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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Sep 07. 2022

마틸다 프루소바

세상에는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 도처에 널려 있다. 어떤 경우에는 우연한 일이 거듭되면서 놀라운 일의 진실이 드러나기도 한다. 때로는 어느 날 갑자기 돌발적으로 충격적인 비밀이 밝혀지기도 한다.

안드레이는 마법사 켈리를 쫓아낸  곧바로 마틸다 프루소바를 데리고 집으로 달려갔다. 켈리와 한바탕 싸움을 벌인 지니와 리즈도 마렉이 운전한 자동차에 동승했다. 안드레이는 자동차 실내거울을 통해 지니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지니는 그런 시선을 인식하지 못한  차창 밖으로 하늘만 바라보았다.

페테르카는 평생 동안 그리워하던 어머니가 눈앞에 나타난 줄도 모르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마담 테베스, 즉마틸다 프루소바는 의식불명 상태인 아들의  손을  잡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다른 사람들은  모습을 보면서 한참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안드레이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다 입을 열었다.

“당분간 제 집에서 아드님을 지켜보시면서 푹 쉬세요. 저는 다른 방에서 지낼 겁니다.”

마틸다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약간 숙였다.

안드레이는 마렉과 두 아이에게 나가자는 손짓을 했다. 그는 마렉을 데리고 유령여행사로 갔다. 지니와 리즈는 집으로 돌아갔다. 기절하는 바람에 황금소로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리즈는 궁금한 기색으로 질문을 던졌다.

“내가 기절한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지니는 리즈의 얼굴을 쳐다봤다.

“많은 일이 있었어. 지금은 설명하기 곤란해. 나중에 상세하게 이야기해줄게.”

리즈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건 내가 쓰러졌을 때 엄청난 빛이 번쩍였다는 거야. 그게 무엇이었을까?”

지니는 오른손으로 리즈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둘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리즈가 안드레이의 집에 다시 간 것은 사흘 뒤였다. 안드레이가 지니를 데리고 오라고 오전에 전화를 했기 때문이었다. 리즈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지만 지니는 며칠 전처럼 이번에도 받지 않았다. 리즈는 한편으로는 지니에게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기분이 약간 상하는 느낌을 숨길 수 없었다.

안드레이의 집에는 마렉도 와 있었다. 쿨은 마담 테베스 옆에 앉아 페테르카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할아버지를 돌보느라 잠을 설치고 제대로 먹지 못한 것처럼 얼굴이 꽤 수척해 보였다.

리즈는 쿨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네가 고생을 많이 하는구나.”

리즈는 그러면서 마틸다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원래 호기심 덩어리인 그는 왜 백 살이 넘었다는 할머니가 저렇게 젊어 보이는지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 시간이 꽤 흐른 뒤 그는 슬그머니 질문을 던졌다.

“할머니는 정말 백 살이 넘으신 거예요? 실례인 줄은 알지만 꼭 여쭤보고 싶었어요.”

마틸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게 계산하자면 백 살 하고도 스물한 살이 넘었어.”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백 살 같지는 않아요.”

“그렇겠지. 내 육체 나이는 아직도 40세 정도일 테니까.”

리즈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할머니는 독일군에게 총살당했다고 하던데.”

마틸다는 두 손으로 눈물을 살짝 훔쳤다.

남편은 결혼생활 15 만에 갑자기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어. 처음에는 남편이 남겨두고  재산으로   있었어. 그러다 집에 불이 나는 바람에 모든  잃고 말았어. 남은  지하실의 물건뿐이었어. 남편은 지하실에 자주 갔어. 나보고는  들어오게 했지. 그것 때문에 가끔 다투기도 했어.  그러는지 이유를 몰랐거든. 지하실에는 커다란 철제 상자 속에 정사각형 가방이 하나 들어 있었어. 처음 보는 가방이어서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지 못했지. 다른 물건은 하나도 없었단다. 철제 상자에 넣어 보관할 정도였으니 남편이 정말 애지중지했구나 싶었어.

재산을 몽땅 잃고 나니 먹고 살 길이 막막했지. 그러다 신문에서 프랑스 파리의 유명한 점쟁이 마담 드 테베스의 기사를 읽게 됐어. 그 여자 이름을 훔쳐 황금 소로에서 점쟁이 노릇을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내개 원래 점쟁이 기질이 있었던지 장사는 제법 잘 됐어. 낮에는 점을 봐주면서 밤에는 몰래 라디오에서 레지스탕스가 전해주는 연합군 소식을 들었어. 혹시 아들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시간이 갈수록 독일군이 몰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됐지.  내가 점을 잘 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엉뚱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어떻게 될 것이냐는 거였어. 처음에는 답을 하지 않았지. 너무 위험했거든. 워낙 많은 사람이 계속해서 질문하니 답을 안 할 수 없었어. 답을 못하면 엉터리 점쟁이로 몰릴 게 뻔했기 때문이야. 그래서 결국 이렇게 말했지.

‘독일은 전쟁에서 패합니다. 히틀러의 제3제국은 무너지고 맙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독일군 장교가 나를 찾아온 거야.

‘독일군이 전쟁에서 진다는 이야기를 자꾸 퍼뜨린다고 하더군요. 왜 그러는 거지요?’

‘점을 보러 온 사람들이 물어보는데 답을 안 할 수는 없지요. 답을 안 하면 모른다고 생각할 테니 말이지요.’

