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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를 읽고

by LEONATO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을 먼저 봤다.

소설은 그 다음으로 읽었다.

둘 다 보니 10쪽짜리 단편 소설을 2시간짜리 영화로 만들었다.

특이점은 2시간 중에 소설 일부(10분 분량)가 초중후반 중 한 곳에 들어간 게 아니었다.

2시간 곳곳에 1분씩 10개로 쪼개여 균등하게 배치되었다.


소설을 다 읽고 작가 하루키가 먼저 생각났다.

그가 영화 <버닝>을 보고 놀랬겠다.

이창동 감독의 2시간짜리 상상력에 매우 놀랬겠다.

나처럼 일어나서 박수를 쳤을까?


소설 속 장면들이 영화 속에 모두 들어갔음에 놀랐다.

소설에서 본 핵심 단어들과 주요 장면들이 영화에서 유기적으로 등장했다.

게다가 소설 이상의 의미로 영화에 담겼다.


소설 속에 추상적이었던 고양이, 여주의 연락두절 등이 영화에서 같은 듯 다른 의미로 등장했다.

소설 속 요소들은 이창동의 상상으로 큰 이야기가 되었다.


영화 <버닝>의 탄생을 유추해 보자면 이렇다.

소설에서 등장한 단어.

'수수께끼'.

이창동은 그 단어가 크게 보였을 것이다.

소설에서 여 주인공은 남친 묘사를 '수수께끼의 젊은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서술이 없어서 잊혀지기 쉬운 단 한 문장이었다.

아마 이창동은 '젊은이'와 '수수께끼'가 머릿속에 크게 남았을 것이다.


영화의 주제?

젊은 사람에게 세상은 수수께끼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 수수께끼 같은 소품이나 행동들이 영화에서도 등장하고 추가되었다.

연락두절, 팬터마임, 헛간, 태웠거나 아니거나, 대x초, 연기, 노을, 동네 우물가 등.


하루키에게 청춘이란?

이창동에게 청춘이란?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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