳으로 이사를 왔다.

서울에서도 그나마 집 값이 저렴한

곳이기도 하지만 그중에서도 빌라가 밀집한

동네에 신축 빌라에 이사를 왔고,

토리는 재작년 11월에 유기견 보호소에서

입양을 해서 매일 하루 세 번씩 이 동네

산책을 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이 동네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매일 몇 바퀴씩 돈다.

그러다 보니 몇몇 주민들의 얼굴을 익히게 되고,

루틴도 알게 되었다. 물론 그들도 나의 루틴을

알게 됐을 것이다. 매일 강아지와 산책하는

키 작은 그러면서 다리까지 불편한 어떤

여자...라고 말이다.


동네가 별로 좋은(?) 동네가 아니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곳은 폐지를 줍는 분들이 많다.

아침에 한 번, 또 저녁에 사람들이 쓰레기를

내놓는 시간대에 한 번씩, 우리 집 주변으로만

세 분이 돈다. 그중 할머니 한 분은 엄청

부지런하시다, 보이는 연세에 비해 걸음도

빠르시고 무엇보다 나는 한 번 밀지도

못할 크기의 리어카에 늘 폐지를 가득

채워 다니신다. 물론 이 할머니에 비해

다른 분들이 덜 부지런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다른 할머니 한 분은 좀 작은 수례로

밀고 다니신다.


그리고 세 분 중 마지막 한 분은 4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남자인데, 이 사람은

젊어서 그런지 위에 두 분 할머니와는

다르게 무거운 철이나, 폐기 자전거 등을

많이 모으는 거 같고, 카페 옆에 딸린 좀 많이

작은 집에 고양이랑 강아지, 부모님이랑

같이 사는 거 같다.

왜냐하면 카페에 약간 쪽집처럼 붙어있는

이 집 문이 바로 골목으로 나있는데, 가끔

문이 열려 있을 때가 있고, 열린 문으로

그 집안에 있는 고양이와 강아지를 보고

토리가 짖기 때문에 집안을 들여다본

적이 있다.

거기다 같이 사는 고양이는 길고양이인 거

같다, 가끔 지나가다 보면 골목을 배회하는

고양이를 집으로 들이는 모습도 여러 번

봤고, 엄마가 그 고양이와 산책하는 모습도

보았다. 중견 강아지만 한 고양이는 주인을

아는 건지 그 아주머니 뒤를 따라가기도 하고,

가끔은 골목을 혼자서 배회하기도 한다.


거기다 부모님은 약간의 정신적 장애가

있는 거 같고, 그 젊은 폐지를 줍는 아들도

약간의 지적장애가 있는 걸로 보였다.

토리가 그 집 강아지나 고양이를 보고

짖을 때 아빠가 쌍욕을 할 때도 있었고,

아들과 어떤 할머니와 아규가 붙었을 때가

있었는데, 정상적인(?) 다툼으로 보이지 않았다.

어떤 할머니한테 따라가면서 악과 깡으로

화를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상황은 어떤 할머니가 커다란 쇠를 그 집에 갖다

주려고 힘들게 들고 와서는 그 집 문을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는데, 아들이 나와서 고양이랑

강아지가 놀란다면서 할머니한테 무섭게 화를 냈다.


그 할머니 입장에선 그 집에 주고자

무거운 쇠뭉치를 힘들게 들고 온 건데,

저렇게 화를 낼 일인가 싶기도 하고...

아니면 작은 일에도 저렇게 화를 내서

남들 본보기라도 보이듯 자신들을 얕잡아

보는 사람들에게 엄포를 놓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면 사회가 저들을 저렇게 만들어

놓았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면서 그 상황을

우연히 마주친 내 입장에선 어안이 벙벙

하다가도 씁쓸하기도 했다.


반면에 내가 첫 번째로 꼽았던 할머니는

늘 큰 리어카에 폐지를 가득 담아

끌고 다니시면서도 힘든 기색 하나 없이

얼굴이 늘 밝으시다.

그래서 나도 골목에서 마주치면 가볍게

목례로 인사를 한다. 세 분 중 내가 인사를

건네는 유일한 분이기도 하다.

그러면 할머니도 토리를 보고

'좋은 주인 만나서 산책 나왔구나',

라고 말을 하신다. 가끔은 토리한테

살이 찐 거 같다, 털이 윤기가 난다.

예쁘다는 말도 해주신다.


그렇게 목례를 시작하고 나서 갑자기

한동안 그 할머니가 며 칠씩? 아니 거의

1주일 정도 안 보여서 혼자 걱정을 했었던

적이 있었는데, 얼마 후 아침에 산책을

나가보니 여느 때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폐지를 줍고 계셨다. 나는 매일 목례 인사만

했었는데, 그날은 반가운 마음에 '며 칠

안보이시던데 어디 다녀오셨어요?'라고

안부를 묻자, 할머니도 환한 얼굴로 여행을

다녀오셨다고 했다. 난 속으로 안도하며

다행이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보니 할머니는 아침에

리어카를 끌며 폐지를 주울 시간에

예쁘게 옷을 차려입고 손에는 리어카대신

핸드백을 들고 어딜 바삐 가시는 걸 가끔씩

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 할머니가 보이지

않으면 어디 좋은 데 가셨다 보다란 생각을

하며 혼자서 안심을 한다.