‘마지막 경고요. 다시 그런 엉터리 점을 퍼뜨리고 다닌다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두시오. 절대 빈말이 아니오.’

그 말을 듣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어. 점을 보러 온 사람들은 달아나라고 하더구나. 도망가려고 짐을 꾸렸어. 그때 지하실에서 발견했던 남편 가방 생각이 난 거야. 거기에 가지고 갈 만 한 게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황금소로의 방에서 혼자 울면서 가방을 열었지. 얼마나 슬프고 무섭던지. 그런데 뜻밖의 일이 일어난 거야. 가방을 열어보니 남편 편지가 들어 있었어. 자기가 사라질 경우 내가 이 가방을 찾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미리 써놓은 모양이었어. 거기에 충격적인 내용이 들어 있었어.”

마틸다는 가방에서 책 두 권과 편지 한 통, 빨간색 병, 그리고 노란색 병을 꺼냈다.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눈길이 병으로 쏠렸다.

“빨간색 병은 비었어. 안에 든 액체를 내가 마셔버렸거든. 노란색 병에는 액체가 아직 조금 남아 있어. 이 병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니?”

세 아이와 안드레이, 마렉은 마틸다가 손에 든 병에 든 액체가 어디에 쓰이는 것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마틸다는 남편이 남긴 편지를 읽었다.

“마틸다, 놀라지 말기를 바라. 빨간색 액체는 사람이 오래 살 수 있게 해주는 장수의 묘약이야. 한 병을 마시면 150~200년을 살 수 있어. 노란색 병은 모든 병을 치료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상처라도 낫게 해주는 영약이야. 쉽게 말해서 만병통치약이지.”

리즈는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했다. 동화책이나 만화에서만 보고 듣던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마틸다가 늘어놓고 있기 때문이었다. 놀라기는 지니와 쿨, 그리고 안드레이와 마렉도 마찬가지였다. 전설 속에서만 나오는 꿈같은 이야기를 마틸다는 서슴지 않고 털어놓았다.

“가방을 열었을 때에는 빨간색 병 하나와 노란색 병 두 개가 남아 있었어. 편지를 읽고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 돌이켜 생각해보니 남편이 참 특이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결혼했을 때 서른 살이라고 했는데 10년이 지나도 외모가 전혀 변하지 않았거든. 게다가 그 사람이 조제한 약은 기가 막힐 정도로 잘 들었어. 아무리 위독한 환자가 찾아와도 남편이 지어준 약 한 첩만 먹으면 다 나았지. 그래서 약국 장사가 그렇게 잘 됐던 거야. 아마 약을 지을 때마다 노란색 병에 든 액체를 조금씩 섞어 준 모양이었어.”

안드레이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무래도 믿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긴 어떤 사람이 이렇게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쉽게 납득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거짓말이라고 몰아붙이기도 어려웠다. 마틸다 프루소바가 살아있다는 게 그녀의 말이 진실이라는 증거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머리가 복잡하고 어지러웠다. 뭐가 진실인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마틸다는 안드레이의 생각을 눈치 챈 듯 그의 얼굴을 살짝 흘겨보았다.

“프라하에서 바로 달아날 수는 없었어. 독일군이 시내를 봉쇄한 거야. 허가증 없이는 누구도 시내 밖으로 못 나가게 됐어. 독일군이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더구나. 빨간색 병과 노란색 병을 꺼내 늘 호주머니에 넣어두었단다. 편지 내용이 사실이라면 곧바로 마시려고 했지. 그러면 안 죽는다고 하니까. 가방은 내 방의 비밀공간에 숨겨놨어. 며칠 후 마침내 독일군이 찾아왔어. 그들에게 붙잡히기 전에 서둘러서 노란색 병을 따서 약을 마셨지. 가슴이 조마조마했어. 이 약이 나를 살릴지, 아니면 남편의 장난에 불과할지 몰랐거든.

독일군에게 끌려가 정말 모질게 고문을 당했어. 달리보르카 탑에서 저질러졌다는 그런 종류의 고문을 그들도 하더라고. 그런데 정말 신기했어. 온몸이 찢어지고 터져 피투성이가 됐는데도 고통스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거야. 내 표정을 보고 독일군은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어. 다음날 프라하 외곽 처형장에 끌려갔지. 트럭 두 대에 실려 간 사람이 50명 정도는 됐을 거야. 처형장에는 총에 맞아 죽은 시체 수십 구가 떨어져 있는 큰 구덩이가 있었어. 독일군은 우리더러 구덩이 앞에 10명씩 차례대로 줄을 서라고 했어. 그리고는 탕탕! 총에 맞은 사람들은 모두 구덩이로 떨어졌단다. 나도 총을 여러 번 맞고 정신을 잃었어. 그때 이런 생각이 들더구나. 아! 이대로 죽는구나. 약이라는 게 엉터리였구나.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몰라. 주변이 아주 캄캄할 때였어.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드는 거야. 눈을 떠보니 시체 구덩이였어. 여러 사람 시체가 내 몸 위에 포개져 있더구나. 피비린내와 시체 섞는 냄새가 진동했어. 너무 놀라서 구덩이에서 뛰쳐나왔지. 몸을 만져보니 총상 흔적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 그제야 알게 됐지. 이게 정말 영약이었어!”

