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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팍 Aug 31. 2021

아이를 낳고 명품백을 버린 이유

반강제적 무소유의 삶이 되다

출산을 앞둔 내게  먼저 출산한 친한 언니가 다음과 같이 소감을 전했다.


아이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모든 것이 아이가 중심이 되는 세상!


세상의 중심은 '나'라고 굳게 믿고 자신을 사랑하며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있던 내가 배우자를 만나 여전히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함께'의 삶을 영위하던 중이었는데, 출산과 동시에 그 주인공 자리를 내어줘야 하다니! 하지만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당연히 거부할 수도 없었다. 내게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이 펼쳐졌다. 일어나고 자는 시간은 물론이며 밥 먹는 시간, 쉬는 시간도 모두 아이가 정했다. 아이가 새벽 내내 깨어있어 있을 땐 나의 잠도 허락되지 않았다. 새벽 2시까지 놀 때는 거뜬했던 어렴풋한 기억이 있는데, 새벽 2시까지 우는 아이를 달랠 때는 몸이 천근만근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내 몸이지만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한 채 몇 시간이고 아이를 안으며 '그래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은 뜰 거야'를 중얼거리며 버텼다. 다행히 내 인생이 없어진 것 같은 시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1년만(?) 지나도 세상 밖으로 나가보겠다고 걸음마를 하며 엄마에게서 떨어지고, 2년만 지나면 자아가 생겨 매일 '싫어 싫어'라는 표현으로 본인의 의지대로 인생을 개척하기 시작한다. 사춘기가 되면 이제 엄마는 들떠도 안 보고 매일 친구들과 어울려 나가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이를 낳고 '부모'라는 타이틀과 함께 만난 새로운 세상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내 하루 일과부터 육아하기 편한 옷을 입는 패션 기준, 생각, 인생관, 가치관, 삶의 태도, 우선순위, 시야의 범위, 배려, 인내심 등 모든 면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좋은 말로 표현하자면, 한층 성숙된 인간으로서 아가고 있다랄까? 내가 '선'을 행하면 그것이 사회를 이롭게 하는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고 결국 나와 내 자식에게 돌아온다는 생각을 시작으로 조금 더 이타적 관점이 생겨났다. 환경에 대한 관심도 현재를 살아가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살아가야 할 '자식'세대까지 생각해서 더욱 진지하게 접근하게 되었다. 이처럼 프레임이 바뀌었는데, 그중 일상에서 만난 가장 큰 변화는 '무소유'의 반강제적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원래 물욕이 있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한 번 소유하게 된 물건은 언제나 새것처럼 아끼고 애지중지했다. 그것이 1만 원이든 100만 원이든, 최신 것이 든 오래된 것이든 상관없이 내 물건을 소중히 여겼다. 완벽주의 성향답게 작은 흠집에도 크게 반응했고, 오래된 옷에게 조차도 한 때 나를 빛내주었던 소중한 물건이라며 추억이란 이름을 붙여 잘 간직했다. 그런 내 삶에 아이란 존재가 나타나자 내 물건들이 하나씩 내동댕이쳐지기 시작했다.


구강기에는 '내 것'을 포함한 집안의 물건들을 모두 물고 뜯으며 탐색했고, 기어 다니기 시작하자 손에 잡히는 물건들을 던지기 시작했으며, 걸어 다니기 시작하자 테이블 위 물건들까지 모조리 아이의 장난감이 되어 망가지거나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음에는 소중한 내 물건을 '보호'했지만 이내 내가 보호해야 할 것은 내 물건이 아니라 내 아이임을 깨달았다. 아이의 인지와 정서발달을 위해서라면 내 몸도 내 시간도 내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는데 고작 내 물건을 못 내어주랴. 무엇보다 내 물건의 쓰임새가 장난감으로 하나씩 변할 때마다 내 몸이 편해지는 경험을 하자 릴 이유가 없어졌다. 쉴틈 없는 육아맘에게 몸이 편해지고 내 시간이 생긴다는 이득에 비하면 소유욕은 한낱 부질없을 뿐이었다. 게다가 육아와 살림과 공부를 병행하느라 그 외의 것들을 신경 쓸 여력이 더 이상 남아있지도 않았다.


의미 없는 물건은 없었지만 한 때 의미를 부여했던 것들에게 나도 모르게 적당한 합리화를 하며 내려게 되었다.


- 아이가 마트료시카 인형을 가지고 놀다가 하나씩 잃어버릴 때

내 동생이 러시아에서 사준 소중한 건데... 그동안 서랍 어딘가에 박혀 있었는데 덕분에 아이 소근육 발달에 활용되었지 뭐


- 아이가 오래전 큰맘 먹고 산 명품시계를 꺼내 여기저기 던지며 놀 바닥에 버려져 있을 때

어차피 이제 잘 차지도 않는데... 괜찮아. 명품보단 육아가 더 중요하지 뭐


- 상자를 열어 귀걸이를 바닥에 흩뿌리고 하나씩 없어질 때

저건 이탈리아 장인이 깊은 바닷속 원석으로 만든 다시 이태리 가서 살 수도 없는 귀걸이인데... 그렇지만 이제 귀걸이도 안 하는데 뭐.. 괜찮아


- 일 보던 탁상시계를 가지고 놀다 고장 냈을 때

 방에 시계 없이 살아보지 뭐. 미니멀 라이프 고!


- 대학교 때 소중한 일기가 기록된 10년 넘게 보유한 수첩이 다 뜯어져 2장만 남고 사라졌을 때

 어차피 안 본 지 더 오래되었잖아. 책장에서 자리만 차지하는데 뭐. 없어져도 삶에 지장 없어


자연스럽게 그동안 아꼈던 것들이 내게서 점점 멀어졌다. 가진 것에 부여했던 많은 의미들이 더 중요한 것으로 옮겨왔다. 내가 지켰던 많은 기념품과 액세서리, 옷, 가방 등 물질적 요소가 주는 기쁨이 있었다면 이젠 그 모든 것을 넘어서서 아이가 주는 기쁨이 내 삶을 채워주었다. 내 관심은 육아에 집중되었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들은 사랑과 기쁨으로 충만했다. 서랍 속, 옷장 속, 보물함 속에 갇혀있는 많은 진귀한 것들을 꺼내 볼 시간도 없을뿐더러 없어도 내 삶에 전혀 지장이 없었다. 크게 불편함도 없었다.


비싸고 좋은 것들을 아이가 망가뜨렸을 때 아이를 혼내게 되는 게 싫어 아예 없애버렸다. 새로 사지도 않는다. 추장스러운 것들을 없애고 나니 아이와 나 사이에 편안함이 남았다. 아이는 어떤 물건이던 마음껏 탐색하며 안정적으로 발달해갔다.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아이가 깨우쳐줬다. 


세상에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가장 쉬운 문제라고 한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돈으로 샀던 많은 것들은 없어도 그만이고 또 사면 그만이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보내는 오늘, 지금 이 순간, 가족의 건강, 행복한 미소, 사랑하는 이들과 눈 맞춤, 함께하는 식사, 추억을 쌓아가는 시간, 기쁨으로 충만하기 등 인간과 인간이 나눌 수 있는 사랑의 시간들 그 어떤 값으로도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의 보물은 바로 지금, 여기, 내 옆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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