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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고양이를 구조한 날

by 김레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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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새해 첫 출근이었던 1월 3일, 나는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거의 다 되었을 무렵, 갑자기 사무실 2층 화장실 창문 너머로 아기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10년 동안 아무도 열어보지 않은 창고의 문을 열어서 고양이가 있는지 확인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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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 문을 열어보니 건물 지하 기계실까지 창살 사이로 바닥이 뚫려있는 위험한 공간이 보였고,

고양이 소리는 저 멀리 밑바닥에서 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새끼 고양이가 저 사이로 떨어져서 울고 있는 것이라 직감했다.

그래서 건물 관리하시는 소장님과 플래시 라이트를 가지고 지하 기계실, 그리고 기계실에서 이어진 온갖 공간을 다 찾아보았다.

소장님이 사다리를 타고 밀폐된 공간에 안착하시더니

"고양이 두 마리가 있는데.... 한 마리는 죽었고 한 마리는 덜덜 떨고 있네... 내가 꺼내 줄게요."라고 하셨다.

나는 급하게 기계실에 있던 택배 박스와 목장갑을 준비해서 살아있는 고양이를 건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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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지 몇 개월밖에 안돼 보이는 작고 작은 검은색 고양이를 건네받아서 택배 박스에 넣었다.

살려달라고 그렇게 울부짖었던 게 너였구나... 갑자기 마음이 너무 짠했다.

옆에 죽어있던 고양이도 비슷한 또래인 것 같던데, 그 아이는 아마 위에서 떨어지면서 골절로 죽었거나 오랫동안 지하 던전 같은 공간에서 밥과 물을 못 먹어서 굶어 죽었을 것으로 예상됐다.

무지개다리를 건넌 고양이는 소장님께서 천으로 잘 싸서 처리해주셨고,

살아있는 이 고양이는 내가 챙기게 되었다.

지상 2층에서 지하 2층까지, 총 4층 높이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우선 제일 걱정된 건 골절이었다.

너무 두렵고 걱정되고 안쓰러운 마음에 나는 바로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길냥이를 구조해서 동물병원에 데려가면 주인이 없을 경우 치료를 안 해주거나, 구청으로 보내졌다가 안락사당한다는 이야기가 머리에 스쳤지만,

혹여나 이 작은 고양이의 다리가 부러지지 않았을까 너무 걱정이 컸기 때문에 나는 앞만 보고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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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병원 원장님께서 혼이 나간 사람처럼 달려오는 나를 보고 조금 놀라신 듯했다.

자초지종을 설명드렸더니 원장님께서 새끼 냥이의 모든 뼈들을 하나하나 만지시면서 혹시 모를 골절상을 확인해주셨다. 다행히도 만졌을 때 느껴지는 골절 부위도 전혀 없고, 냥이가 불편해하거나 절뚝거리는 곳도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눈, 귀 상태가 매우 양호하고 배도 나름 통통해서 어미 냥이가 잘 관리해주면서 지낸 새끼 냥이 같다고 말씀하셨다.

하나 걱정이 되시는 건 냥이가 지하로 추락했을 때 폐에 문제가 생겨서 내부적으로 출혈이 생겼을 경우라고 하셨는데, 이건 바로 어떻게 확인이 불가능하고 다음 날 정도 냥이의 컨디션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원장님께서 전체적으로 냥이가 너- 무 멀쩡하고, 심지어 건강해 보이기까지 하다고 하셨다.

이 말을 듣고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 ㅠㅠ

그래도 지금은 상태가 괜찮다가 내일 내부 출혈이나 다른 건강상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하루는 병원에서 지내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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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병원에서 맡아주신다고 하셔서 얼마나 다행이던지...

그래도 이제 이 냥이의 주인을 찾아줘야 하는 큰 임무가 생겼기 때문에 숨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집에 가서 바로 지인들에게 고양이 입양 홍보 소식을 전했고, 고양이 카페에도 글을 올려서 이 냥이의 입양처가 빨리 정해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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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친 귀여운 비주얼에 임보 문의는 많이 들어왔지만, 입양처 찾는 건 상대적으로 어려웠다.

그래도 열심히 카톡 오픈 카톡과 지인분들 인스타그램을 통해 입양 공고를 알렸다.

아, 이때 이 냥이 이름도 지어줬다.

흑동이. 검은 호랑이의 해에 구조된 검은 고양이. 흑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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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오늘 오후, 다행히도 지인의 지인분께서 입양을 해주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혼자 사시는 약사 남자 집사님께서 흑동이의 가족이 되어주신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너무너무 너무 감사했다.

이렇게 빨리, 그리고 한 번에 입양처를 찾게 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래서 오늘 퇴근해서 다시 동물병원에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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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처 구해졌다는 소식을 전했더니 원장님도 진심으로 기뻐해 주셨다.

흑동이한테 많이 신경 써주신, 흑동이의 은인과도 같은 원장님 ㅠㅠ

입양 보내기 전에 레볼루션 (구충제)를 바르고, 케이지에 넣어서 새 집사님 댁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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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로 이동하는 한 시간 동안 울지도 않고 케이지에서 잘 버텨준 흑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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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지를 열고 어색해하는 흑동이를 밖으로 꺼내 주었더니, 어리둥절한 흑동이가 이곳저곳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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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자기 구역을 중시하는 고양이는 새로운 환경에 가면 어색해하고 적응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린다.

그래서인지 흑동이가 최대한 구석진 곳을 바로 찾아서 몸을 웅크리면서 상황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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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쿤이 장난감도 하나 던져줬지만 너무 긴장해서 별 관심도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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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몇 가지, 츄르 몇 개 가져온걸 새 집사님께 드리고 흑동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위험에 처했을 때 목청껏 울어줘서 고마웠고... 내가 구해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고....

그리고 이렇게 아프지 않고 새 주인까지 만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조금 울컥했다.

이틀밖에 안되었지만 정이 많이 든 것 같았다.

살아줘서 참 고마운 우리 흑동이.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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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집사님께서 '네로'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해주셨다고 연락이 왔다.

그리고 지금 침대 밑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고, 앞으로 네로의 근황도 자주 전해주시겠다고 하셨다.


묘생 역전한 우리 네로,

앞으로 새 집사님이랑 츄르 길만 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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