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수평적 조직문화. 유행인가, 대세인가.
스타트업계뿐만 아니라 삼성전자에서도 조직에 수평적 조직문화를 도입하려고 하는 노력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청바지를 입고 프레젠테이션을 하던 스티브 잡스의 이미지가 삼성전자에게도 강렬하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다만 국내에서 이런 문화는 대부분 소규모인 스타트업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내달부터 부차장 없애고 님으로 호칭한다. (2017년 2월 10일)
퇴근할 때 인사하지 마... 휴가원도 쓰지 마, 회사 맞아? (2016년 12월 27일)
수평적 문화라고 하면, 딱딱한 사무실 공간이 아닌 소파가 있는 편안한 휴식공간 같은 회의실, 자유로운 출퇴근에 눈치 안주는 팀장, 상사-부하라기보다 친구 같은 조직문화와 같은 것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물론 그런 요소들도 기업 문화에 영향을 주는 것은 틀림없지만, 그런 것들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수직적이고 경직된 기업문화는 언제든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뿐만 아니라 거꾸로 수평적 조직문화만 강조하다가 성과는 뒷전으로 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수평적 조직문화가 성공적인 기업문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런 수평적 자율 문화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조직체계나 습관들을 유지한 채로 단순히 외형적인 수평적 조직문화나 자율적 문화만을 강조해서는 또 하나의 실패 사례를 남기고 유행처럼 지나가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평적 문화를 지향한다면, 처음부터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겠지만, 제시된 핵심들을 지향점으로 삼아 차근차근 나아가야 합니다.
여기서는 (1) 수평적 조직의 의미와 (2) 자율적 문화, 그리고 그와 상반되어 보이는(3) 규율에 대해, 각각의 의미와 적용방안을 중심으로 심도 깊게 고민해보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수평적 조직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먼저 정의해야 할 것이 바로 수평적 조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기존의 체계를 그대로 두고, 직급을 과장으로 통일한다거나 호칭을 직급 없이 '~님'으로 통일한다고 수평적 조직이 되는 걸까요?
수평적 조직은 '프로젝트' 중심의 조직체계를 의미합니다. '프로젝트형 조직'은 하나의 프로젝트가 발생하면, 각 프로젝트에 맞는 전문 분야가 정해지고 그에 맞는 전문가들이 투입되는 체계를 의미합니다. 이런 프로젝트 조직에서는 각 구성원이 자신의 전문성에 기반하여 투입되었기 때문에 그 팀 내의 다른 인력으로 대체할 수 없고, 프로젝트 매니저(즉 PM) 뿐만 아니라 다른 구성원들도 자신의 전문영역을 인정하게 됩니다.
여기서 잠깐! 스타트업도 조직 구성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 또는 수 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프로젝트형 조직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외에도 경영컨설팅, 벤처캐피털(VC), IB(Investment Bank), 건설업 등에서 이런 프로젝트 중심으로 운영됩니다.
만약 기업의 업무가 이런 프로젝트형 조직에 적합하지 않거나 프로젝트 중심으로 전환할 수 없다면, 수평적 조직이 정말 필요한지 다시 한번 검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수평적 조직이나 향후에 이야기할 자율적 문화가 만능인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잠깐! (1) 기존의 문화가 지나치게 경직되어 기존 문화에서 수평적 문화를 단지 가미하려는 의도인 경우나 의사결정이 지나치게 느려 커뮤니케이션 속도를 높이는 것이 목표인 경우 등에는 그 한도까지만 수평적 문화를 장려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2) 수평적 조직의 성격이 강해질수록 조직 내에서는 '승진'이라는 보상이 약해지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에 관해서 '보스'자체가 없는 극단적인 수평 조직이 현재 실험단계에 있습니다. 수많은 논쟁을 일으키고 있는 '자포스' 등의 '홀러크러시(Holacray)'가 대표적입니다. 상사를 전부 없애버린 이 대기업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허핑턴포스트, 2016년 2월)
자율적 문화의 진정한 의미
이런 수평적 조직 체계에서는 자율적 문화가 성장할 수 있습니다. 수평적 조직하에서는 개개인이 타인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전문성을 가지고 있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누군가 마음대로 시킬 수도 없고, 개인도 시키는 데로만 일할 수 없게 되니까요. 각 개인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원칙적으로 자기 이외에는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내가 안해도 누가 하겠지'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문화는 자율과 상충됩니다.
