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등원을 시작하며 정확한 시간에 맞춰서 등원과 출근을 해야 하는 미션이 생겼다. 마음은 언제나 5분 먼저 나가서 여유를 부리고 싶지만 현실의 아침풍경은 마치 1분 안에 기상해서 세수하고 옷 입고 나가는 모든 미션을 클리어해야 하는 장병처럼 분초를 다투는 모습이 전쟁터가 따로 없다. '빨리빨리'란 구호가 허공에 발사되고, 장비인 가방을 챙겨 들고, '아차차, 내 외투!' 하며 빛의 속도로 순간이동을 하며 움직인다. 3년 간 부단한 노력으로 '빨리'란 단어를 안 쓰고 육아했건만 등원을 시작하니 하루에도 수십 번을 쓰고 있다.
오늘은 아이가 평소보다 일찍 기상해서 여유가 있었는데, 누워 있는 나를 배고프다고 깨우며 '멸치주먹밥'을 해달란다. 그래서 부스스 일어나 짧은 시간 내에 후다닥 멸치계란 주먹밥을 만들었다.
밥에 멸치반찬 넣고, 청경채 계란 스크램블 넣고(소금 톡), 참기름과 깨를 갈아 넣어 쉭쉭 섞으면 끝.
열심히 아침밥을 만들고 있는데 와서 인형놀이하며 놀아달란다. 전 날 저녁 교감한 시간이 전혀 없었던지라 아쉬웠나 보다. 아침 준비도 해야 하고, 동시에 놀이도 해야 하고 몸이 딱 두 개가 필요한 시점! 요리조리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아침밥을 준비했고, 밥을 먹으면서 함께 짧게 놀았다. 시간이 없어 주먹밥 모양은 생략하고 그냥 밥 채로 숟가락으로 떠서 먹었다.
그리고 등원시간이 되어 나갈 채비를 했다. 현관 앞에서 재촉하는 엄마는 '엘리베이터가 몇 층에 있을까?' 하고 생각 중이었다. 그 앞에서 본인의 속도로 고개 숙여 신발을 신고 있는 아이가 갑자기 말한다.
- 엄마~ 엄마는 멋진 아이야~ 엄마 사랑해♡
신발 신으며 건네는 갑작스러운 고백이었다.
- 응? 멋진 아이라고?
- 엄마는 요리를 너~~~ 무 잘해^^!
- 그래? 고마워 헤헷~ 나가자~~
엄마는 기분이 좋으면서도, 아이라고 표현한 부분을 정확히 못 들어 걷는 동안 다시 물었다.
- 아까 엄마한테 '멋진 아이'라고 한 거야?
- 아니?! 엄마가 너~~~~~~~무 좋아!!!
세 번에 걸쳐 칭찬과 사랑고백을 받자 엄마는 기분이 좋아서 발걸음이 절로 둥실둥실 가벼워진다. 아이가 좋아하는 죽염을 통에 담아와 유치원 버스 타기 전에 얼른 몇 알 건네어서 챙겨주니, 아이가 손에 꼭 쥐고 둥실둥실 좋아하며 버스에 오른다. 바빴던 출근길에 아이가 왜 갑자기 사랑한다고 표현했을까? 궁금증이 들었지만 그냥 그 순간 느낀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회사에서 아침에 후다닥 만든 주먹밥을 도시락으로 대강 싸와서 먹었다. 심심한 맛일 거라 생각하고 전혀 기대가 없었는데 이게 웬걸. 적당한 짭조름함과 고슬고슬한 밥의 식감, 은은하게 혀끝에 맴도는 고소한 참기름과 깨의 풍미가 어우러져 묘하게 자꾸 숟가락을 들게 만들었고 먹을수록 맛이 깊어졌다. 어머님이 주신 좋은 참기름과 직접 갈아 넣은 깨도 한몫했다.
- 어랏? 맛있네?
전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자꾸만 먹고 싶어 지는 맛이었다. 밥을 먹고 있으니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아.. 이래서 아이가 아침에 엄마에게 사랑 표현을 하고, 요리를 잘한다는 칭찬까지 한 거구나~'
아이는 엄마의 아침밥에서 사랑을 느낀 것이다.
엄마가 자신을 위해 해 준 맛있는 요리에서 충만함을 느낀 것이다.
엄마의 울타리와 존재감을 느낀 것이다.
엄마에게 고마움을 느낀 것이다.
어떤 언어로든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부족한 요리에도 사랑을 가득 표현해 주니 앞으로도 요리할 힘이 한 껏 솟아난다. 집밥을 자주 해줘야겠다. 내가 내 엄마에게 몇십 년 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받은 집밥을 통한 사랑처럼 내 가족에게 집밥으로 사랑을 전해줄 것이다. 비록 아침은 과일이나 간편식 위주겠지만, 먹는 것이 중요한 만큼 제철음식과 로컬푸드 밥상엔 늘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아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가끔 '엄마 최고' 하며 엄지 척까지 날려주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된다. 이래서 옛말이 있나 보다. '아이가 먹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는 말. 배가 부를 리 없지만 음식과 함께 오가는 사랑으로 뱃속이 따뜻하게 채워지는 것만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