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출간 표류기
브런치에 복귀해 글을 쓴 지 얼추 100일. 100일이면 곰도 사람이 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런데 나는, 사람이 되기는 커녕, 남들 다 다는 그 흔한 ‘분야별 전문 작가’도 못 달았다. 프로필 옆에 붙는 그 영롱한 배지를 흐린 눈으로 외면하는 ‘미생’의 삶은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반응 없는 브런치라는 숲에서 외롭게 도토리를 까먹으며 지쳐갈 때쯤, 우연히 내 눈을 번쩍 뜨게 하는 글 하나를 보게 되었다.
“밀리의 서재에서 연재하고 상금을 받으라고?”
내 머리 속에 ‘연재’와 ‘돈’이라는 두 단어가 강렬하게 꽂혔다.
응? 밀리의 서재? 거긴 유명 작가들 전자책만 있는 곳 아니었나?
알고 보니 ‘밀리로드’라는 창작 공간이 열렸단다.
그 순간 내 머릿속 회로가 빠르게 돌아갔다. 브런치에 쓰고 있는 말랑말랑한 에세이는 밀리 감성이 아니다. 거긴 돈 내고 보는 곳이다. 뭔가 더 자극적이고, 더 팔리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나는 서랍 속에 묵혀뒀던 5년 전 그 ‘13만 조회수’ 아이템을 다시 꺼냈다. 소재는 그대로 가되, 문체는 싹 갈아엎기로 했다. 브런치의 ‘감성 힐링’ 톤은 갖다 버려. 이제부터 컨셉은 ‘블랙코미디, 냉소, 그리고 센 언니’다.
여기서 웃픈-사실은 뻔뻔한- 고백을 하나 하자면, 당시 나는 ‘협성문화재단 공모전’과 이 밀리 연재를 두고 진지하게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협성에 내려면 눈물 콧물 쏙 빼는 ‘전통 신파 서사’로 가야 했다. 샘플로 한 편을 써봤다. 기가 막히게 슬펐다. 하지만 나는 쿨하게 협성을 포기하고 밀리를 택했다.
“협성은 당선돼도 마케팅이 약해. 밀리가 대세지.”
누가 보면 협성에서 제발 와달라고 바짓가랑이라도 잡은 줄 알겠지만, 물론 나 혼자만의 김칫국 원샷이었다. 내가 포기 안 한다고 걔네가 뽑아주는 것도 아닌데, 브런치의 냉랭한 반응도 나의 이 고질적인 ‘작가적 과대망상’은 치료하지 못했다.
그렇게 야심 차게 밀리에 입성해 최소 조건인 3화 연재 미션을 끝냈다.
반응?
브런치가 시베리아라면, 밀리는 남극이었다. 하긴, 월 9,900원 내면 베스트셀러가 무제한인데, 굳이 이름 모를 아마추어의 검증 안 된 글을 읽으며 시간을 낭비할 독자가 어디 있겠는가.
‘에라이, 여기도 글렀네. 다 때려치워.’
4화를 억지로 올리고 짐 싸서 나가려는데, 문자가 띠링 울렸다.
[밀리의 서재] 축하합니다! 이달의 밀크(밀리 크리에이터)에 선정되셨습니다.
세상에. 브런치는 5년을 두드려도 안 열리던 문이, 밀리는 한 달 만에 열렸다. 게다가 상금 100만 원과 함께 대문에 배너를 걸어주는 엄청난 특전까지! 이제 물 들어왔으니 노만 저으면 된다. 2달 안에 10편만 채우면 되는, 아주 널널하고 행복한 미션이었다.
하지만 나는 1화에서 말했듯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차는’ 데 재능이 있는 여자다.
왜 인생은 늘 타이밍이 엇박자로 노를 젓는지.
하필 딱 그 시기에 나는 ‘한국북큐레이터협회’ 소속으로 일을 시작했다.
명색이 북큐레이터인데! 남들에게 좋은 책을 골라주고 추천해 주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 정작 본인의 책이 될지도 모르는 글은 뒷전으로 미뤄두는 촌극이 벌어졌다. 그렇게 내 글이 메인 배너에 걸려 있는 그 황금 같은 두 달 동안... 나는 단 한 편의 글도 쓰지 못했다.
그렇게 두 번째 기회도 허무하게 날아갔다. 아니, 날려 보냈다. 다른 작가들의 세 자리, 네 자리 밀어주기 숫자를 보며, 어차피 나는 틀렸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그냥 상금 먹고 튀... 아니, 연재 계약만 잘 마무리하면 되는 거 아니냐며.
그때, 댓글 알림이 울렸다.
“작가님, 제발 연재 중단하지 마세요.”
완결까지 달린 댓글은 겨우 7개. 그중에서, 보석만큼 소중한 독자님이 남겨준 이 한 마디가 뼈를 때렸다. 이쯤 되면 독자가 나를 손절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손절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정신을 차려보니 마감일이 열흘 남았다. 계약은 계약이니 위약금을 물지 않으려면 써야 했다. 북큐레이터고 나발이고, 일단 마감은 지켜야지. 나는 커피를 링거처럼 꽂고 미친 듯이 타자를 두드렸다. 아마 이때 내 혈관 속엔 피 대신 카페인이 흐르고 있지 않았을까?
10일 동안 남은 원고를 몰아치는 광기의 집필. 퀄리티? 퇴고? 그런 건 사치였다. 그냥 마침표를 찍어 ‘전송’을 누르는 데 의의를 뒀다. 어떤 날은 하루 두 편을 쳐내는 기염을 토하며, 그야말로 ‘초날림’ 연재를 이어가던 어느 날.
메일함에 낯선 제목이 떴다.
[밀리의 서재] 전자책 출간 문의
네? 저기요? 지금 제 밀어주기 수가 겨우 73인데요?
저번 달엔 계약금 받고 잠수 타서, 배너값도 못 했던 그 ‘불량 작가’인데요?
보통 밀리는 구독자 1,000명은 돼야 비벼본다던데. 이 담당자님, 혹시 숫자를 잘못 보신 건 아닐까? 아니면... 내 글에서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본 걸까?
그렇게 나는, 밀어주기 73회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들고 얼떨결에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진짜 지옥... 아니,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10일 동안 10편을 연재하는 것도 만만찮았는데, “완결까지 초안 다 있다”고(물론 뻥이다) 큰소리치는 바람에 한 달 동안 남은 원고를 모두 집필해야 하는 상황. 올해 내로 출간 완료라는 말도 안 되는 미션이 발등에 떨어졌다.
도대체 왜? 왜 나였을까?
글이 기가 막히게 좋아서? 문장력이 뛰어나서?
아니, 그 답은 전혀 엉뚱한 곳에 있었다.
이 미스테리한 계약의 비밀을 푸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담당자가 내민 [첨부파일: 표지 시안.jpg]을 클릭한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 이 사람들은 계획이 다 있었구나.
<우당탕탕 출간 표류기>
1탄 13만 조회수를 발로 걷어찬 여자
2탄 밀어주기 73인데, 출간하자구요?
3탄 빨간 곰 줄까 파란 곰 줄까 feat. 슈뢰딩거의 젤리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