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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Oct 02. 2017

미리 써보는 편지

아마 곧 오게 될 그 날을 위해

그러고보니

네 앞으로 써놓고 보내지 않은 편지가 이미 여러통 내방 서랍에 있는데

그건 사실 네 앞으로 쓴다는 핑계로

결국 내 앞으로 쓴 편지들이었지만,

먼 훗날이 되어 웃으면서

그 편지를 보여줄 수 있는 날이

혹시나 올까 싶었는데

역시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 같다


그래, 그런 이상한 날은 오지 않는게 맞지


만약에 우리 둘 중에 누군가 결혼을 한다면

그건 당연히 내가 먼저가 될거라고 생각했어


네가 언젠가 술취해서 했던 말처럼

내가 너에게 너무 아까웠고

너는 나를 보내고 나서 너무 후회했으니까

다른 사람은 도저히 못만날 것 같다고

말했었으니까


나는 사실 그 후에도 새로운 연애를 몇 번인가 했어

하지만 새로운 사랑을 했는지는 모르겠어


그러는 동안

넌 다른 사람을 만났다고 들었어  

그렇게 다른 기억들로 덮여버려서

정말로 우린 이제 과거가 되겠지


그래, 그러는게 맞아

결국 현재도 미래도 될 수 없을테니까,

과거로 분류해버리는게 맞아


머리로는 분명히 알고 있는데

네가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조금 이상했어

어차피 너와 나는 아닌데,

널 아직 사랑하는 것도 아닌데

왜 내 마음이 이상한걸까


그래서 미리 이 편지를 쓰는거야

언젠가 다른 사람과 사랑하고,

가정을 만들거나 아이를 만들지도 모를

미래의 너에게, 라는 핑계로

실은 지금의 나에게


한 때 참 많이 좋아했던,

그런만큼 참 서로를 가엾이 여겼던,

안쓰러워했던,

어쩌면 그래서 놓을 수 없었던

그런 너는

이제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추억일 뿐이야

추억은 아무 힘도 없으니까

추억은, 추억이니까


너는 나를 기다린 것도 아니고

한동안 후회는 했지만 이젠 극복했고


나도 이제 널 미워하지 않고

그저 그정도의 마음으로 서로 편안하게

각자의 인생을 살게 될 사람들이야

그러니까, 남이야


요즘도 가끔 네 소식이 궁금한 마음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게

무엇 때문이었는지 잘 모르겠어

어쩌면 좋아했던 마음보다도 더 큰,

진심어린 연민때문이었을지도 몰라


세상에서 서로를 제일 잘 이해하는 사람이

서로라고 믿었던 그 기억 때문에

아무도 날 몰라주는 것 같을 때,

제일 먼저 네가 떠오르곤 했어


그러면 너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가끔씩 현실로 소환되어

내 얘기를 들어주기도 했지

나도 가끔씩 너에게 그랬을거야


하지만 이제 너는 그 자리에 없겠지

그러니까 내가 돌아볼 곳은, 이제 없는거야

어쩌면 그동안은

이별 유예기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대단한 이별을 한걸까 우리?


아니 아마, 이별이 대단한게 아니라,

그 마음이 대단했던 거겠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래서 이렇게 참 오랫동안

바보들처럼 맴돌았지만

이제 정말 떠날 시간이야


차라리, 네가 먼저 떠나줬으면 해

난 이제야 겨우 마음의 준비가 됐으니까

이젠 정말로,

너와 헤어지는거야


이 순간 이후로도

이 세상에 너는 존재하겠지만

더 이상 내가 부르는 '너'는 아니니까


잘가,

고마웠어,

더는 널 찾지 않겠지만

잊지는 않을게


행복하게 잘,

살자 서로

각자의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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