마틸다는 마치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듯 빨간색 병과 노란색 병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은 큰 충격에 휩싸여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길로 달아났단다. 프라하 외곽이었기 때문에 도망치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았어. 처음에는 결혼하기 전에 부모님이 살던 집으로 뛰어갔지. 거기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숨어 살았어. 워낙 외진 곳이어서 사람이 오가지 않기 때문에 들키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단다. 나중에 전쟁이 끝난 뒤 다시 황금소로로 돌아갔어. 거기에 숨겨놓은 가방과 돈을 챙겼지. 공산정권 때문에 점점 살기 어려워진 뒤에는 이탈리아로 달아났어. 처음에는 피렌체에서 숨어살았어. 혼자 사는 건 정말 무섭고 힘들었어.

피렌체에 간 첫날 밤 장수할 수 있다는 빨간색 병의 액체를 마셨어. 정말 신기하게도 나는 늙지 않게 됐어.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액체를 마실 때 그 모습 그대로였어. 나중에는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야. 생각해보렴. 사람이 늙으면 피부가 쭈글쭈글해지는 게 정상인데 마치 젊은이처럼 싱싱해 보이면 의심할 수밖에 없지. 할 수 없이 10년마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야 했어. 베니스, 로마, 나폴리 같은 도시를 돌아다니며 계속 숨어 살았어. 가는 곳마다 점쟁이 노릇을 계속했지. 노란색 병에 든 액체를 사용해서 남편처럼 약도 팔았어. 그 덕분에 곳곳을 옮겨 다녀도 힘들지 않을 만큼 돈을 벌 수 있었어.

10년 전 황금소로의 14번 집을 재정비해서 개방한다는 소식을 이탈리아 신문에서 보게 됐지. 이제는 나를 알아볼 사람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때 다시 프라하로 이사 온 거야. 매일 낮에 황금 소로에 올라갔지. 혹시 아들이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1%의 희망을 갖고 말이야. 그런데 어제 진짜 기적이 일어난 거야. 놀라운 기적이….”

사실 기적은 페테르카 프루소바가 살아있다는 게 아니었다. 마틸다가 영약을 마시고 120세가 될 때까지 죽지 않았다는 게 더 기적이었다. 안드레이는 도대체 그녀가 복용했다는 영약이 무엇인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당신이 살아 있는 걸 보면서도 믿기 힘든 이야기이군요. 그 영약은 도대체 무엇으로 만든 것입니까?”

마틸다가 이번에는 가방에 든 책을 꺼냈다. 얼마나 낡았는지 곳곳이 헐었고 손때가 새까맣게 끼어 있었다.

황금소로의 14 집이 개방된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읽고 나서야 가방에 빨간 가루는 물론 책도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지요. 갑자기  책이 뭔지 궁금해지더군요. 그때는 나폴리에  때였답니다. 책을 꺼내 읽어봤지요. 믿을  없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어요. 안드레이 , 혹시 ‘철학자의 이나 ‘크리스찬 로젠크로이츠라는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전설, 신화는 물론 역사를 놓고 보면 프라하에서 손꼽을 만한 전문가인 안드레이가 그걸 모를 이유가 없었다. 영약의 정체가 도대체 뭔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하던 그는 마틸다의 입에서 두 이름이 튀어나오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라하에서 연금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이름이었다. 누구라도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는 이름이었다.

“모두 제 손을 잡으세요.”

마틸다는 두 손을 양쪽으로 벌렸다.

“손은 왜요?”

안드레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로젠크로이츠를 만나러 갈 거예요.”

리즈는 머뭇거리다 그녀의 오른손을 잡았다. 안드레이와 마렉은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없었지만 시키는 대로 왼손을 잡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쿨이 섰다.

“눈을 감으세요.”

두 아이와 안드레이, 그리고 마렉은 눈을 감았다. 그들의 머릿속에 블타바 강이 떠올랐다. 한 사내가 강 위에 놓인 카렐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하루 종일 프라하 시내를 뜨겁게 달궜던 해는 서서히 기울었다. 건물에 드리워진 긴 그림자가 오늘 하루도 다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허름한 옷차림의 남자가 빨갛게 노을이 저물어가는 블타바강의 카렐 다리 위를 터벅터벌 걷고 있었다. 온통 때가 절은 얼굴은 피로해 보였다. 옷은 얼마나 오래 입었는지 먼지투성이에다 곳곳에 구멍이 나 있었다. 옷을 입었다기보다는 차라리 다 떨어진 헝겊을 이리저리 걸치고 있다고 하는 게 더 어울릴 지경이었다.

손에는 기다란 지팡이가 하나 들려 있었다. 얼마나 오래 사용했는지 끝 부분은 다 닳아 너덜거릴 정도였다. 그는 오른발에 샌들 한 짝을 신고 있었다. 반대쪽은 끈이 떨어져 벗겨진 모양이었다.

몸에서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지독한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온갖 오물이 흘러가지 못하고 갇힌 여름날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악취 같기도 했고, 내년 봄 농사를 지을 때 퇴비로 사용하려고 들판에 쌓아놓은 가축과 사람 똥이 썩은 구린내 같기도 했다.

가뜩이나 희한하게 보이는 차림새 때문에 눈을 흘기면서 피해 다니던 사람들은 기절할 것 같은 악취를 막으려고 두 손으로 코나 입을 가렸다. 냄새를 도저히 견디지 못해 다리 난간을 잡고 강 아래로 구토하는 사람도 있었다.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어떤 노인은 심지어 집에 가서 이렇게 우길 정도였다.

“카렐 다리에 서 있는 조각상도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고개를 돌릴 정도였어. 정말이야, 거짓말이 아니라니까.”