여기서 잠깐! 군대와 같은 경우 전시와 같은 급박한 상황에서는 소규모 부대의 자율적 판단보다 전체 판세를 고려한 상급 부대의 판단이 우선할 수 있고, 이런 상황에서는 자율적 문화가 존중받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자율적 문화는 전문성을 기반으로 하므로, 대부분은 어느 정도의 경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므로 '극단적'으로는 자율적 조직문화에서도 '경력-신입'간에는 엄격한 도제식 문화가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독립적으로 자신의 책임을 다할 수 없는 신입과 그를 교육시켜야 하는 경력자 간에도 수평적 관계만을 강조하면,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그렇다면, 이 경우의 수직적 문화는 무조건적으로 수용되어야 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경력-신입'간의 수직적 문화가 존재하더라도 그것은 '일'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야 하고, '사람'을 중심으로 형성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둘의 구분이 매우 불분명한 문제 또한 존재합니다.
수평-자율적 문화의 출발점, 대표 의식
결국 자율적 문화는 (1) 수평적 조직체계 하에서 (2)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3) 자신의 전문성을 활용하여 성실히 수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처음 이 책임은 누구로부터 주어진 것일까요?
기업의 주인은 주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꾸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강조하기도 하는데, 불행히도 기업의 주인은 명백히 주주입니다. 그리고 그 주주는 CEO를 비롯한 임원에게 그 의사결정을 위임하고, 그 임원들 역시 직원에게 의사결정을 위임합니다. 그러므로 기업에서의 직원은 기업의 주인인 주주의 위임을 받아 맡은 업무를 수행하는 회사의 대표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주인의식'보다는 '대표 의식'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겠네요.
여기서 잠깐! 사실 이 구조는 정치와 유사합니다. 기업과 달리 정치의 주인은 국민이지요. 국민은 자신의 정치적인 의사를 국회에 위임합니다. 그래서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가 되는 것이겠지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프로젝트를 추진하더라도 어떤 조직에서는 각 전문가가 개인적인 목적으로 활동할 수도 있습니다. 회사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개인적인 호기심이나 이익을 추구하기만 한다면 곤란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사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율적 문화에 대한 제약으로 존재하는 규정은 이러한 한도에서 적용되어야 합니다. 위의 (1)~(3)에 더해 각 구성원이 (4) '대표 의식'을 가질 때 수평적 조직문화가 완성된다고 하겠습니다.
수평, 자율 그리고 대표 의식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들
1. 수평적 조직체계를 위해, 구성원의 역할과 책임(R&R)이 독립적이고 명확해야 한다.
회사의 직원들이 회사를 대표한다는 의식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맡은 바 업무가 자신의 구체적으로 정해져야 합니다. 사전에 미리 '내가 담당한 일'이 약속되어 존재하고, 무엇보다 그 일이 독립적인 업무일 때 가능합니다.
자율적 조직문화의 측면에서 (1) 피라미드형 조직이 수평적 조직보다 불리한 것은 바로 피라미드의 한 단계를 건널 때마다 업무의 독립성은 현저하게 훼손된다는 데 있습니다. 조직에서 관리자가 한 계층만 더 늘어나더라도 그 이후의 직원들은 일의 전체를 보지 못하고 컨베이어 벨트에서 나사만 조으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2) R&R 구분이 명확하지 못하고 수시로 변화하는 조직에서는 각 구성원들은 자신에게 그 역할을 줄 리더만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업무분장이 분명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발생하는 일들을 대표가 던져주는 대로 수행한다면 그 조직은 수직적인 구조로 진화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독립적인 역할과 책임이 존재하도록 하기 위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무엇일까요? 바로 '의사결정'입니다. 만약 어떤 스타트업의 모든 의사결정을 1인의 파운더가 해야 한다면, 그 조직의 구성원들은 절대 대표 의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개개인이 자신의 맡은 업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하지 못하고, 윗사람에게 보고하고 의사결정을 받는 존재로 자리매김한다면, 스스로가 수평적인 관계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잠깐!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들은 임원 이상이 되어야 의사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조직의 의사결정이 느려지고, 환경변화가 빠른 산업에서는 살아남기 힘든 조직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2. 자율적 문화를 유지하기 위해, 분야별 전문가 확보/육성이 필요하다.
