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o Sep 13. 2022

파우스트의 집

안드레이와 마렉이 리즈를 데리고 달려간 곳은 카를 광장 앞 네모츠니체 거리에 있는 ‘파우스트의 집’이었다. 

안드레이는 허탈하게 웃었다.

“코앞에 숨어 있는 걸 몰랐군.”

파우스트의 집 주변 도로는 많은 경찰관이 통제하고 있었다. 바리케이드를 가져다놓고 저지선도 설치해 아무도 근처에 얼씬할 수 없게 했다. 

“이렇게 많은 경찰관이 출동한 걸 보는 것은 처음이에요. 정말 큰 난리가 난 것 같아요.”

리즈는 분주히 움직이는 경찰관을 보면서 감탄하듯이 말했다.

“사실 경찰관이 아니야. 경찰관처럼 꾸민 유령관리인이지.”

마렉이 잘난 척 하며 씩 웃었다.

딱!

안드레이가 마렉의 뒤통수를 세게 때렸다.

“입 조심해. 쓸데없는 이야기하지 말고.”

마렉의 얼굴이 벌게졌다.

파우스트의 집 주변에는 그야말로 유령관리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많았다. 다들 까만 양복을 매끈하게 잘 차려 입고 까만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건물 주변의 도로에 이상한 장비를 설치하고 있었다. 높이 1m 정도의 철제 장대였다. 

리즈는 차에서 내려 걸어가면서 장대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장대들은 뭔가요?”

마렉은 이번에도 늦을까봐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극초단파와 자외선을 발사하는 장대란다. 극초단파와 자외선을 동시에 발사하면 유령을 가둘 수 있단다.” 

딱!

안드레이는 어김없이 마렉의 뒤통수를 때렸다.

“제발 입 좀 다물어. 아이한테 왜 계속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 거지?”

마렉은 뒤통수를 근질였다.

“물어보기에….”

리즈는 이번에는 안드레이를 올려다보면서 물었다.

“선글라스를 낀 사람들은 유령관리인인가요?”

“그래.”

안드레이는 마렉과는 달리 아주 짧게 대답하고 입을 다물었다.

하늘에는 드론 두 대가 날아다녔다. 호기심이 많은 리즈의 눈이 그걸 놓칠 리 없었다. 

마렉은 입이 근질거렸다. 그는 리즈의 귀에 손을 가져다대고 소곤거렸다.

“유령이 하늘로 달아나지 못하게 위에서 극초단파와 자외선을 쏘는 기계야.”

“왜 유령은 극초단파와 자외선에 꼼짝을 못 할까요?”

마렉은 소리를 낮춰 대답했다.

“옛날부터 유령위원장이 유령을 붙잡을 때에 사용하던 빛이 있었어. 다들 그게 뭔지 몰랐어. 20세기 들어 연기처럼 보이는 유령의 성분을 과학적으로 조사해봤지. 그랬더니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어. 바로 전자파와 똑같다는 거였어. 유령이 근처에 나타나면 TV 화면이나 라디오 소리가 지지직거리는 건 유령 전자파 때문이야. 유령위원회는 그걸 바탕으로 유령을 붙잡는 과학 도구를 만들었어. 유령관리인이 사용하는 손전등이 바로 그거야.”

안드레이는 마렉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그냥 앞으로 계속 걸어갔다.

“사장님, 오셨군요.”

갈색 양복을 입고 검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중년 남자가 잎이 무성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햇빛을 피하는 안드레이 곁으로 다가왔다. 

“마테이 노박!”

안드레이는 노박이라고 불린 사내를 껴안고 인사를 나눴다.

“발 빠르게 대처했군.”

“사장님이 황금소로에서 사고가 났다고 연락하시자마자 전 대원을 동원했습니다. 시내에 설치된 CC-TV를 모두 다 돌려 보니 켈리가 찍혀 있더군요. 사장님 말씀대로 다른 유령보다 매우 선명한 모습이었어요. 그 자가 달아난 경로를 따라 CC-TV를 다 살폈습니다. 그랬더니 이 집이 나오더라고요.”

