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제처럼 헛구역질로 아침을 맞이했다. 화장대 거울을 붙잡고 헛구역질을 하는 내 모습이 왠지 낯설다. 감정이라곤 메마른 듯한 표정과 내 이미지를 대표했던 생기발랄함도 사라진 지 오랜 것 같다. 얼마 전부터 아침에 눈을 뜨면 헛구역질이 시작되었다. 전날 술을 마신 것도 아니고 포식을 한 것도 아닌데 꼭 출근 준비를 위해 화장대에 앉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헛구역질이 나왔다. 어머니가 가장 강조했던 생활수칙이 ‘아침밥을 꼭 먹어라’였다. 학교에 지각하는 한이 있어도, 꼭두새벽에 출근하는 날이어도 나는 꼭 아침을 먹어야지만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설 수 있었다. 그렇게 길들여진 아침 먹는 습관은 객지에 나와 회사 생활을 하며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차려준 아침밥’만 먹을 줄 알았지 차려먹는 법은 몰랐던 것이다. 회사에서 점심, 저녁을 사 먹으니 냉장고는 언제나 텅텅 비어있었고 아침엔 5분이라도 더 자려고 발버둥 치다가 겨우 눈을 떠 부랴부랴 출근하기 바빴다. 그런데 아침을 먹는 것도 아닌데 왜 헛구역질이 나오는 걸까? 그것도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이렇다 할 원인을 못 찾은 채 궁금증과 답답함을 가지던 어느 날이다
- 나 요즘 아침마다 일어나면 헛구역질해. 왜 이럴까? 정말 고민이야
- (동기) 너 혹시 빈속에 헛구역질 나와?
- 응!! 아침을 안 먹으니 빈속이야
- 나 그 이유 알아!! 나도 그런 적 있어서 아는데 그거 스트레스 때문이야
- 스트레스라고??
- 응, 나 예전에 시험 기간이면 스트레스랑 압박을 받아서 헛구역질하곤 했어. 한 번은 너무 심해서 지하철 타고 가다가 중간엔 내려서 헛구역질했다니까~
마침내 원인을 알아냈다. 그녀는 내게 명의나 다름없었다. 이유를 알 수도, 해결할 수도 없던 내 증상이 바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니. 고구마같이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이유를 알았으니 이제 해법만 찾으면 된다. 스트레스 요인을 제거하면 된다. 그런데 내 스트레스 요인은 “매일 아침 출근”이었다. 출근을 안 할 수도 없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나는 괜찮지 않았다. 내 삶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객관적 요소만 살펴보면 꽤 괜찮은 삶이었다. 나는 젊고 아리따우며(내 마음대로 정의) 번듯한 직장을 다니고 원하는 것은 살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점점 병들어가고 있었다. 물질적 풍요로는 절대 채워질 수 없는 공허함이 가득했다. 회사 밖에서 취미와 재미를 찾아봤자 제자리걸음이었다. 내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직장에서 나의 존재 가치를 입증받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며 나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게 능력 이란 것이 애초부터 있기는 한 걸까?'
'내가 원하는 일이 무엇일까?'
'애초에 ‘취업’에만 목적을 둔 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게 아닐까?'
'그 결과가 이렇게 쓴 걸까?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데 내가 인내심이 부족한 걸까?'
'고민을 털어봤자 내 인내심이 부족하다고 비난받을지도 몰라'
나의 불만족 요인은 복잡했지만 간단했다.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성실하게 출퇴근하며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하고 그 대가로 보수를 받는 것, 이런 패턴의 무한 반복 속에서 어떤 재미도 찾을 수 없었다. 보수를 받기 때문에 회사가 원하는 일을 해야 했지만 내가 원하는 일은 아니었다. 애초부터 일에서 재미를 찾으려는 생각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스스로 재미를 느끼고, 능동적으로 업무에 참여하며 그로 인해 성과를 내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 내 성향에 맞게 진취적이고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하며 일에서 보람을 느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내 업무에 동기부여가 되어야 한다.
나는 왜 이 일을 해야 할까?
나는 왜 이 일을 잘해야 할까?
동기부여를 가지는 위 질문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지만 세상이 정해놓은 정답은 있었다. 회사의 매출 증대와 발전을 위해서, 그리고 회사가 수익이 발생해야 내 급여가 들어온다. 그렇다면 나는 회사의 발전을 도모하고 그로 인해 월급을 받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일을 하면 할수록 나는 단지 기업의 이윤추구를 위해 일하며 급여일만 보며 버틸 수 없는 타입의 사람이 아님을 깨달았다. 즉, 연봉을 아무리 높여줘도 스스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일, 내 성향과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내겐 의미가 없었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바로 적성에 맞는 업무, 보람을 느끼는 일, 즐겁게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그리고 내 현실은 이런 부분을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사내 행사, 가족행사, 워크숍, 연례회의, 음악회, 사회자, 리포터, 주재기자 등 많은 기업행사와 방송 관련 일들은 유일하게 일로서 기쁨과 보람, 성취감을 느낀 순간들이었다. 이런 일만 계속한다면 회사에 ‘충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재밌는 일들로 내 하루를 가득 채울 수 있을까? 간절히 희망했지만 방법은 몰랐다. 나의 하루는 여전히 어제와 다를 바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헛구역질과 맞물려 지독한 월요병이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월요병을 없애려면 일요일에 출근하면 된다는 잔인한 농담을 건넨다. 내겐 일요일 저녁에 보는 ‘개그콘서트’가 그렇게 슬플 수 없었다. 이 방송을 다 시청하고 잠들면 내일이 찾아오겠지? 내게 공포와도 같은 월요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고 두려웠다. 피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김없이 월요일의 태양은 뜨고 만다. 월요일 아침, 지각을 면하기 위해 택시를 타고 출근 중이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택시가 교통사고가 나면 좋겠다. 그래서 회사가 아닌 차라리 병원으로 가면 좋겠다’ 순간 나 자신에게 깜짝 놀랐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을까?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