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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May 04. 2017

더 사랑해달라는 말은 폭력이 될 수 있을까

당신을 이해하기 위해


'더 사랑하는 자가 패자다'


어렸을 때 읽고 아직도 인상깊게 기억하고 있는

한 티비 칼럼의 제목이 이랬다


더 사랑하는 자가 패자

아무리 사랑은 이기고 지고 게임이 아니라지만

그래도 더 사랑하는 자가 패자라고


아마 나는 그 글에 깊이 공감했던 것 같다

때론 내가 패자이고

누군가를 패자로 만들기도 했지만


다들 얘기하듯 더 좋아하는 사람이 을이다

그러니까 을의 연애가 그렇게 흔한 것이다


그러나 그 칼럼을 읽은지 약 십여년이 되던

올해 봄

나는 처음으로

더 사랑하는 자가 갑일 수도 있다는

신박한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 논리는 이랬다

남을 사랑하는 것도 어쩌면

'능력치'에 속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 오히려 드물다

누구나 마음 먹은 만큼 타인을 깊이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너는 사랑을 할 줄 몰라

진정한 사랑을 몰라

그런 흔한 대사들이 이런 현실을 살짝 반영한다


그러나 연인 관계라는 것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사이


그러니까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비록 서운하고 외로울 수는 있지만


나를 덜 사랑해주는 그 사람에게

당당히 요구할 수 있다

나를 더 사랑해 달라고

이쪽에 도덕적 당위성이 있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덜 사랑해준 그 사람은

일단은 무조건 미안해해야한다


그리고 눈치를 봐야한다

내가 충분히 사랑을 해준 것인지

부족함은 없는지


혹시나 자신의 사랑 능력(?)이 조금 부족해서

힘에 부치더라도

그런 사실을 쉽사리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런 순간,

그것이 설령 100% 나의 사랑 능력의 문제라고

하더라도

즉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오직 사랑만이 관계의 전제가 되는 연인 사이에서

자칫 괜한 오해나 불화의 씨앗으로 번지기에

너무나 쉬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랑을 '강요' 받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힘들 수 있겠다

'능력치' 는 다를 수 있는건데...

그러니 이게 정말 자칫하다간 폭력적일수 있겠다

뭐 그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물론 방법은 있다

충분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치나 스피드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이 온도차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는 점만

확실하게 전달해 준다면

더 사랑해서 걱정인 잠재적 패자들은

아마 그런 연인을 이해하지 못할리 없다


그러니 결국

이 가정도 틀렸다


이 '폭력' 때문에

당신의 마음이

그토록 급격하게 식어버린건 아닐것이다


아마 이런 것일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어도,

미안하지 않아도 미안하다고 해야하는

연애관계의 도덕적 갑과 을의 싸움에서

당신은 그냥

미안해해야하는 게 싫었던거다


사랑을 못받았다고 서운해 하는 나보다

미안하지도 않은데 미안해해야하는 자신의 기분

뭔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하는 자기 자신이

더 소중했던거야


결국

그냥 '나를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던거야

그게 가장 아프지만

그게 맞아


그래도 혹시나 내가 무얼 잘못했을까

어떻게든

그때의 당신을 이해해보려는

의미없는 시도와

떨쳐지지 않는 생각들

지리한 가정들이 쓰리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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