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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May 12. 2017

지갑에서 오래된 택시 영수증 두 장이 나왔다

당신에게로 달려가던 새벽, 그 밤

그 영수증 두 장을 발견하고

잠시 잠수부처럼 숨을 멈추었다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파도가 되어 머릿속을 덮쳐오는 통에

잠깐 멍해졌다


그래, 기억이 난다


그 즈음 우리는 사이가 좋질 않았고

나는 조심스럽게 거리를 두고

당신과 우리를 걱정하며

가만히 관찰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 새벽, 당신에게 전화가 왔다

술에 취해 지금 보러와달라고 했다

당신이 있는 곳까지는 택시로 십분

옆 방에선 부모님이 주무시고 계셨다

그 때의 시간, 세시 오분


나는 미친 사람처럼

그 새벽에 몰래

집을 빠져나와

당신에게 가는 택시를 탔다


뒷날 친구들은 나에게 왜그랬냐고

그러지 말았어야했다고 했다


그날 그 택시 안에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다시 사랑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

그건 분명 아니었다


언젠가 나는 분명 이 순간을 다시 떠올리게 되겠지,

언젠가 설명이 필요한 밤-

그런게 있다면, 바로 지금, 오늘,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순간의 한 가운데에 있어


이런 생각을 그때도 했던 것 같다


당신을 위해서 당신을 보기 위해서

당신을 위로해주기 위해서

나는 그 택시를 탔지만


좀 더 솔직해진다면

그 사랑의 한복판에 있던 와중에도 나는

얼마간은

내가

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한번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고작 그정도의 기대였던 것 같다


어쩌면 이미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용이 없을 거란걸

우리의 관계가, 당신의 마음이

이미 기울었단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새벽의 소란이 뭔가를 바꿀 수 없단걸

이미 알았기 때문에


그런 체념의 상태에서도

결국 달려간 것은

어쩌면 부질없는 사랑의 무용담,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라는 추억 하나 만들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렇게 미친 짓을 하는 나 자신을 통해서

우리의 관계가

처절하게 끝을 향해 가고 있는 그 무렵에

꺼지는 순간 더 환하게 불타오르는 불꽃처럼

마지막으로 어떤 절실함과 치열함을

만끽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지


그 날의 당신이

보고싶다고 한 말

진심이 아니라는거

그래, 어쩌면 난 이미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난 진심이었으니까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택시 영수증에

찍힌 시간은 다섯시 삼분.



다음 날 아침

아무것도 모르는 부모님과 아침을 먹으며

나의 완전범죄는 성공했다는걸 알았지만


당신의 마음을 되찾는데는

영원히 성공하지 못했고


이렇게 부질없는 사랑의 무용담 하나만 늘었구나

생각하며

문득, 아래 글귀를 떠올렸다




사람이 사랑을 할 때,

사랑은 그 사람의 마음 속에 모조리 담기기엔

너무나 크다.


사랑은 사랑하는 상대 쪽으로 방사되어,

상대의 한 표면에 부딪혀

본래 방사점 쪽으로 퉁겨져 돌아온다.

그 반동을 우리는 상대방의 감정이라고 일컫는데,


그것이 더 우리를 매혹시키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서 나온 것임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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