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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팍 Aug 02. 2023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

퇴사 후 유럽여행기 2


파리 에펠탑에서 새해맞이 하기!
이탈리아 소도시 여행 하기!


한 달 유럽여행을 계획할 때 가장 신나고도 재미있는 일은 방문 국가를 정하고 동선을 짜는 일이다. 모든 나라를 다 가볼 수는 없기 때문에 핵심 국가를 정하고 동선을 보며 가고 싶은, 또는 가볼 만한 나라를 정한다. 나는 단 2가지 로망이 있었다.


이 2가지만 충족하면 되었기 때문에 내 동선은 매우 단순해졌다. 한 달 중 2주는 이탈리아에서 머물고, 연말연초는 프랑스 파리에서 1주일 머물기였다. 일정 상 프랑스 가기 전에 며칠간 머물 나라가 필요했는데, 근접하면서도 가보고 싶었던 독일로 정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뉘른베르크'를 입국 도시로 정했다.


뉘른베르크를 정한 이유도 단순하다.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는데, 세계 최대의 100년 이상 전통을 자랑하는 크리스마스마켓이 열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매력적인 게 또 있었다. 공항 픽업서비스가 되는 '한인민박'이 있었다. 여행 중에 최대한 현지 문화를 접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를 목표로 했는데, 첫 도시만큼은 너무 낯설지 않은 '한인민박'을 통해 안전하게 입국하고 싶었다.


독일 공항에 도착하니 키 190cm 정도 되는 독일 남자가 이제 갓 사 입은 옷처럼 빳빳하면도 윤기가 차르르 감도는 트렌치코트를 입고 당당한 걸음걸이로 지나갔다. 모델 뺨치는 얼굴에  멀리서도 시선을 집중시킬 만큼 멋지게 코트를 소화해 냈다. 그를 보니 실감이 난다.



- 아.. 내가 진짜 독일에 도착했구나!



한인민박 사장님께서 내가 도착하는 저녁 시간대 공항에 마중 나오기로 했다. 낯선 곳으로 혼자 떠나는 여행이 주는 긴장감에 픽업 서비스를 여러 번 확인했다. 도착하니 '유럽여행에서 뉘른베르크로 입국하는 사람은 나 밖에 없지 않을까?' 싶을 만큼 아담한 규모의 공항에 동양인은 나뿐이었다. 소박한 도시가 주는 낯설면서도 신선한 공기가 정감 있게 다가왔다.



사람을 만나다


차를 타고 이동하며 민박 사장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퇴사 후 배낭 여행객으로 혼자 이곳에 온 나에 대해 간단 핵심을 담아 소개했다. 그러자 놀라운 답변이 돌아왔다.


- 저도 한국에서 공무원이었는데, 그만두고 이곳에 왔어요. 벌써 15년 전쯤 일이네요~ 하하.


- 네?? 정말요?? 사장님이 한국에서 공무원이었다고요? 그런데 왜 여길 오셨어요? 아니, 공무원은 왜 그만두셨어요? 아니, 어쩌다 이 도시에 살고 계신 거예요? 정말 신기해요!!


나의 질문공세가 이어지자 그는 더 놀라운 답변을 했다. 민박사업은 본업이 아니라 직업은 또 따로 있다는 것이다.


- 뉘른베르크 국립극단 소속 발레단이에요^^


- 네?? 발레요?? 공무원 하다가 갑자기 머나먼 이곳에 와서 발레를 하고 계신다고요??


눈이 휘동 그레진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기 위해 용기를 냈고, 알 수 없는 불분명한 미래로 여전히 불안한 청춘인 내가 유럽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이런 놀라운 스토리를 가진 사람이라니! 그는 미지의 길을 먼저 개척해 간 사람이자, 한국도 아닌 타지에서 정착해 전혀 다른 새로운 인생을 펼치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 짧은 만남은 어쩜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공항 훈남보다 더 멋진 아저씨가 내 앞에 있었다.

 

그는 내게 말한다. 공무원을 계속했더라면 안정적으로 연금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그런데 내 눈앞에 앉아있는 이 아저씨... 공무원을 때려치운 이 아저씨... 누구보다 안정되어 보인다. 연금 한 푼 없이 말이다.


