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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굽는 계란빵 Jul 10. 2023

책상이 필요한 이유

글 한번 쓰기 힘드네.

처음 글을 쓸땐 책상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노트북이 있고 의자가 있으면 그게 식탁이나 소파라도 글이 써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상이 아닌 다른 곳에선 글을 쓰는 집중력이 떨어졌다. 책상에 앉는 건 글을 쓰기 위한 일종의 루틴 같은 행동이다. 책상에 앉는다 → 노트북을 켠다 → 글을 쓴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 실험 같은 고전적 조건형성의 원리랄까.


책상에 앉는다 → 노트북을 켠다 → 글을 쓴다


책상에 앉는 루틴까지는 순조롭게 진행된다. 하지만 그 뒤로 방해꾼이 하나씩 등장한다. 먼저 첫 번째 방해꾼! 바로 남편이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이면 남편도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다. 책상이 안방에 있으니 남편과 같은 공간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냥 조용히 핸드폰을 하면 좋은데 남편은 내 등 뒤에서 유튜브를 크게 틀어놓고 시청을 한다. 


조용히 보면 좋을 텐데 재밌는 걸 보는지 히죽히죽 웃는다. 참다못해 이어폰을 찾아서 건네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글이라는 게 집중력을 필요하기 때문에 한 번 리듬을 타면 쭉 써지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머리를 쥐어짜도 잘 될까 말까 하는데 방해물이 너무도 많다. 


그리고 두 번째 방해꾼 아들이다. 올해 10살이 되는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이다. 조절 조잘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도 보고 싶은 말도 많은 나이. 내 이불 위에서 뒹굴 하면서 엄마, 엄마, 엄마를 계속 찾는다. 그럴 때면 이어폰을 끼고 있어도 그 소리가 귀에 들어와 꽂힌다. 


엄마로서 어찌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으랴. 이어폰을 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대답을 해준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루 1시간. 그 시간에 뭐든 걸 해결하지 않으면 글자 하나 책 한 줄 읽을 수가 없다. 이 시간에 야무지게 글을 완성해야 한다. 마음은 급한데 방해꾼들은 점점 더 나를 괴롭히고 내 머릿속의 생각은 맴맴 매미처럼 돌기만 한다. 


맷돌을 열심히 돌려야 하는데, 하루 종일 회사에 기력을 다 쏟고 오면 집에 와서 글자 하나 쓰기 어렵다. 그토록 원했던 브런치인데 자주 올리지 못하는 이유다. 비겁한 변명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내 사정이 그렇다. 글 쓰는 공간조차 여의치 않고 주어진 시간은 짧으며 방해꾼들이 너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이유는 예전의 나로 돌아가기 싫어서다. 박하사탕의 설경구는 '나 돌아갈래'라고 말했지만 난 내가 글을 쓰지 않는 그때로 돌아가기 싫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키는 루틴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마치 기계처럼. 


중꺽마라고 했던가,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예전의 나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오늘의 루틴을 포기할 수 없다. 그게 어떤 방해꾼이더라도 이겨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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