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 『불안』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날 때부터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괴로워할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는 방식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함께 사는 사람들의 판단에 좌우된다. 그 사람들이 우리 농담에 즐거워하면, 우리는 나에게 남을 즐겁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자신을 갖게 된다. 그 사람들이 우리를 칭찬하면, 나에게 큰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현실에서 우리는 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아주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다. 내가 똑똑하다는 증거도 댈 수 있고 바보라는 증거도 댈 수 있으며, 익살맞다는 증거도 댈 수 있고 따분하다는 증거도 댈 수 있으며...
...이렇게 흔들린다면 사회의 태도가 우리의 의미를 결정하기 마련이다. 무시를 당하면 속에 똬리를 틀고 있던 자신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고개를 쳐들며, 미소나 칭찬과 마주치면 어느새 역전이 이루어진다...
...우리의 ‘에고’나 자아상은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아, 늘 외부의 사랑이라는 헬륨을 집어넣어 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 취약하기 짝이 없다. 남의 관심 때문에 기운이 나고 무시 때문에 상처를 받는 자신을 보면,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어디 있나 싶어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한다. 동료 한 사람이 인사를 건성으로 하기만 해도, 연락을 했는데 아무런 답이 없기만 해도 우리 기분은 시커멓게 멍들어버린다. 누가 우리 이름을 기억해주고 과일 바구니라도 보내주면 갑자기 인생이란 살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환희에 젖는다...
...따라서 물질적인 관점만이 아니라 정서적인 관점에서도 우리가 세상에서 차지하는 자리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 자리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지 결정하며, 결과적으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좋아할 수 있는지 아니면 자신에 대한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는지 결정한다.
알랭 드 보통, 『불안』, 은행나무 (2004)
한 문장 한 문장이 심금을 울린다.
우리가 지위에 집착하는 이유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휘둘리는 이유는, 자신의 가치에 확신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라는 사람은 너무나도 다면적이기에 어떤 면을 보느냐에 따라 똑똑할 수도 있고 바보 같을 수도 있으며, 강할 수도 있고 약할 수도 있다. 그 단면이 너무나도 많고 섬세하기 때문에 나 조차도 내가 어떤 면을 가지고 있는지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만은 똑똑하다고 확신하더라도 그 정도는 상대적이기에 어떤 사건에 의해 내 확신이 무너지기도 한다. 세상에는 변수가 너무 많고 내 행동과 마음도 거기에 휘둘리기에 내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 내 강점이 무엇이고 내 가치가 무엇인지 매분 매초 헷갈린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확신을 찾고 싶어하는 존재이기에 내 내면에서 찾지 못하는 확신을 사회의 태도에서 찾으려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외부의 평가에 예민하게 휘둘리기에 오히려 그 평가에 따라 내 단면이 바뀌는 모습도 발견한다. (칭찬과 기대를 더 많이 받은 아이가 더 좋은 성적을 내는 것도 같은 원리일 것이다) 이것은 악순환이 되기도, 선순환이 되기도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무엇도 나에게 안정감과 확신을 주지 않고 우리를 불안 속으로 떠민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