그는 발레로 유명한 뉘른베르크에서 국립극단 소속으로 괜찮은 급여를 받고 있으며, 민박 사업도 잘되어 2채로 최근 확장했고, 저녁에 나를 마중 나오는 수고스러운 일도 즐겁게 하고 있는 듯 보였다. 게다가 유럽 숙박업에서 가장 성수기인 여름엔 1달간 문을 닫고 가족과 여름휴가를 즐기며 여행을 다닌다고 한다. 여행자의 성수기보다, 주인의 휴가가 더 중요한 그의  삶은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그림 같은 도시에서 직업도 만족하는데, 보수도 괜찮고, 휴가도 여유롭고, 사업을 통해 부도 확장하고, 1년에 1달은 여행 다니며 마음껏 쉬는 그의 모습! 아마 한국에서 공무원을 계속했더라면 절대 이룰 수 없는 라이프일 것이다. 적어도 1달 휴가는 못 가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는 기존에 하던 일과는 전혀 무관한 새로운 꿈을 안고 이곳에 유학 와서 갖은 고생과 노력 끝에 흘러 흘러 지금의 자리에 도달했다. 그 고생길을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타지에서 얼마나 모진 시간을 이겨냈을지 짐작이 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얻게 된 시작은 '공무원을 그만두고 다른 길을 걷기로 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끝이 어떻게 되든, 일단 가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용기 있게 다른 길을 선택한 아저씨의 미래이자 현재는 꽤 멋져 보였다.


내게도 작은 희망이 솟아오른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무언가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아저씨는 '공무원'이라는 타이틀을 내려놓음으로써 지금의 안락과 여유가 넘치는 유럽 라이프를 얻게 되었다. 도전과 용기의 결과로 달콤한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실패 또한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실패할 수도 있다는 리스크



우리는 이 리스크를 이겨낼 수 있어야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다. 다른 길을 선택할 때 직면하게 되는 미래의 불확실성은 당연한 것이다. 이 리스크를 이기는 방법은 노력뿐이다.


그는 혹여 지금과 같은 결과를 얻지 못할지라도, 유럽 유학이 실패로 돌아갈지라도 또 다른 꿈을 향해 달려갔을 것이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미래를 바꾸기 위해 정진했을 것이다. 지금의 나도 마찬가지다. 훗날 '오늘의 선택을 돌아봤을 때 후회하면 어떡하지?'라는 질문 앞에서 난 결심을 내렸다.



- 퇴사한 걸 후회한다

vs 아무 도전도 시도도 해보지 않은 걸 후회한다



나는 후자를 두고두고 후회할 거란 확신이 섰기에,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15년 전 나와 같은 길을 간 아저씨를 보며, 내 결정에 다시 한번 의지를 더한다.


- 그래, 아무것도 안 남더라도 가보고 나서 후회하자! 그리고 내가 선택한 길에 후회나 미련 없이 최선을 다하자.


내가 선택한 이 길이, 어디로 흘러갈지 궁금해졌다. 내가 가졌던 많은 안정적인 것들을 포기한 대신 내가 얻게 되는 것 또한 분명 있을 것이다. 내려놓은 자리에 다른 진귀한 것들이 채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미지의 세계를 향하는 출발점이기에 두려움이 크지만, 아저씨처럼 나도 훗날 웃으며 오늘을 회상하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될 수도 있다.



아저씨의 삶의 스토리는 내게 보석 같은 선물이었다.




- 자, 이거 선물이에요!

- 엇? 이게 뭐예요?

- '신데렐라' 발레 공연 티켓이에요



그는 먼저 온 투숙객도 있지만, 1장이기도 하고 내게 이 티켓을 주고 싶다고 한다. 돈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티켓이라 했다. 이런 기회가 많지 않은데 내게 운이 좋다고 했다.



아저씨의 호의 덕분에 처음 떠나는 혼자 여행에 대한 긴장감도, 낯섦도, 추위도 조금씩 녹고 있었다.





- 계 속 -


* 20대 후반, 대기업 퇴사 후 떠난 유럽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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