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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굽는 계란빵 Oct 07. 2023

이직을 하지 않은 이유

몇달 전 10년 전 함께 일했던 상사에게 전화가 왔다. 출산휴가를 쓰면서 퇴사했으니 9년 만인가. 종종 소식을 듣긴 했는데 전화가 온 건 처음이었다. 난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잘 지내냐며 쉬고 있냐고 물었다. 아이 낳고 한 번도 쉰 적이 없었는데 내 소식은 업데이트가 되지 않은 모양이다. 전화를 한 용건은 이직 제의였다. 얼마 전 회사의 팀장이 그만뒀다며 그 자리에 내가 와줬으면 했다. 


사실 지금 직장도 나쁘지 않아 만족하며 다니고 있긴 한데 연봉을 더 준다면 옮겨봐도 괜찮지 않나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 보고 연락을 준다고 하고 일주일 정도가 지났다. 일이 바빠 연락을 못했는데 면접이라도 볼 수 있게 시간을 내달라고 했다. 오랜만인데 인사도 할 겸 나간 자리는 면접이 아닌 식사 자리였다. 약속장소 근처 이자카야에서 안주를 시켜두고 이야기를 하는데 영 내키지가 않았다. 면접이라며 뭔 식사야. 자리에 앉아 있는 내내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았다. 


왜 그랬을까? 오랜만에 만났고 연봉도 많이 준다며 스카우트를 하는데 나는 왜 그 분위기가 싫었을까? 곰곰이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다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다. 남편도 내 이야기를 쭉 듣더니 내키지 않으면 가지 말라고 했다. 나는 알겠다며 그다음 날 연락을 드려 정중히 거절했다. 아무래도 내가 갈 자리가 아닌 것 같다고 죄송하다고 말이다. 그 뒤로 두 번쯤 더 연락이 왔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거였다. 나는 다른 분 면접 보시라며 한사코 거절을 했다. 


거절하는 마음도 좋지만은 않았다. 내가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움직여줬다면 좋았을까? 내 마음은 거절인데 돈 때문에 승낙할 필요가 있을까? 며칠간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리고 9월 말 추석 전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마땅한 사람이 구해지지 않는데 다시 생각해보지 않겠냐는 전화였다. 정말 징하다! 또 전화를 한다고! 내가 그렇게 거절했는데 왜? 정말 나 아니면 안 되는 거야? 회사가 이상한 거야? 나쁜 감정들이 가슴속에서 올라왔다. 


사람의 촉이라는 건 나이가 들수록 발달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 회사보다 연락 준 상사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것처럼 보였을까? 10년이 지났는데 더 좋은 곳에 갔거나 자기 사업을 했거나 뭐라도 되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상사에 대한 신뢰 없어지니 회사도 믿을 수 없었다. 추석이 지나고 거절의 의사를 다시 밝혔다. 아무래도 내가 갈 자리가 아닌 것 같다고, 고민해 봤지만 안 되겠다며 죄송하다는 인사를 했다. 


상사는 그 뒤로 연락을 주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했을까? 괜스레 마음이 쓰인다. 문득 10년 전 회사 다닐 때가 생각난다. 했던 말을 바꾸고 기분이 나쁘면 물건을 집어던졌다. 기분이 감정이었던 상사의 행동이 생각났다. 내가 왜 망설였는지 명확히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의 인성과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젠 알고 있기에 선택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사람이란 시간이 갈수록 잘 익어야 한다. 발전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만약 10년 뒤에도 똑같이 지낸다면 누구한테도 당당하게 연락하지 못할 것 같다. 선택받기 위해서라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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