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Ⅱ. 죽음에 대하여 ①
아름 : 눈에 안 보인다고 꼭 사라지는 건 아니겠죠? 낮에 별이 안 보인다고 별이 사라진 건 아닌 것처럼.
대수: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니까…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
김애란의 소설 <두근두근 내인생>. 조로증에 걸린 아름의 시선으로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이 소설은 가장 늙은 자식과 가장 어린 부모를 대비해 어떤 삶에든 한 번은 찾아오는 생의 반짝이는 순간을 아름답게 그린다.
희귀병 선천성 조로증을 앓는 16살 소년 아름의 신체나이는 80살. ‘열여섯 노인’ 아름은 단지 외모의 노화뿐 아니라 늙은 신체에 찾아오는 갖은 질환에 시달린다. 아픈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또래보다 조숙한 시선으로 삶을 대하지만 세상 모든 열여섯 소년이 갖는 소년 다움과 떨림, 생의 열망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 아름을 열일곱 살에 낳은 미라와 대수, 자신들보다 빨리 늙어가는 하나뿐인 자식을 돌보는 부모는 어리고 철이 없다. 하지만 어리고 철없을지언정 부모는 부모라서 자식을 향한 애틋한 그 마음에 읽는 사람의 가슴이 무너지다 또 웃다가 하게 된다. 아름은 다가오는 삶의 마지막을 앞두고 어린 부모들이 더욱 어렸던 그 시절, 자신을 만들어 낳은 열일곱 그 눈부신 시절의 이야기를 선물로 남긴다.
아름: 아빠 엄마, 젊다는 건 어떤 느낌이에요?
대수: 아름이 네가 내 아들이라는 게 너무너무 좋다.
미라: 이거 왜 이래? 나 열일곱에 애 낳은 여자야!
미미가 떠나고 거의 10년 전 읽었던 이 소설이 문뜩 떠올라 다시 집어 들었다. 늙고 아픈 동물을 무지개다리 너머로 보내고 나니 이 소설 속 인물과 설정이 무척 상징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늙은 동물에게선 어린 자식과 늙은 부모가 동시에 보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가이지만, 젊음과 생기가 사라진 나의 늙은 아기는 손 쓸 방도 없이 늙어버린 내 부모 같기도 해서 아주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나보다 빨리 늙어 죽어가는, 나의 기쁨이자 절망인 내 새끼. 아름을 돌보는 대수와 미라의 마음이 이랬을까. 그리고 나보다 빠른 생의 단계를 통과한 내 고양이는 아름처럼 때로 조숙한 시선으로 철없는 나를 굽어보며 내 행복을 빌었을까. 마침내 아름이 늙은 열여섯 살로 삶과 작별하고 난 뒤, 대수와 미라는 가늠할 수 없는 슬픔과 함께 가장 젊고 아름다웠던 시절이 뜯겨 나간 듯한 상실감에 사로 잡혔겠지. 청춘의 고양이를 잃고 이제 내 청춘은 영영 끝났음을 절감한 것처럼 말이다. 이 소설가는 반려동물의 늙음과 죽음을 목격한 적이 있는 것일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반려동물은 선천성 조로증에 걸린 아이처럼 대개 주인보다 일찍 소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하기에 사랑하는 존재의 마지막을 지켜야 한다. 또한 그 마지막은 떠나는 존재를 위한 여정이자 마침표가 되어야 한다. 미라와 대수가 아름을 지키기 위해 어떤 고난도 마다하지 않았듯, 또 아름이 온갖 질환에 시달리며 시력을 잃는 와중에도 어린 부모들의 이야기를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듯 말이다.
우리에게 크나큰 사랑과 행복을 주고 떠나는 반려동물을 위한 마지막 선물, 그것은 편안하고 존엄한 죽음이어야 한다. 좋은 죽음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냥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아픈 동물을 돌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데, 생명체의 죽음은 순간이 아닌 과정이다. 반려인은 동물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 동안 아주 어렵고 고독한 숙제를 해내야 한다.
동물의 좋은 죽음과 그것을 위한 준비는 반려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아이가 별이 된 뒤 어마어마한 상실감, 그것과 동전의 양면인 죄책감이 반드시 찾아온다. 아이 활력이 전만 못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을 찾았다가 심각한 상황을 진단받고 바로 입원을 시킨 뒤 병원에서 권하는 최대의 처치를 하던 중에 동물을 떠나보내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런 식으로 아이를 보내게 되면 보호자의 삶은 지옥이 된다. 황망한 죽음도 그렇지만 우왕좌왕하며 제대로 된 작별인사조차 건네지 못하고 아이 홀로 차가운 병원에서 삶을 마감하게 했다는 것에 크게 자책하게 된다. 아픈 동물을 위해 전력을 다 한 보호자 역시 마찬가지다. 죽음을 앞둔 한 생명체를 돌보는 것은 최선의 최선을 다해도 늘 부족하기 때문이다.
허둥대지 않는 죽음을 맞는 것은 무엇보다 소중한 동물을 위한 것이지만, 남은 보호자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우리는 죽음을 탐구하고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죽음은 무엇인지, 죽음의 과정은 어떠한지, 그렇다면 내 아이에게 좋은 죽음은 어떤 것일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그걸 너무 늦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