“자외선 CC-TV가 시내 곳곳에 깔려있지 않았다면 못 찾았을 거야. 여기 숨어 있을 줄은 몰랐군. 조금 먼 곳에 은신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역시 보통 녀석이 아니야.”

책을 많이 읽은 리즈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파우스트의 집이라면 독일의 괴테가 쓴 책에 나오는 장소 아닌가요?”

“이름은 비슷하지만 여기는 전혀 다른 곳이야. 이곳은 먼 옛날에는 슬라브 족이 숭배하던 죽음의 신 모라나에게 제사를 지내던 장소였어. 14세기에 오파바 공작이 이곳에 처음 집을 지었어. 그는 연금술에 푹 빠졌고 악마를 숭배하던 사람이었지. 그래서 이곳을 악마의 집이라고도 불러. 왜 파우스트의 집이라고 부르는지는 아무도 몰라. 켈리는 프라하에 왔을 때 황제에게서 받은 돈으로 이 집을 사서 오래 살았어.”

“쉽게 말해서 수백 년 만에 귀가한 거로군요.”

노박의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지하실로 드론과 발광 공을 내려 보낼 거랍니다. 상황을 살펴본 다음에 진입작전을 개시할 겁니다. 그런데 지하실에 켈리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계십니까?”

“유령이 더 있단 말인가?”

안드레이는 뜻밖의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젯밤에 이곳이 은신처라는 걸 확인하고 유령관리인이 인근에 숨어 살폈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유령도 이곳으로 들어가더랍니다. 적어도 10명은 될 것 같다더군요.”

“10명이나? 그 많은 유령이 여기 왜 모였을까?”

“붙잡아보면 알겠죠.”

“신분은 확인해봤나?”

리즈는 놀란 표정으로 마렉을 올려다봤다. 유령의 신분을 확인하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마렉은 안드레이를 힐끔 쳐다봤다. 리즈에게 설명해주고 싶지만 안드레이 때문에 꾹 참는 모습이 역력했다.

“본부에서 파악하고 있습니다. 한 명은 이미 알아냈고요.”

노박은 휴대폰에서 받은 문자를 안드레이에게 보여줬다. 거기에는 ‘유령 번호 118번 틴 성모 교회 안나 노바코바’라는 글자가 찍혀 있었다. 안드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에 이 할머니가 낮에 틴 성모 성당 앞에서 돌아다니는 걸 아이들이 봤다더군. 마렉이 찾으러 갔더니 도망가고 없었어. 게다가 오늘은 황금소로에도 나타났고. 어디에 숨었나 싶었더니 여기에 있었던 거야.”

안드레이는 호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노박은 그걸 보면서 어이없다는 듯 씩 웃었다.

“들어가 보시게요?”

안드레이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켈리는 지금까지 만나본 유령 중에서 가장 뛰어난 놈이야. 오늘 지하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놓칠 가능성도 있어. 인명 피해가 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 내가 직접 과정을 봐야겠어. 그래야 만일의 경우가 발생할 경우 다른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거야.”

안드레이는 주저하지 않고 건물 로비로 걸어갔다. 유령관리인 두 명이 로비에서 원반 모양 기계 두 대를 조작하고 있었다. 

노박은 마렉과 지니를 데리고 파우스트의 집 맞은편에 서 있는 검은색 승합차에 올랐다. 그곳에는 대형 TV 모니터가 설치돼 있었다.

마렉은 승합차에 오르려는 리즈의 팔을 붙잡고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유령위원회는 프라하를 포함해서 체코에 나타나는 유령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갖고 있어. 그가 죽은 이유, 죽은 장소 같은 것이지. 그래야 유령을 관리할 수 있거든. 유령위원회 본부에 가면 중앙통제실이 있지. 그곳에 유령 정보가 데이터베이스로 정리돼 있어.”

노박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를 흘겨보았다.