거지같은 차림으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인 프라하에 들어온 남자는 크리스찬 로젠크로이츠였다. 그는 튀링겐에 성을 갖고 있던 게르멜스하우스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였다. 그의 가문은 악마의 집안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멸족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 아버지, 어머니와 형제자매, 그리고 하인, 하녀까지 무려 100명 가까운 사람이 화형 당했던 것이었다.

로젠크로이츠는 어릴 때부터 씩씩하고 총명한 아이였다. 가문의 모든 사람이 그를 진심으로 아껴주었다. 악마 사냥이 벌어졌을 때 한 하인이 목숨을 걸고 그를 구해내 숲에 숨어 살던 수도사에게 보냈다. 수도사는 들키면 죽을 각오를 하고 수도원에 감춰 키웠다.

로젠크로이츠는 카렐 다리를 건너 구시가지 광장으로 걸어갔다. 해가 저물고 있어 상점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는 분위기였다. 길가에 노점상을 차렸던 장사치들도 짐 꾸러미를 꾸려 숙소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상인들은 도대체 사람인지, 귀신인지 구별할 수 없는 로젠크로이츠를 보며 수군댔다. 두려움과 호기심이 섞인 목소리였다.

“저것 봐! 저 사람은 도대체 뭐지?”

로젠크로이츠는 그들의 눈초리를 무시하고 운겔트에 들어갔다. 외국에서 장사를 하러 온 상인이나 프라하를 거쳐 가는 모든 외국인은 반드시 운겔트에 묵어야 했다. 그가 간 곳은 1층은 식당, 2층은 여관으로 이용되는 곳이었다. 식당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손님으로 북적였다. 거지같은 행색을 한 로젠크로이츠가 들어오자 종업원은 인상을 찌푸리며 다가왔다.

“우웩!”

종업원은 구역질을 시작했다. 로젠크로이츠의 악취를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것 봐. 이런 꼴로 여기 들어오면 안 돼. 구걸은 다른 곳에서 하도록 해.”

로젠크로이츠는 종업원을 옆으로 밀치고 안으로 더 들어갔다. 악취 탓에 종업원은 다가올 생각도 못했다. 식당 안에 있던 다른 손님들도 코를 막고 인상을 찌푸렸다.

종업원이 괴로워하는 사이 여관 주인이 곁에 왔다. 그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로젠크로이츠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더러운 몰골을 했지만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무슨 일이오?”

“며칠 묵어갈 생각입니다. 이곳에서 가장 구석에 있는 방을 주십시오. 악취가 좀 심할 겁니다. 몸부터 씻게 욕탕이 있는 방이면 더 좋지요.”

여관 주인은 로젠크로이츠를 위에서 아래까지 훑어보았다. 표정을 볼 때 거지는 아니고 긴 여행에 시달린 나그네인 것 같았다. 돈을 갖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우리 여관은 공짜 숙소가 아닌데.”

로젠크로이츠는 옷 안쪽에 감춰준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거기에서 노란 빛이 반짝이는 금화 한 개를 꺼내 주인에게 건네주었다.

“이 정도면 여기서 1주일 동안 먹고 자도 될 겁니다. 어서 방이나 주시지요.”

여관 주인은 금화와 거지 행색을 한 나그네의 얼굴을 차례로 살폈다. 오랜 경험으로 볼 때 가짜 금화는 아니었다. 그는 금세 태도를 바꾸었다.

“얼른 2층으로 가시죠. 물은 방에 준비 돼 있습니다.”

여관 주인이 로젠크로이츠를 데리고 간 곳은 2층의 맨 안쪽 방이었다. 방은 꽤 넓었다. 침대도 상당히 컸다. 방 안쪽에는 문이 열린 욕실이 보였다. 방의 왼쪽 창으로는 운겔트의 정원이 보였다. 바깥쪽 창 아래는 운겔트 바깥의 골목이었다.

여관 주인은 방에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신 로젠크로이츠가 어깨에 멘 보따리를 물끄러미 살폈다. 허리에 금화가 두둑하게 든 주머니를 차고 다닐 정도면 보따리에는 뭐가 들었는지 궁금한 표정이었다.

로젠크로이츠는 주인을 어서 내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일부러 보따리를 열어 안에 든 물건을 침대에 꺼냈다. 빨간색 돌 하나와 책 여러 권이었다. 이렇게 하면 주인의 의심을 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희한한 돌이군요.”

여관 주인은 돌에 눈길을 두었다. 로젠크로이츠는 돌을 들며 웃었다.

“여행을 하다 길에서 주운 거요. 색이 예쁘기에 집에 가져가서 세공을 잘 하면 멋진 장식품이 될 것 같더군.”

돌을 살피던 여관 주인의 눈에 문득 책의 제목 일부가 들어왔다. ‘연금술’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그는 원래 연금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며칠 전 만난 프랑스 출신 연금술사의 이야기가 머리를 스쳤다.

‘연금술의 최종 목표는 빨간색으로 빛나는 철학자의 돌이라네. 세상의 모든 신비를 다 담은 아름다운 돌이지.’

