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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우주 Aug 05. 2022

마음의 준비: 죽음의 5단계

16 Ⅱ. 죽음에 대하여 ②

반려동물의 죽음 앞에 보호자가 느끼는 두려움은 비(非)반려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흔히 ‘펫로스 증후군’이라고 하는, 반려동물의 죽음 이후 일상생활을 이어나가기 어려울 정도의 상실감에 빠지는 이들이 드물지 않다.


죽을병 또는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인간은 대체로 다섯 단계의 심리반응을 거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암 환자의 심리 변화 5단계’, ‘비통의 5단계’, ‘죽음 수용의 5단계’ 등으로 알려진 죽음 수용 모델은 죽음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미국 정신과전문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zabeth Kübler Ross)가 1969년 발간한 책 <죽음과 죽어감 : On Death and Dying>에서 소개한 내용이다. 꼭 암이 아니더라도 불치병을 선고받은 당사자와 그 가족들에게 널리 통용된다. 스스로 겪어본 바, 또 아픈 동물을 돌보는 이들을 관찰해보니 시한부 선고를 받은 반려동물 보호자의 심리 단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죽음을 수용하는 5단계

1단계 부정과 고립(Denial and Isolation) : 내가 그럴 리 없어. 사실이 아닐 거야.

자신이 암에 걸린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암은 곧 죽음인데, 자신은 죽음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진을 의심하면서 여러 병원을 찾기도 한다.


2단계 분노(Anger) : 왜 하필 내가 이런 병에 걸렸을까.

여러 검사를 해봐도 암이 맞다고 하니 억울하고 화가 난다. 열심히 살았는데 암이라니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분노가 치밀고 감정의 기복이 커진다.


3단계 타협(Bargaining) : 그래 인정은 한다. 다만 언제까지 살았으면 좋겠다.

암에 걸린 것이 확실하기에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어쩔 수없이 제한적으로 현실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면 ‘자식이 결혼할 때까지’ ‘손자가 태어날 때까지’ 하는 식으로 조건을 단다. 교회나 절에 헌금을 하거나 평소에 하지 않던 봉사활동을 하는 등 좋은 일을 많이 한다. 활기차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하면 병의 진전이 느려지고 수명이 늘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4단계 우울(Depression) : 그래 내 차례다.

타협 단계에서 여러 일을 해봤지만 차도가 없고 암이 악화하면서 우울의 단계가 찾아온다. 심리적으로 무기력해지고, 극도의 상실감과 패배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 시기에는 ‘힘내’ 같은 말이 역효과를 부를 수도 있다.


5단계 수용(Acceptance) : 이제 더 이상 무슨 소용이 있나

더는 분노하지도 우울하지도 않고 다가올 죽음을 인정하면서 차분해지는 단계다. 과거 지나간 일이나 자신의 죽음에 관해서 이야기하며, 죽은 뒤 남을 가족을 걱정하기도 한다. 죽음의 두려움을 넘어 평화롭게 마지막을 준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지지와 도움이 필요한 시기다.


이런 심리 단계를 순서대로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환자에 따라 어떤 단계를 뛰어넘거나 여러 단계를 한꺼번에 겪기도 한다. 5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분노나 우울 단계에서 힘겹게 죽음을 맞기도 한다.

Grant Whitty(unsplash.com)

내 소중한 고양이가 만성 신부전 말기 진단을 받았을 때 나도 믿기 어려웠다. 유명한 수의사가 있는, 장비가 더 좋은 대형병원을 수소문했다. 또한 아이가 이런 나쁜 병에 걸리도록 보호자로서 그동안 뭘 했나 자괴감이 더해져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부정과 고립의 첫 번째 단계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아이가 진행성 불치병을 앓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면서 화가 나기 시작했다. 왜 내 고양이가 신부전인가, 좋은 것을 먹이려 했고, 사랑을 주며 아이의 행복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왜 이런 병에 걸렸는가 분노했다.


그러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는 단계가 왔다. 그래도 다음 생일까지는, 우리가 만난 지 10년 되는 날까지는 하는 식으로 아이의 생명 연장을 빌고 또 빌었다. 아이가 잘 버텨주기를, 저승사자가 길을 잘못 찾기를 바라면서 아픈 동물의 보호자들이 모이는 인터넷 공간에서 아이 케어에 필요한 물품을 적극적으로 나누기도 하고, 좋은 마음으로 누군가를 도와주기도 했다. 내가 복을 지으면 아이가 조금은 나아질 것이란 마음에서다. 일종의 협상이나 흥정으로 비치기도 하는데 죽음 수용의 세 번째, 타협의 단계다.


그래 봤자 아픈 아이는 크게 차도를 보이지 않고 더 나빠지는 것이 눈에 보인다. 깊은 우울감, 절망감에 빠진다. 물론 아이를 열심히 돌보지만 매사에 의욕이 없고 일상적으로 만나는 누군가가 안부를 건네면 화가 나기도 한다. 잘 지내는지 묻는 누군가의 살가운 인사엔 ‘자식 같은 고양이가 죽어 가는데 잘 지낼 사람이 세상에 있을 것 같냐’는 분노가 마음속에 소용돌이치고, “고양이는 좀 어때” “아픈 건 다 나았어?” 하는 걱정스러운 물음엔 ‘신부전은 낫는 병이 아니라고! 도대체 몇 번을 얘기해야 알아들을 건데?’ 하는 대꾸가 튀어나오려 한다. 이런 감정을 억누르다 때로 눈물이 갑자기 쏟아지기도 한다. 우울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마침내 아이의 상황이 돌이킬 수 없음을 인정하는 때가 온다. 그때서야 임종 준비를 시작하지만 허둥지둥, 나는 수용의 단계가 찾아온 것이 불과 아이가 떠나기 일주일 전이었다. 5단계에 빨리 접어들었다면 가망 없는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병원에서 각종 검사와 처치로 힘들게 하는 대신 조금 더 편안하고 따뜻한 우리만의 시간을 더 많이 보냈을 것이다. 내 딴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저 현실을 부정하는 몸부림임을 인정하고, 아이의 욕구를 가장 앞에 둔 호스피스 케어에 집중했을 것이다.  


나이 든 노령 동물 대부분의 죽음이 그럴 텐데 미미의 경우 ‘갑작스럽게 닥친 죽음’이라고 할 수 없었다. 나의 야옹이는 꽉 채운 열다섯 살이었고, 만성 신부전을 앓았다. 죽음은 성실하게 아이의 뒤를 쫓아오고 있었지만 반려인인 내가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 아이에게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인지하지 못한 것은 죽음이라는 불경스러운 사건을 떠올릴 수도 인정할 수도 없었던 탓이다. 조금 더 빨리 알았더라면, 아이가 탄 열차의 도착지를 받아들였다면 우리에게 허락된 길지 않은 시간 아이는 더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나 역시 그랬을 것이다. 예정된 죽음 앞에 귀한 시간을 낭비하며 적어도 아이를 괴롭히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진행성 불치병이나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는 동물을 돌보고 있다면 1~4단계를 가급적 짧게 거치고, 5단계에 이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가장 좋은 것은 아이가 건강할 때 한 번쯤 아이의 생애주기와 죽음을 떠올리고 준비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 사랑스러운 동물은 나보다 일찍 떠날 것이란 확실한 명제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또한 죽음과 죽어감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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