스타트업의 경우에 초기 멤버에게 흔히 요구되는 '올라운드 플레이'는 파운더에게는 기대할 수 있겠지만, 파운더가 아닌 직원에게 그런 역할은 곤란합니다. 잡서칭하는 여러 사이트를 아무리 찾아봐도, '시키면 뭐든지 잘하는 직장인'을 찾는 회사는 없습니다. 직원들은 모두가 자신의 전문성을 가지고 키우기를 바라며, 그것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직원들을 정작 뽑은 이후에는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되도록 바라는 것은 회사의 입장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행위 아닐까요? 일반적인 직원에게 '올라운드 플레이'는 오히려 자신의 전문성을 해치는 일로 이해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회사의 설립자는 회사의 초기 파운더 그룹 이외에는 회사의 업무를 잘 구분해서 각 분야에 맞는 전문가를 뽑고, 역할을 분배해야 합니다.
여기서 잠깐! 업무 분담을 명확히 하는 것은 상사의 의무입니다. 대기업과 같이 계층화된 조직에서 발생하는 문제 중의 하나는 바로 업무 지시 자체가 명확하지 않고, 전문성을 가진 담당자에게 배분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각각의 전문가들에게 업무를 대표하도록 한 이상, 업무의 성과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업무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프로야구 선수만 하더라도 야구의 정석대로 해서 국가대표급 선수가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만의 독특한 패턴을 개발해서 훌륭한 투수나 타자가 되는 사람도 많습니다. 자신만의 패턴으로 가장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선수에게 표준적인 패턴만을 강요한다면, 선수도 팀도 결국 어려워집니다.
만약 회사의 규정이 결과와 상관없거나 추상적인 인과관계만 존재하는 구성원의 행위를 규율한다면 각 구성원은 자신의 전문성을 확보하거나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와 같은 규정이 (1) 결과물의 마감시간이나 오전에 필수적인 미팅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타당하지만(다음의 3. 과 관련), (2) 단순히 출근시간에 대한 이야기라면 행위를 규율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율적 조직문화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행위에 대한 원칙은 직원들에게 자신은 보스이고, 직원은 아이처럼 취급한다는 메시지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회사의 문화 자체는 전체적으로 자율적이지만, 이런 유형의 행위제한의 규정을 일부 가지고 있다면 자율적인 문화에 대한 잠재적인 위험 요인이 존재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3. 회사 공통의 이익을 위해, 매뉴얼에 따른 업무처리가 필요할 수도 있다.
매뉴얼이라는 게 뭘까요?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업무의 수행방식이나 프로세스를 규율하는 규정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가진 문제점 중의 하나는 바로 매뉴얼입니다. 대부분의 회사에는 형식적인 매뉴얼만 존재합니다. 그리고 형식적으로만 매뉴얼을 만들어놓고, 매뉴얼은 필요없다고 생각합니다.
매뉴얼은 언제 필요할까요? 다수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방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원칙은 이러한 전문가들의 개개인의 방식을 존중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다만 다수의 구성원이 회사의 대표라는 입장에서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매뉴얼이 필요하게 됩니다. (1) 각각의 전문가들의 방식이 달라서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던지, (2) 업무 자체가 매우 복잡하여 개개인의 방식을 존중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던지 (3) 유사한 프로젝트를 경험해본 선임자가 후임의 전문가를 위해 가이드라인을 제안한 것이라든지 (4) 조직 외부의 상황으로 인해 제약이 생기는 경우가 그러한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매뉴얼이 존재하는 경우, 그 목적이 구성원들에게 분명히 이해되어야 합니다. 쓸데없다고 생각되는 규정은 그 즉시 사라질 수 있어야 하고, 프로젝트 팀 별로 매뉴얼이 달라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의 불필요한 규정이 전체 매뉴얼의 구속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반드시 필요한 규정이지만, 지나치게 많아 구성원들이 인식하고 수행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면, 시스템에 의해 지원해야 합니다.
여기서 잠깐! 예를 들어 (1) 고객과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반드시 이메일로 진행하며, 이외의 방법으로 진행된 경우에도 이메일로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규정이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이런 경우, '이메일'이라는 문서의 존재가 분쟁 시 중요한 증거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객관적인 이유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2) 1억 이상의 지출을 결정할 때는 CFO의 결제가 필요하다고 규정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타 프로젝트에 영향을 주면 안 된다든지, 회사의 현금흐름 등이 객관적인 사유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3) 개인의 입장에서도 매주 수요일 1시에 목적이 명확한 오프라인 팀 미팅을 계획하고 있다면 그런 상황에서는 개인적인 상황만으로 재택근무를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런 상황에서는 모든 팀 구성원인 전문가는 수요일 1시에는 반드시 회의실에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