여관 주인의 눈이 반짝 빛났다. 로젠크로이츠는 돌과 책을 챙기느라 이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여관 주인이 나간 뒤 로젠크로이츠는 문을 걸어 잠갔다. 방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식탁을 밀어 문 앞을 막았다. 그는 일단 책과 돌을 숨기고 목욕을 할 작정이었다. 침대 위쪽에 놓인 작은 장롱이 눈에 띄었다. 장롱 아래쪽에 아주 낮고 좁은 공간이 보였다. 그는 그곳에 책 두 권을 밀어 넣었다. 손은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손가락 두 개로 책을 겨우 밀 수 있을 정도였다. 장롱 아래에 빨간 돌과 다른 책은 넣을 수 없었다.

‘돌은 품에 안고 자야겠군. 중요한 책은 숨겼으니 나머지는 침대 머리맡에 놓아두고.’

마음을 푼 로젠크로이츠는 편안하게 목욕을 즐길 수 있었다. 지난 10년간의 고생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제 모든 게 끝나간다고 생각하니 몸과 마음이 동시에 푸근해졌다.

‘이제 내일이면 모든 게 잘 풀릴 거야.’

로젠크로이츠는 밤 산책을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빨간 돌과 책만 놔두고 밖에 나갈 수는 없었다. 여관 주인이 아무래도 수상했던 것이다. 그는 목욕을 마치고 창가에 앉았다. 몇 시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창밖의 운겔트 정원은 어두웠다. 등불이 켜진 방 한두 군데를 제외하고는 모든 곳이 캄캄했다. 그는 어두운 정원을 한참동안이나 무심히 바라봤다.

‘저 어둠은 내가 예수의 무덤을 찾겠다며 10년 전 아랍에 갈 때의 마음과 같구나.’

수도사의 보호를 받으며 자란 로젠크로이츠는 비밀 종교조직인 장미십자회를 창설했다. 고대의 비밀을 밝혀 주님의 나라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간다는 게 이 조직의 목표였다. 그는 10년 전 예수의 무덤을 찾아 기독교에 일대 파란을 일으키겠다며 아랍으로 건너갔다. 아랍인과 교역을 많이 하던 키프로스를 거쳐 다마스쿠스로 간 것은 몽골군이 아랍을 침공할 무렵이었다. 몽골군의 만행을 피해 달아난 지식인이 모두 그곳에 모여 있었다.

로젠크로이츠는 다마스쿠스에서 여러 해 동안 살았다. 인근의 페즈에 있는 점성술, 연금술, 마법 학교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거기서 <인간의 실수>, <행복의 연금술>, <황금의 초원> 같은 연금술 책을 수없이 읽었다. 마침내 철학자의 돌을 구하고 그 돌을 만들 수 있는 책도 얻어 장미십자회 본거지인 파리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1년 전 다마스쿠스를 떠난 그는 이스탄불을 거쳐 유럽에 들어왔다. 유럽의 각 도시를 거치면서 장미십자회 여러 동지의 도움이 없었다면 프라하까지 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로젠크로이츠는 부다페스트에서 만난 장미십자회 지부장의 말을 떠올렸다.

‘프라하의 구시가지 광장에서 ‘책을 파는 얀’을 찾으시면 됩니다. 그곳에 서점상이 그다지 많지 않으니 그를 만나는 게 힘들지는 않으실 겁니다.‘

로젠크로이츠는 운겔트의 여관에서 하룻밤 묵은 뒤 곧바로 다음날 아침 광장에 ‘책을 파는 얀’을 찾으러 갈 작정이었다. 그를 만나면 숙소를 바로 옮길 생각이었다. 이렇게만 되면 빈까지 가는 건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였다. 빈에는 장미십자회 동지가 수두룩했다. 장미십자회 본부가 있는 프랑스까지 마차를 타고 안전하게 갈 수도 있었다.

‘오늘 밤만 잘 넘기면 모든 게 끝이야. 이 돌과 저 책 두 권만 잘 챙겨 가면 돼.’

자정이 다 돼 갈 무렵 갑자기 운겔트 입구가 환해졌다. 누군가 등불을 들고 조그마한 입구로 들어왔다. 등불을 든 것은 한 명이 아니었다. 여러 명이 줄을 지어 안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등불을, 허리에는 칼을 찬 병사들이었다.

‘병사들이 이렇게 깊은 밤에 왜?’

로젠크로이츠는 밖에서는 볼 수 없는 창틀 사이에 몸을 숨겼다.

병사들은 소리를 죽여 조심스럽게 걸었다. 그들이 멈춘 곳은 로젠크로이츠가 묵은 여관 앞이었다. 곧이어 여관 주인이 밖으로 나가 그들을 맞았다. 그는 무언가 수군거리면서 손가락으로 로젠크로이츠가 묵은 2층 방을 가리켰다.

‘나를 밀고했구나.’

로젠크로이츠는 그제야 모든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여관 주인이 빨간 돌과 연금술 책을 보고 행정관청에 신고한 게 분명했다.

‘프라하는 ‘연금술의 수도’라고 불릴 정도이니 누구나 연금술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거야. 보따리 속을 보여준 내가 멍청했어.’

로젠크로이츠는 문을 열어 밖을 내다봤다. 아직 병사들이 2층으로 올라오지는 않았다. 그쪽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 달아날 길은 운겔트 밖의 골목뿐이었다. 그는 이불을 찢어 길게 묶었다. 끝을 침대 머리에 단단히 묶고 나머지를 창밖으로 던졌다.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에서 조심스러운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희미한 등불 빛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남은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로젠크로이츠는 몸을 숙여 장롱 밑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얼마나 깊이 들어간 것인지 책을 잡을 수 없었다. 장롱을 옆으로 밀어보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음이 급하다 보니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일단 달아나는 게 급해. 철학자의 돌이라도 챙겨야겠어.’

