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나팍 Apr 22. 2021

아무것도 안 남더라도 해보고 후회할 거야

‘퇴사한다? 퇴사하지 않는다. 퇴사한다? 퇴사하지 않는다.’

한 걸음 한 걸음 흐드러진 벚꽃 길 따라 회사로 걸음을 내딛다 보니 어느덧 사무실 문 앞에 도착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말끔한 와이셔츠와 정장을 차려입은 대리님, 과장님, 팀장님이 나를 맞이한다. 옆 팀에는 법인영업팀 선배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오늘도 제안서를 들고 어디론가 나가는 것 같다. 법인영업팀은 본부 50여 명 영업사원 중 가장 우수한 직원만 선발 해 운영하는 팀이다. 그러니 경력 10년 이상은 말할 것도 없고 온갖 사회의 쓴맛을 최전선에서 맛보고 이를 이겨낸 강인한 사람들이다. 어느 날 회식자리에서 내게, 정확히 말하면 나의 개성과 사고방식을 버리고 조직의 틀에 끼워 맞추느라 기운 없던 내게 말을 건넨다.


'인마, 회사 생활에선 딱 3가지 문장만 기억하면 돼'

'그게 뭔데요?'

'이 3가지면 모든 것이 해결돼. 내 15년 직장생활이 보증하는 거야'

'그런 마법 같은 말이 있어요? 알려주세요~~'

'그 3가지는 바로'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3가지가 직장생활 잘하는 비결이야

어떤 문제적 상황에 부딪히면 ‘죄송합니다’ 3번만 말해봐. 그냥 해결돼!

'에이~ 싱겁다'


고작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울법한 인사말을 가르쳐 주고는 앞으로 직장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라고 강조하는 선배에게 은근 실망감을 내비쳤다. 뭔가 대단한 문장이라도 나올 줄 알았는데 이런 시시하고 흔한 말이라니. 그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 안에 내포된 깊은 의미를 말이다. 인사 잘하고, 항상 감사하며, 겸손할 줄 아는 태도가 모든 것의 근간이 된다는 사실은 나 역시 선배처럼 연륜과 경력이 쌓인 멋 훗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쿨하게 ‘죄송하다’고 말하고 잊는 타입이 아니었다. 업무적으로 혼나며 죄송할 일을 만든 뒤에는 반성과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진다. 완벽주의에게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싫은 소리가 듣기 싫어 업무에 점점 더 집중했고 업무스킬은 향상되었다. 디테일이 생기고 실수가 줄어들었으며,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일을 처리하기 위해 상대방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법이 늘어갔다. 늘 100여 명의 사람들을 챙기다 보니 내 전화기와 결재창은 쉴 새 없이 울려댔고 동시에 수십 개의 메신저 창이 깜박인다. 메신저라고 등한시했다가는 빨리 메신저를 확인해달라는 전화가 다시 온다. 그런데 재밌는 건 수십 건의 동시다발적인 업무 요청은 중요한 업무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요청을 신속 정확하게 처리해주면서도 가장 중요한 본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수많은 긴급한 업무들을 깔끔하게 처리하면서 동시에 중요한 업무도 처리하고, 기한을 절대 어기지 않는 신념을 지키며 전쟁터 같은 일터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나는 점점 더 능숙해져 갔다. 점점 더 발전해갔다. 그렇지만 내 삶은 어제보다 나아진 것이 없어 보였다. 힘든 것도 이제는 익숙해져서 감내할 만했다. 다만, 어딘가 내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이 빠진 기분이었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수많은 고민과 생각들이 스쳐간다.

    

고민 1

나는 다만 행복해지고 싶을 뿐이다.

지금 이 생활은 분명 불만족스럽다. 하지만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대기업에서 만족하지 못한 나는 어디를 가야 만족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일까?

그 자리를 찾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 당장, 오늘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 2

내가 정말 퇴사할 수 있을까?

이보다 좋은 네임밸류, 연봉, 직장을 가지기 어려울 텐데 그것을 내 꿈과 맞바꿔도 될까?

훗날 내 선택을 후회하면 어떡하지?

꿈도 못 찾고 고생만 하다가 실패자가 되면 어떡하지?

내가 원하는 대로 인생이 잘 안 풀리면 어떡하지?

지금 가진 것들에 감사하며 만족하며 사는 게 최선이었으면 어떡하지?

돈도 못 벌고 직업도 다시 못 구하면 어떡하지?

  


첫째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고, 꿈이 무엇인지도 몰랐으며, 그렇기 때문에 나아갈 방향을 잡기가 어려웠다. 명확한 꿈과 목표가 있으면 도전을 할 텐데 그 ‘꿈’을 찾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둘째, 퇴사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즉, 현재 가진 걸 포기하는 대신 내 장밋빛 미래와 맞바꿔야 하는데 그게 암 흑빛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보장된 그 무엇도 없었다. 지금 가진 것들을 불확실한 미래와 맞바꾸기엔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다. 그 어떤 것도 예측할 수 없는 막연한 미래를 향해 걸음을 내딛기 위해선 많은 희생과 포기할 것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비교해 볼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미래가 어떻게 흘러갈지 가보지 않았으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고민과 번뇌와 방황 속에 작은 수첩에 글을 써내려 갔다.




20**. **월 **일

참 가진 것도 없는 손인데 왜 그렇게 버릴 것은 많았는지

내가 추구했던 럭셔리한 물건들만큼 나란 인간은 과연 명품이었나

왜 우리는 평생 살 것처럼 인생을 저축해야 한다고만 생각할까. 그래 봤자 하루 종일 사무실에 틀어박혀서 조금만 더 나중에, 조금만 더 참으면 더 행복한 날이 올 거라고 아무도 보장해주지 못한 길을 꾸역꾸역 가고 있지. 아무것도 안 남더라도 해보고서 후회할 거야. 이번 달엔 얼마를 버는지 생각만 하며 나갈 수도 있었는데 못 나간 걸 또 후회나 하고 있겠지. 익숙했던 곳을 버리고 떠난다는 게 힘들지만, 이 곳을 떠나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기회조차 없는 거잖아.


일단 한 걸음 내딛으면 뭔가 답이 나오지 않을까??


- 20대의 어느 날 -



매거진의 이전글 지긋지긋한 월요병,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