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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May 02. 2017

다른 우주의 당신께

우리의 평행우주

우리가 함께였던 우주를 버리고

각자의 우주로 돌아와버린지

어느새 길고도 짧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당신의 우주는 안녕한가요

사실은 이젠 아무상관도 없는데

그래도 궁금해지는 건 그 어떤 마음일까요


실은 우리 우주의 일부가 될 줄 알았던 곳에

혼자 다녀오는 길입니다


분명 똑같은 장소였지만 당신은 없었죠

나는 유령처럼 그림자처럼

자꾸만 떠오르는 당신을 없애지 못하고

가만히 내버려두었습니다


당신은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내가 기억하는 모습으로,

아마 당신이 언젠가 그랬을지도 모르는 모습으로

하지만 아마 절대 그럴리가 없을 모습으로


나는 당신이 좋았던 만큼 미웠고

기다린만큼 견딘만큼 후련했기에

자꾸만 떠오르는 당신의 유령 때문에 퍽이나

곤혹스러웠습니다


나의 우주에 나타나는 당신의 그늘이

나를 제법 힘들게 하더군요

왜, 무엇이 힘든건지도 모르고 나는 힘들었습니다


아마 가능성 때문이겠죠-

지극히 구체적인 가능성.


이미 닫혀버린 우리의 우주가 가지고 있던

무한하고 막연한 가능성은 추상적인 것이어서

쉽게 줄을 그어 없애버릴 수가 있었지만


내 눈 앞에 펼쳐지던 그 도시의 풍경과

음식과 사람들, 그리고 그것들을 함께 누릴거라고

상상했던 당신의 모습은 너무나 구체적이어서

자꾸만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이 좋은 사람이든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든

그렇지 않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 구체적인 가능성, 그 시간과 웃음과 추억이

이제는 어느 우주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게 날 힘들게 합니다

슬프게 합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전화를 걸진 않을겁니다


내가 본 그 유령은 엄밀히 말해

더는 당신이 아니니까요


지금 당신의 우주에 존재하는 당신은

이미 내가 아는 우리의 우주속의 당신과

몇백광년이나 멀어져버렸습니다


그렇기에 유령은 유령일 뿐인거죠

그렇기에 환상은 아름다운거죠


그 때의 당신은 이미 없습니다

수명이 끝난 우리의 우주와 함께 죽어버렸습니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내가 본 진실입니다



덕분에 며칠 사이에 아주 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우주는 사라졌지만

나는 이번 여행에서 온전히 나의 우주가 아니라

이제는 사라진 우리의 우주를 기념하는

유물 박물관에 다녀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걸 나혼자 한다는게

혼자 아픈 것 같은 기분에

유치하지만 약도 오르고 화도 나더군요

당신도 아프길 바라는 걸까?

그러면 내 마음이 풀릴까?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많이 앓고 올라가는 이 길이 끝나면

이 여행은 끝날 것이고

그러면 나는

비로소

온전히 나의 우주로 돌아갈 수 있길

그렇게 바랍니다


이것이, 어쨌거나, 끝이기를

그렇게 바랍니다



당신이 이 글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메시지입니다


당신의 우주에,

결코 돌아오지 않을

안부인사를

이렇게 보내두는 것으로


생각보다 일찍,

여행은 끝나버렸습니다


그럼 안녕히,

너무 잘 지내지는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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