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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굽는 계란빵 Oct 01. 2023

반반 치킨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추석 명절이 시작되었다. 올해는 시어머니가 몸이 안 좋아 차례를 건너뛰기로 했다. 10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명절엔 시댁에 갔었다. 낯설고 무섭고 쾌쾌한 냄새가 났던 시댁. 낡은 주택이라 화장실도 잠자리도 편치가 않았다. 10년 정도 지냈으면 익숙해질법도 한데 그곳에 가면 난 늘 반반 치킨같다. 하나로 합쳐지지 않고 따로 따로 담긴 양념치킨처럼 서로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을 나눈 것처럼 말이다.


아이가 태어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처음부터 내 집이 아니었던 공간은 쉽사리 익숙해 지지않는다. 내가 좀 더 잘했어야 했는데, 시어른들 눈에 차지 않은 며느리가 살갑지도 못하니 아마 못마땅했으리라. 시간이 갈수록 진심을 담아 며느리 노릇을 해야 했나, 용돈이라도 팍팍 드렸어야 했나. 후회가 밀려들기도 한다. 


어차피 그들과 나는 영영 섞이지 못할텐데 왜 노력해야 하지 생각도 들고, 내 몫의 의무감이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마음이 동하지 않으니 전화 한 통도 숙제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결혼 초기부터 정말 어려웠던 전화숙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숙제다. 애써 웃고, 맞장구 쳐주고, 납작 엎드려 칭찬도 해야하는 연기는 아카데미상을 받아도 아깝지 않을 실력이다. 왜 나는 겉만 반즈르르하게 달콤하게 칠해진 양념을 발라야 할까? 다 털어내고 담백하게 보여주면 외면 받을까? 아니면 다신 먹지 않을 것처럼 맛이 없어져 볼까? 마음의 짐 덩어리는 점점 더 커진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번 연휴에 친정에서 반반 치킨을 시켜먹었다. 먹는게 남는 거라는 신조를 가진 엄마는 늘 먹이려고 애를 쓴다. 친정 엄마가 엎어키운 손주는 이미 엄마의 키를 넘어섰다. 얼마나 더 먹이려고 하시는지 가늠할 수 없지만 다 같이 시켜먹은 치킨은 맛이 참 좋았다. 다음날 배가 아파 고생은 했지만 달콤한 양념치킨은 맛있기만 했다. 친정에선 이렇게 맛있는 치킨인데 왜 그곳에선 그리되지 못하는 걸까?


그냥 양념이 발라진 후라이트 치킨일 뿐인데, 나는 왜 그 속에서 자꾸 나눠지려 하는걸까? 알다가도 모를 내 마음이다. 


© briewilly,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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