안드레이가 들어간 로비에는 기계를 조작하는 유령관리인 외에 10여 명이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진입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왼쪽 손에는 큰 손전등을, 오른쪽 손에는 작은 손전등을 들고 있었다. 

노박은 조용하게 작전 명령을 내렸다.

“진입 개시. 모두 조심하라. 보통 놈이 아니라는 정보다.”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는 1층 맨 오른쪽 구석에 있었다. 맨 앞에 선 유령관리인은 환한 불빛을 내는 발광 공 여러 개를 지하실로 던져 넣었다. 

“통통통~~.”

공은 한참이나 지하실로 내려갔다. 

옆에 있던 다른 유령관리인은 소형 드론을 지하실로 날렸다. 드론 곳곳에 전등이 달려 지하를 환하게 밝혀 주었다. 초소형 카메라도 달려 있었다. 승합차의 모니터 화면에 지하실 구조를 보여주는 카메라였다.

“저건 뭐지?”

화면을 지켜보던 노박의 눈이 함지박 만하게 커졌다. 

마렉은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를 질렀다.

“개 같은데요. 개 유령! 한두 마리가 아니에요.”

새로운 지시를 내리는 노박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조심해라. 지하실 계단에 개 유령이 보인다. 여러 마리다. 물리면 위험하니 조심해야 한다.”

개 유령이라는 말을 들은 리즈는 궁금해서 또 물었다.

“개 유령은 또 뭔가요?”

노박은 리즈를 보며 씩 웃었다. 이 판국에 알고 싶은 것도 많다는 얼굴이었다.

“이곳 근처에 나 슬로바네흐 거리가 있단다. 그곳에는 엔마우스 수도원이 있지. 수백 년 전에 그곳에서 살던 개들이 갑자기 사람을 무차별 공격했어. 다행히 수도사들이 개들을 잡아 도살했어. 그때부터 개들은 유령이 돼 나 슬로바네흐 거리 주변을 돌아다녔어. 예전에는 함부로 설치지 못했어. 그러다 4~5년 전부터 돌변했단다. 사람을 보면 덤벼들어 물기도 했지. 개들이 왜 그렇게 변했는지 아직 이유는 알아내지 못했어. 지하실에 있는 개들은 아마 그놈들일 거야.”

유령관리인들은 개 유령이 있다는 이야기에 잔뜩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리즈는 아무리 유령이라도 개 따위에 저렇게 겁을 먹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리즈의 호기심을 눈치 챈 마렉이 다시 입을 열었다.

“개라고 무시할 게 아니야. 오히려 사람 유령보다 개 유령이 더 문제지. 사람 유령은 살아 있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 말고는 해를 끼칠 수 없지만 개 유령은 다르거든. 사람에게 상처를 내서 다치게 하거나 죽이지는 못하지만 엄청난 고통을 줄 수 있어. 살아 있는 개가 사람을 무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큰 고통이야. 잘못하다가는 그 고통 때문에 트라우마에 시달릴지도 몰라.”

“컹! 컹!”

검은 선글라스를 낀 유령관리인들이 하나둘 지하실 계단에 진입하자 노박의 경고대로 계단 아래에서 개 여러 마리가 짖기 시작했다. 적어도 열 마리는 돼 보였다. 발광 공과 드론 서치라이트가 지하실을 밝게 비춰 개들이 어디에 있는지 볼 수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지하실 가장 안쪽에는 유령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중간세계에서 탈출한 마법사 켈리였다. 주변에는 끔찍한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지하실에 들어간 다른 유령들이 모두 갈기갈기 찢겨 처참하게 죽어 있었다. 

켈리는 구석에서 무엇인가를 씹어 먹었다. 그의 눈에서는 시뻘건 안광이 퍼져 나왔다. 중간세계에서 처음 탈출할 때의 눈빛이 아니었다. 입가에는 시퍼런 액체가 흘러내렸다. 사람으로 따지면 피였다. 시뻘건 색이 아니어서 끔찍하게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다른 유령관리인의 뒤를 따라 맨 나중에 지하실에 내려온 안드레이가 소리를 질렀다.