아무튼 나는 아침에는 그렇게 동네 산책을

하고, 퇴근하고는 우리 집 앞 천을 주로 산책

하는데, 천에는 나무도 있고 벤치도 있어서

요즘 같이 낮이 길 때는 할머니들이 벤치에

삼삼오오 앉아 계신다. 보면 늘 같은 얼굴이다.


그런데 그중에서 좀 멀리 떨어진 벤치에 혼자

앉아 계신 할머니도 매일 마주치는 분이다.

그분은 다른 할머니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서 앉아 계신 게 아마도 더 좋으신가

보다.


그리고 또 다른 중년의 여성은 2~3일에

한 번꼴은 할머니를 휠체어에 태워 산책을

나오시는 분인 있는데 그렇게 휠체어를 끌고

나오면 할머니는 간신히 지팡이와 따님한테

의지해 휠체어에서 벤치로 옮겨 앉을 수 있을

정도만 거동이 가능해 보였다.

그 할머니를 봤을 땐 저 따님이 같이

사는 게 아니면 혼자서는 살 수 없을 거로

보였다.


한 날은 내가 혼자 앉아 계신 할머니가

앉아 계신 벤치 끝에 잠시 쉴 겸 앉아 있었고,

그 따님은 내가 앉은이후에 산책을 나와서

그 혼자 계신 할머니 바로 옆에 그녀의

어머니를 휠체어에서 부축해서 앉히고,

따님은 그 옆에 서서 혼자 앉아 계신

할머니의 호구조사(?), 다른 말로는

아이스브레이킹을 하기 시작했다.


'혼자 사시냐, 자식들은 있냐' 이렇게 물었고

할머니도 무료하셨는지 그녀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셨다. '혼자 살고,

자식은 아들 셋, 딸 하나해서 넷이다'라고

하면서 자식들이 돌아가면서 금요일에 와서

자고 일요일이나, 월요일에 간다고 했다.


그녀는 자식들이 효자라고 이야기를 부추겨

주었고, 할머니도 그 말이 싫지 않으신지

'나도 남들 자식들도 다 그런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더라'라고 하면서 자식

자랑을 하셨다. 이제 그 중년 부인은

할머니한테 어디 사시는지까지 물었고,

할머니도 역시 친절하게 무슨 빌라 옆 단독

주택에 사신다고 대답을 하셨다. 그러자

그 여성분은 '할머니 부자시네'라고

'단독주택에 사시고'라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무슨 부자냐면 손사래를

치셨고, 단독 주택은 너무 추워서 천만 원을

드려 새시 공사까지 했는데도 춥다는 말까지

덧붙이며 난방비가 많이 나온다고 하였다.


그런데 나도 할머니가 단독 주택에

사신다고 하기 전까지는 나는 그 할머니와

서로 반대편을 보면서 앉아 있다가

나도 할머니가 앉은 방향으로 몸을 돌려

앉았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만 나도

그분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몸이 저절로

돌아간 거 같기도 하다. 그러자 그 중년

여성분은 나한테도 아는 척을 했다.


나는 간신히 지팡이에 의지해 혼자서

걸어 나오시는 할머니가 단독 주택에 혼자서

사신다는 것도 신기했고, 그러고 살펴보니

옷차림도 여느 할머니들이 그냥 동네에

마실 나오실 때 입는 거랑은 다르게, 지금 당장

어디 외출을 한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위, 아래 모시옷과 역시 모시로 된 챙이 있는

꽃 모자를 옆에 가지런히 두고 앉아 계셨다.


그 보습을 보고 나는 순간 든 생각이

그 할머니들 자식들이 자주 와서 자고

간다는 게 저 할머니가 저렇게 차려입고, 단독

주택에 사실 정도로 재산을 갖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닌가 하는 아주 속세에 쩌든 혼자만의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한테 호구조사를 하던 그 중년여성도

그 할머니가 부러운(?) 듯 보였다.

물론 극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졌고, 그 혼자 계신 할머니는

자신은 몸은 힘들지만, 이렇게라도

매일 나와야 한다면서 그게 그나마 운동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몸이 불편한 엄마를 휠체어에 태워 나온

따님인 그 중년 여성을 칭찬했다.


그렇게 나는 그분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그분들의 대화가 곧 나의 이야기 같아서

많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재산도 없고, 저렇게 돌봐줄

자식도 없으니 저분들처럼 나이가 들어

혼자서 거동이 힘들어졌을 때 어떻게

노후를 살아갈까 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요즘 같은 세대에 거동이 불편해진 노 부모를

집에서 모실 자식은 거의 없을 거 같은데,

다만 아무도 찾아 올 사람이 없는 나는

이 젊은 날을 후회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면서도 자주 오지 않는 자식을 기다릴

미련조차 없는 내가 어쩌면 속이 더 편할지...

잘 모르겠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도 요양원에 오래 계시다,

코로사 시국에 자식 한 명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러 매주

거의 토요일, 일요일을 10년 넘게 다녔었다.

아주 비싼 요양원이 아니면 거의 한 방에

4~5명 정도 계셨던 거 같고 그중에 요양사의

말을 빌리자면 자식이 거의 명절이나

아님 한 달에 한 번 정도 찾아오시는 분이 반이고,

그중 반은 나처럼 1주일에 한 번씩 주말에

오거나 어떤 분은 가까이 사시는 며느님이

매일 온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아무튼 오늘은 최대한 건강하게 살아보자란

생각까지만 하고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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