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이해하기 위해
'더 사랑하는 자가 패자다'
어렸을 때 읽고 아직도 인상깊게 기억하고 있는
한 티비 칼럼의 제목이 이랬다
더 사랑하는 자가 패자
아무리 사랑은 이기고 지고 게임이 아니라지만
그래도 더 사랑하는 자가 패자라고
아마 나는 그 글에 깊이 공감했던 것 같다
때론 내가 패자이고
누군가를 패자로 만들기도 했지만
다들 얘기하듯 더 좋아하는 사람이 을이다
그러니까 을의 연애가 그렇게 흔한 것이다
그러나 그 칼럼을 읽은지 약 십여년이 되던
올해 봄
나는 처음으로
더 사랑하는 자가 갑일 수도 있다는
신박한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 논리는 이랬다
남을 사랑하는 것도 어쩌면
'능력치'에 속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오히려 드물다
누구나 마음 먹은 만큼 타인을 깊이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너는 사랑을 할 줄 몰라
진정한 사랑을 몰라
그런 흔한 대사들이 이런 현실을 살짝 반영한다
그러나 연인 관계라는 것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사이
그러니까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비록 서운하고 외로울 수는 있지만
나를 덜 사랑해주는 그 사람에게
당당히 요구할 수 있다
나를 더 사랑해 달라고
이쪽에 도덕적 당위성이 있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덜 사랑해준 그 사람은
일단은 무조건 미안해해야한다
그리고 눈치를 봐야한다
내가 충분히 사랑을 해준 것인지
부족함은 없는지
혹시나 자신의 사랑 능력(?)이 조금 부족해서
힘에 부치더라도
그런 사실을 쉽사리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런 순간,
그것이 설령 100% 나의 사랑 능력의 문제라고
하더라도
즉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오직 사랑만이 관계의 전제가 되는 연인 사이에서
자칫 괜한 오해나 불화의 씨앗으로 번지기에
너무나 쉬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랑을 '강요' 받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힘들 수 있겠다
'능력치' 는 다를 수 있는건데...
그러니 이게 정말 자칫하다간 폭력적일수 있겠다
뭐 그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물론 방법은 있다
충분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치나 스피드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이 온도차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는 점만
확실하게 전달해 준다면
더 사랑해서 걱정인 잠재적 패자들은
아마 그런 연인을 이해하지 못할리 없다
그러니 결국
이 가정도 틀렸다
이 '폭력' 때문에
당신의 마음이
그토록 급격하게 식어버린건 아닐것이다
아마 이런 것일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어도,
미안하지 않아도 미안하다고 해야하는
연애관계의 도덕적 갑과 을의 싸움에서
당신은 그냥
미안해해야하는 게 싫었던거다
사랑을 못받았다고 서운해 하는 나보다
미안하지도 않은데 미안해해야하는 자신의 기분
뭔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하는 자기 자신이
더 소중했던거야
결국
그냥 '나를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던거야
그게 가장 아프지만
그게 맞아
그래도 혹시나 내가 무얼 잘못했을까
어떻게든
그때의 당신을 이해해보려는
의미없는 시도와
떨쳐지지 않는 생각들
지리한 가정들이 쓰리다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