“힘을 키우려고 유령의 정령을 뜯어먹고 있군. 잔인한 놈이로구나.”

안드레이를 본 개 한 마리가 으르릉거리며 달려들어 소매를 물었다. 그는 팔을 흔들어 개를 떨구어냈다. 그리고 손전등의 파란색 버튼을 눌러 빛 채찍을 힘차게 휘둘렀다. 

“깨갱!” 

채찍을 맞아 충격을 받은 개는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이번에는 다른 개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유령관리인들은 동시에 손전등의 파란색 버튼을 눌러 일사불란하게 빛 채찍을 휘둘렀다. 

깨갱!

빛 채찍을 맞은 개 두 마리는 곧바로 기절해버렸다. 유령관리인 하나가 빨간색 버튼을 눌러 쓰러진 개를 손전등에 가두어버렸다. 

채찍을 피해 달아난 개들은 켈리 주변을 에워싸고 계속 울음소리를 냈다. 

“그르릉!”

유령관리인들이 포위망을 좁혀 와도 켈리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정령을 뜯어먹는 데에만 집중했다.

“다들 조심해. 저 자는 유령이면서 마법을 써. 사람을 집어던지거나 가슴에 손을 집어넣어 고통을 줄 수 있어. 혼자서 함부로 가까이 다가가서는 안 돼. 다 같이 행동해야 돼.”

안드레이는 켈리를 에워싼 유령관리인들에게 경고했다. 그는 속으로 계산을 해보았다. 

‘유령 열 명의 정령을 빼앗았다면 어두움의 힘이 얼마나 커졌을까?’ 

리즈는 유령의 정령이라는 안드레이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정령이라는 게 뭐예요?”

리즈가 계속 질문을 던지자 마렉은 신이 나서 대답했다.

“유령의 정령은 사람으로 치면 심장이야. 정령에는 유령이 가진 모든 힘이 집중돼 있지. 그가 살아있을 때 갖고 있던 모든 능력이 정령에 고스란히 저장돼 있는 거야. 그것을 다른 유령이 빼앗으면 그대로 그에게 넘어가게 돼.”

리즈는 안드레이가 왜 저렇게 걱정하는지 그제야 납득할 수 있었다.

“켈리가 벌써 유령 열 명의 정령을 빼앗았으니 그의 힘은 상당히 커졌겠군요.”

마렉은 두 손을 딱 쳤다.

“그렇지!”

“크아악!”

정령을 뜯어먹던 켈리가 괴성을 지르며 몸을 돌렸다. 갑자기 그의 몸 색깔이 서서히 짙어졌다. 처음에 옅은 회색이던 것이 아주 탁한 핏빛으로 변했다. 그의 몸속에서 금세라도 피가 쏟아질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앗!”

켈리는 가장 가까운 곳까지 다가온 유령관리인을 향해 오른손을 들었다. 그는 허공으로 붕 떠오르더니 계단 구석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켈리는 이번에는 위로 풀쩍 뛰어 천장에 달라붙더니 뒤에 서 있던 다른 유령관리인의 가슴에 손을 집어넣었다. 

“으악!”

유령관리인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져버렸다.

안드레이는 다급하게 고함을 질렀다.

“모두 틈을 주지 말고 일제히 저놈을 향해 채찍을 휘둘러.”

안드레이의 지시에 따라 유령관리인들은 동시에 손전등의 파란색 버튼을 눌렀다. 채찍 여러 개가 켈리를 향해 날아갔다. 채찍에 다리를 붙들린 그는 잠시 비틀거렸다. 하지만 곧 균형을 찾더니 채찍을 두 손으로 잡아 힘껏 끌어당겼다. 빛 채찍은 순식간에 모두 끊어져 버렸다.

안드레이의 얼굴에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른 유령관리인들도 이런 일을 처음 경험해보는 것인지 당혹스러워했다. 그들의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드러났다.

크윽!