로젠크로이츠는 돌과 나머지 책을 품에 넣었다. 이불을 찢어 만든 밧줄을 붙잡고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병사들이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 것은 그가 여관 벽의 중간 정도까지 내려갔을 때였다.

병사들은 쿵쾅거리며 방을 돌아다녔다. 그들은 처음에는 방 안의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로젠크로이츠가 막 골목길 바닥에 발을 디뎠을 때에야 한 병사가 창밖을 내다보며 소리를 질렀다.

“저놈이 골목길로 달아났다. 잡아라.”

로젠크로이츠는 앞뒤 잴 것 없이 카렐 다리 쪽을 향해 달렸다. 아랍으로 건너갈 때 프라하를 지나가면서 며칠 묵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구시가지 쪽 길은 대충 알고 있었다.

다행히 카렐 다리에서 보초를 서던 병사들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꾸벅꾸벅 조는 중이었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그들을 지나 다리를 건너갔다. 다리를 절반쯤 지났을 때 뒤에서 추격하는 병사들의 함성이 들렸다.

“저 놈 잡아라.”


마틸다는 눈을 떴다. 다른 사람들도 눈을 떴다. 그들의 머리를 가득 메웠던 블타바강의 풍경은 사라지고 다시 눈앞에 나타난 것은 페테르카가 누운 침실이었다.

안드레이는 방금 머릿속에서 본 환상을 믿을 수 없었다.

“도대체 이건 뭔가요?”

마틸다는 빙긋이 웃었다.

“철학자의 돌에는 온갖 신기한 능력이 있다는 걸 잘 아시잖아요?”

안드레이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마틸다는 그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로젠크로이츠는 아랍에서 구한 철학자의 돌을 갖고 있었지요. 그는 여관 주인의 밀고를 받은 황제가 보낸 병사들이 오는 걸 보고 창문 너머로 달아났답니다. 블타바 강을 건너 달아나다 그만 돌을 강에 빠뜨리고 말았다고 하더군요. 로젠크로이츠가 프라하에 왔을 때 여관에서 일하던 직원 중에 프루소바라는 소년이 있었어요. 그는 방을 청소하다 장롱 깊숙한 곳에 처박힌 작은 가방을 발견했답니다. 연금술 서적 두 권과 빨간 가루가 든 가방이었지요. 그는 주인 몰래 가방을 빼돌렸어요. 그것이 바로 이 것이랍니다.”

“그렇다면 그 빨간 가루가?”

“철학자의 돌을 갈아놓은 가루였어요. 소년 프루소바는 독학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답니다. 책 내용을 이해하게 됐지요. 나중에 가루로 이 약을 만든 겁니다. 물론 황금도 만들었겠지요. 그 소년은 남편의 조상이었다고 하더군요.”

난해한 이야기였지만 마틸다의 주장은 역사적 사실과 완전히 일치했다. 로젠크로이츠와 철학자의 돌 그리고 독일군의 프라하 만행과 운겔트까지. 조금이라도 앞뒤가 맞지 않거나 억지로 끼워 맞춘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안드레이는 마틸다에게서 책을 건네받아 차분히 살펴보았다.

리즈는 철학자의 돌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하기야 연금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그 돌에 대해 들어본 거라고는 <해리 포터>에 나오는 내용뿐이었다.

“그 돌이 도대체 뭔가요?”

“연금술이 무엇인지는 아니?”

“쇠를 금으로 만드는 기술 아니에요?”

리즈는 애니메이션이나 동화에서 읽은 내용을 아무 생각 없이 이야기했다.

“기본적으로는 그렇지. 하지만 연금술은 그 이상의 기술이었단다.”

이번에는 여전히 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 안드레이가 말을 이어받았다.

“금을 만드는 것은 연금술의 극히 일부분이야. 연금술의 최종 목표는 철학자의 돌을 만드는 거였어.”

“철학자의 돌을 만든다고요?”

안드레이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돌을 만드는 과정을 ‘마그눔 오푸스’라고 불렀지. ‘위대한 작업’이라는 뜻이었어. 마그눔 오푸스는 니그레도(흑화), 알베도(백화), 키트리니타스(황화), 루베도(적화)의 네 단계로 이뤄져 있었다고 하더구나. 1세기에 살았던 여성 연금술사 마리아가 개발한 방법이었다고 하지. 그의 이야기를 다룬 책도 있었어. <철학자의 돌에 대한 마리아와 아로스의 대화>였어. 마리아는 마그눔 오푸스를 이렇게 설명했어. ‘자연을 뒤집어라. 원하는 걸 발견할 것이다. 하나는 둘이 되고, 둘은 셋이 된다. 세 번째에서 네 번째가 나온다.’”

리즈는 직접 듣고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철학자의 돌은 생명의 영약이라고 불렸어. 연금술의 비밀이자 최종 목표였지. 이 돌만 있으면 금을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불멸의 영약도 제조할 수 있었어. 불멸이 뭔지는 알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요?”

리즈와 쿨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옛날 사람들은 세상은 열기와 냉기, 건기와 습기라는 네 가지 성질로 이뤄졌다고 믿었어. 불은 열기와 건기, 흙은 냉기와 건기, 물은 냉기와 습기, 공기는 열기와 습기가 합쳐진 거라고 생각했지. 금속도 네 가지 기본 성질이 합쳐진 덕분에 생성된 거라고 봤어. 두 가지는 외적 성질이고 다른 두 가지는 내적 성질이라고 본 거야. 이러한 성질을 다시 배열해서 비율을 잘 배분하면 한 가지 금속을 다른 금속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어. 변화를 일으키려면 그리스어로 제리온, 아랍어로 알-이크시르라는 물질이 필요했어. 제리온과 알-이크시르는 건조한 빨간 덩어리나 가루 형태라고 사람들은 생각했어. 그게 바로 철학자의 돌이었던 거야.

철학자의 돌이 가진 능력은 엄청났고 무한했다고 소문이 났어. 황금을 만드는 건 가장 기초적인 것이었어. 돌에 약초를 몇 가지 섞으면 불로장생의 묘약을 만들 수 있다고 했어. 다른 약초를 넣으면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조제할 수도 있고, 몇 가지 용액을 더 추가하면 무엇이든 녹일 수 있는 만물용해액을 제조할 수 있었어. 구체적인 방법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흙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액체를 만들 수도 있고, 유령을 되살리는 약도 만들 수 있다고 했어. 더 놀라운 것은 돌가루에 몇 가지 약을 넣으면 우주의 진리를 깨달을 수도 있다고 했어. 나는 철학자의 돌을 단순히 전설에만 나오는 걸로 생각했지. 그런데 마틸다 씨를 보니 이제 그걸 안 믿을 수가 없게 됐구나.”

마렉은 얼마나 놀랐던 것인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런 돌을 손에 쥘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만화책에서나 나오는 세계정복도 가능하겠구나. 꼭 그게 아니더라도 영원히 죽지 않으면서 안락하게 사는 것은 충분하겠어. 그는 문득 그런 돌이라면 누구라도 갖고 싶어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이 철학자의 돌을 찾아 헤맸지. 하지만 돌을 발견하거나 만든 사람은 거의 없었어. 신은 그걸 아무에게나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야. 신의 축복을 받은 극소수에게만 주어진 선물이었어.”

“켈리가 가방을 그렇게 찾아다닌 게 그 돌가루를 구하려고 했던 것이었을까요?”

“지금 현재 상황을 보면 그런 것 같아. 그걸로 무엇을 하려는 건지는 아직 모르겠어. 그건 중천에 가보면 알게 되겠지. 마담 테베스! 그 돌가루는 어디에 있습니까?”

안드레이는 문득 돌가루의 소재가 궁금해졌다.

마틸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러 해 전에 버렸답니다. 깊은 산속에 뿌렸지요. 비가 여러 차례 내렸을 테니 지금은 녹아 땅속으로 들어갔을 거예요.”

“아니 왜요? 그 귀중한 돌가루를?”

침대에 누운 페테르카도 놀라 눈을 번쩍 뜰 수 있을 만큼 크게 안드레이, 마렉 그리고 두 아이는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제가 오래 산 것도, 외국을 떠돌아다니며 놀라운 점쟁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 것도 다 철학자의 돌 덕분이었답니다. 하지만 오래 사는 게 그리고 여러 가지 탁월한 능력을 가지는 게 꼭 좋은 건 아니었어요. 정말 힘들었지요. 남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눈치를 봐야 하고, 10년마다 도망치듯 이사를 가야 했지요. 어느 누구하고도 깊이 있게 대화를 할 수 없으니 외롭기도 했고요. 오히려 죽고 싶을 때가 더 많았답니다. 여러 차례 자살을 할 마음을 먹기도 했지요. 용기가 없어 결국 실패하고 말았지만…. 그 가루와 이 책이 있으면 다시 영약을 만들 수 있답니다.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어요.”

일흔을 앞둔 안드레이는 마틸다의 말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도 나이가 들수록 산다는 게 점점 외롭고 힘들다고 생각했다. 평생을 함께 지내온 친구들이 하나씩 둘씩 세상을 떠나는 걸 볼 때는 더욱 그랬다. 모든 사람이 다 같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산다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세상일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남들은 일찍 세상을 떠나는데 나만 오래 산다면 오히려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마틸다의 말은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세상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을 때 행복한 곳이지요.”

마틸다는 다시 페테르카의 손을 잡았다.

“외국에 숨어 살 때 의아한 생각이 들었어요. 남편은 왜 이런 약을 쓰지 않고 그냥 죽었을까?”

안드레이와 리즈도 사실 처음부터 그 점을 생각하고 있었다. 남편의 사망을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외국에서 돌아온 뒤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자료를 찾아봤답니다. 행정관청에서 남편의 출생 기록을 살피러 갔어요. 그런데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았어요. 도대체 믿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아기가 태어나면 모든 상황을 적은 기록을 남기게 돼 있는데 그게 없었던 겁니다.”

“다른 기록이 있지 않을까요? 세금을 낸 기록이라든가. 집을 사고 판 문서라든가. 거기에 보면 남편의 흔적이 있지 않을까요?”

마틸다는 고개를 흔들었다.

“저도 그걸 다 살펴봤답니다. 놀랍게도 남편은 세금을 한 번도 낸 적이 없었어요. 세금을 내라고 고지서가 간 적도 없었고요. 집은 남편이 아니라 다른 사람 명의로 돼 있더군요.”

“어떻게 된 일이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남편에게는 친척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어요. 친구를 사귀지도 않았고요. 남편은 아마 저와 결혼할 때 이미 200년 이상을 살았을 거예요.”