켈리는 이번에는 안드레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기습공격을 예상하지 못했던 안드레이는 그의 오른손에 목을 붙잡히고 말았다.

“황금소로에서 살려뒀더니 여기까지 따라왔군.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아직도 모르는 모양이군.”

켈리는 왼손을 안드레이의 심장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으윽!”

안드레이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안드레이!”

승합차에서 TV 모니터를 지켜보던 노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모두 동시에 체포 손전등을 눌러. 마렉! 극초단파 그물을 가져가게.”

노박은 귀에 꽂은 이어폰을 손으로 붙잡고 유령관리인들에게 일제 공격 지시를 내렸다. 마렉에게는 공 모양 장비를 건네주었다. 마렉은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승합차 문을 열고 지하로 달려갔다.

불안한 표정의 유령관리인들은 뒤로 주춤거렸다. 체포 손전등 공격이 통할지 자신을 갖지 못하는 것 같았다.

“으윽! 어…어서 고…공격해!”

안드레이는 억지로 고통을 참으면서 유령관리인들에게 공격하라는 손짓을 보냈다.

유령관리인들은 그제야 손전등의 빨간색 버튼을 일제히 눌렀다. 모든 손전등에서 동시에 빨간 불빛이 흘러나와 켈리를 향해 날아갔다. 

켈리는 오른손에 붙잡고 있던 안드레이를 집어던졌다. 그는 빛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다리를 앞뒤로 벌려 완강하게 버텼다. 다른 유령 같으면 빛을 받자마자 손전등 안으로 끌려가게 돼 있었지만 그는 계속해서 견디고 있었다.

“사장님!”

지하실에 서둘러 들어온 마렉이 안드레이를 불렀다. 그는 손에 작은 공을 들고 있었다.

안드레이는 바닥에 넘어진 채 소리를 질렀다.

“고…공을 케…켈리에게 던져. 어서! 쿨럭!”

마렉은 지체하지 않고 공을 켈리의 머리 위로 던졌다. 공은 빨간색 빛을 내며 허공을 날아가더니 순식간에 그물처럼 펼쳐졌다. 빨간 그물은 켈리의 몸을 완전히 덮어 버렸다.

“카아악!”

그물이 고통스러운지 켈리는 두 무릎을 바닥에 꿇었다. 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소름끼치도록 시뻘건 눈을 치켜뜨고 안드레이와 마렉을 노려보았다. 

“여…여기서 빠…빠져나가면 가만두지 않…않겠어! 크와앙!”

켈리의 괴성을 신호로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유령 개들이 유령관리인들에게 달려들었다.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은 유령관리인 중에서 서너 명은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들이 손전등을 떨어뜨리는 바람에 켈리를 향해 날아가던 빛 중에서 일부가 사라져버렸다.

켈리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여전히 그물을 뒤집어쓴 그의 온몸에서 시뻘건 피 같은 액체가 흘러 나왔다. 

“펑!”

엄청나게 큰 소리가 나더니 급기야 그물마저 터지고 말았다. 켈리는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안드레이는 물론 마렉과 다른 유령관리인들도 모두 뒤로 넘어졌다. 

“아이쿠!”

나이가 많은 안드레이는 쉽게 일어나지 못했지만 젊은 마렉은 낙법처럼 한 바퀴 굴러 한쪽 무릎을 구부린 채 중심을 잡았다. 그는 손전등의 파란색 버튼을 누른 채 켈리가 있던 쪽으로 휘둘렀다. 그는 어디로 달아났는지 보이지 않았다.

“켈리가 사라졌어요.”

“그럴 리가! 어떻게? 사방을 극초단파와 자외선이 에워싸고 있는데….”

안드레이는 힘들게 두 손을 짚고 바닥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에도 켈리는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뚫었는지 포위망에 구멍을 내고 도망간 모양이었다. 

다른 유령관리인들은 손전등을 지하실 벽 곳곳에 비추며 수색작업을 벌였다. 하지만 이미 지하실을 빠져나간 듯 그는 보이지 않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