침대 주변에 서 있는 안드레이와 마렉, 리즈, 그리고 쿨은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갈수록 점입가경이었다.

“제가 너무 오래 사는 것에 싫증을 내면서부터 남편이 병에 걸려 죽은 이유를 알 수 있게 됐답니다. 남편도 저와 똑같이 생각했던 것이지요. 사실 남편은 살아 있을 때에도 카를교에 가서 멍한 표정으로 강물을 주시하던 일이 자주 있었어요. 가끔 ‘사는 게 지겨워’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그때는 그 것이 무슨 말인지 몰랐죠.”

안드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남편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 한 번 태어나서 오래 살든, 여러 번 태어나서 오래 살든 죽지 않고 계속 산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 아니라 지겹도록 괴로운 일이지요. 외로운 일이기도 하고요.”

안드레이와 달리 리즈와 쿨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둘은 마틸다와 안드레이가 나누는 대화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게 뭐가 나쁜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삶의 진실을 알기에는 너무 어렸다.

마틸다는 페테르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장수할 수 있게 해주는 빨간색 약은 비었어요. 남은 건 질병과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노란색 병 하나뿐이에요. 이걸 마시게 하면 페테르카는 눈을 뜨겠지요.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네요. 지금 눈을 뜨더라도 이 아이에게는 살 수 있는 시간이 몇 년 남지 않았겠지요? 나는 이렇게 새파랗게 젊고 앞으로 더 오래 살 수 있는데…. 그때는 가슴을 쥐어뜯고 눈물을 뿌리면서 아들과 이별해야 하겠지요? 차라리 아들을 다시 만나지 않았다면 이런 슬픔은 겪지 않아도 될 텐데….”

안드레이는 페테르카의 감긴 눈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와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티 하나 없이 맑게 빛나던 선량한 눈이었다.

“페테르카는 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살아 있는 아들을 다시 한 번 더 만나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저라면 미래의 일은 미래에 걱정하고, 지금 일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안드레이는 전혀 숨기거나 덧붙임 없이 솔직하게 견해를 밝혔다. 그는 원래 현재 이 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현재를 제 멋대로 허비하자는 게 아니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히지 말고 현재를 소중하고 알뜰하고 귀하게 보내자는 것이었다.

“과연 그럴까요?”

안드레이는 말없이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주저하던 마틸다는 노란색 병의 뚜껑을 열었다. 아주 독특한 향기가 순식간에 방을 가득 메웠다.

“아주 오래된 아랍산 도금양이군.”

안드레이는 눈을 감고 코를 벌렁거렸다.

마틸다는 병을 기울여 아들의 입에 액체를 한 방울 떨어뜨렸다. 그리고 다시 병의 뚜껑을 꼭 닫아 호주머니에 넣었다.

“액체의 기운이 이 아이의 온 몸을 돌아다닐 거예요. 다 나으려면 하루 이틀 정도 걸릴 거고요.”

안드레이는 약간 흥분한 표정으로 두 손을 비볐다.

“페레트카가 다 나을 때까지 마담 테베스는 여기 계시는 게 안전할 겁니다. 유령 켈리가 대낮에도 나타나 공격한 걸 보면 제 생각보다 훨씬 강한 마법을 가진 것 같습니다. 유령 여행사에 들른 두 아이가 우리를 찾아 황금소로에 오지 않았더라면 정말 큰 일이 날 뻔했습니다.”

마렉은 황금 소로에서 일어났던 일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켈리가 마담 테베스의 머리를 뒤지다가 가방을 왜 닫느냐고 소리를 지른 게 기억났다.

“켈리가 한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요? 가방을 열라는 건.”

“장수의 영약을 마시면 오래 사는 것 외에 한 가지 효능이 더 있지요. 마음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랍니다. 그 유령이 제 머리를 뒤질 때 저도 유령의 머리를 들여다봤지요. 가방에 들어 있는 빨간 가루를 원하더군요. 그걸 어디에 버렸는지를 알게 되면 큰일이 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머릿속에서 가방을 닫아버렸지요.”

“다른 건 본 게 없으신가요?”

“특이한 장면이 보였어요. 아주 어두운 세계였어요. 그곳이 어딘지는 모르겠더군요. 가 본 적이 없는 곳이니까. 어쨌든 그곳을 들어가고 나올 수 있는 입구에 큰 신전이 하나 있더군요. 그 신전에서 켈리가 보였어요. 그 자가 손을 빼는 바람에 더 이상은 확인할 수 없었답니다.”

안드레이의 머리에 검은 대리석으로 기둥을 세운 커다란 신전이 떠올랐다. 중간세계의 신전, 스비아토가 갇힌 신전? 그 자가 왜 거기에? 그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띠리리!”

마렉의 휴대폰이 크게 울렸다. ‘유령 여행사’를 혼자 지키는 카롤리나의 휴대폰 번호가 찍혔다. 그는 조용히 방에서 나갔다.

“여보세요.”

마렉은 최대한 음성을 낮춰 전화를 받았다. 방에 있는 사람들 귀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

“예, 알겠어요. 사장님 모시고 바로 갈게요.”

마렉이 눈에 핏발을 세운 채 방으로 뛰어왔다.

“사장님, 켈리가 숨은 곳을 찾았답니다.”

“은신처를? 어디에 숨었지?”

“파우스트의 집 지하실이라고 합니다. 요원들은 벌써 출동했답니다.”

“우리도 서둘러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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