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출간 표류기
드디어 그날이 왔다. 12월 23일.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내 첫 책 <내 카트엔 아이가 없다>가 밀리의 서재에 공개되었다.
5월에 연재 시작,
11월에 원고 마감,
12월에 책 출간,
아무리 전자책이라지만, 그야말로 초스피드 전개다.
책 공개된 지 5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리뷰가 2개가 달린 거 보면, 밀리라는 플랫폼의 저력은 역시 만만치 않다. 물성을 가진 종이책이 아니라는 아쉬움이 눈 녹듯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두 분 중 한 분은 별 1개 누르고, "얼굴도 모르는 남편이 불쌍하다"는 평을 남기고 가셨지만 말이다.
아마도 에피소드 3 "남편이 셀프 효자라니, 복도 많지"를 읽다가 거하게 긁히셨으리라 짐작해 본다. 반대로, 나는 저 에피소드를 쓰며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카타르시스를 느꼈으니, 그걸로 쌤쌤인 셈 치자.
작법서에서는 독자가 읽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말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어딘가에 있을 며느리들은 나차럼 후련함을 느끼며 저 에피소드를 읽어주리라 믿으며 웃어넘겼다.
13만 명 중에서 악플 하나 달렸다고 댓글창을 닫았던 내가 이번에는 아무렇지도 않다니, 이건 또 이것대로 재미있다. 그동안 맷집이 많이 좋아진 걸까, 아니면 공짜가 아니라 '돈 내고' 읽어주시는 소중한 독자님이라서 그런 걸까.
어찌 되었건, 수많은 책들 중에서 이 촌스러운 젤리곰을 찾아 읽어주신 것만으로 감사하고 또 영광스러울 뿐이다.
욕하면서 보는 K-드라마처럼, 욕하셔도 좋으니 많이들 읽어줬으면 좋겠다.
사실 출간을 이틀을 남겨두고도 나는 내 책 표지를 알지 못했다.
표지시안을 받기는 했다. 그런데...
눈이 아플 정도로 쨍한 형광색 표지를 바탕으로 힙하고 키치하고 무지무지 MZ 스러운 곰 두 마리가 떡하니 박혀 있었다.
"......"
살다 살다 말문이 막힌다는 것이 이런 기분이구나. 세상 어디를 뒤져봐도 에세이 표지로 저런 곰을 쓰는 경우는 없을 거다. 나라면 절대로 클릭하지 않을 듯한 표지였지만, 나는 차마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출간일이 촉박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담당자가 "이 시안 어떠세요?"라고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부 채널 광고 시안에 대해서, 의견을 보태준 덕분에 일이 빨리 진행되었다며 소통을 하던 그때와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작가 의견을 반영하지도 않으면서, 왜 표지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냐는 선배 작가들의 하소연을 모르는 바도 아니고 해서, 그냥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이건 공포특집 괴담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그래, 출간 후 홍보할 때 "빨간 휴지 파란 휴지" 괴담으로 바이럴 마케팅이나 해야겠다 마음먹으며, 해탈의 경지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파란 곰과 빨간 곰의 싸움은, 노란 곰의 난입으로 싱겁게 끝났다.
앱을 켜고 내 책을 마주한 순간, 나는 실소를 터뜨렸다. 주변의 점잖은 인문학, 경제경영서들 사이에서 내 책은 혼자 형광펜을 칠한 듯 쨍한 개나리색(Yellow)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파란 곰과 분홍 곰이 사이좋게 빈 카트를 밀고 있는 이 귀여운 표지. 담당자님은 이 노란색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어그로를 끄는 한이 있더라도, 독자들에게 내 책이 다가가도록 만들고야 말겠다는, 편집부의 광기 어린 집착이 반영된 것일까. 하긴 이렇게라도 몸부림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내 책이 애매하긴 하지.
아니 아니, 작가가 자기 책에 대해서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아니 아니, 책은 진짜 재미있다니까.
1화 조회수 1000, 5화 조회수 700, 유지율 70%면 읽기 시작한 사람들은 재미있어한 걸로 봐야 되지 않나. 다만, 소재가 소재이다 보니, 대중적으로 사랑받기는 힘든 책인 건 사실이고. 편집부는 그 저변을 어떻게 해서라도 넓혀보고 싶어 했던 거고.
충격에서 회복되고 나니, 한 땀 한 땀 공들여 최선을 다해 촌스럽게 뽑아낸 저 표지가 그저 감동스럽고 고마울 따름이었다.
아니면, 독자들에게 보내는 '옐로카드(경고장)'이었으려나?
"독자님들, 난임 에세이라고, 눈물 흘릴 생각하고 들어오시면 안 돼요. 겉표지는 젤리처럼 말랑해 보이지만, 이건 마라맛입니다."
그래, 인정한다. 이토록 발칙하고 쨍한 노란색이라니. 마라맛 조심!
[별점 ★☆☆☆☆ 1점] "보고 있으면 얼굴도 모르는 남편이 불쌍해짐."
오픈 첫날, 첫 리뷰를 다시 한번 끌고 온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로부터 실드를 받다니, 셀프효자라서 내 남편은 복이 많은 게 맞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남편을 둔 나도 복이 많은 게 맞겠지.
나는 남편을 비난한 적이 없다. 그저 대한민국 유부녀라면 누구나 뒷목 잡을 법한 인생의 아이러니를 이야기했을 뿐이다. 삼남인데 'K-장남' 모드에 빙의한 남편 덕분에 얼떨결에 '셀프 효자'의 조수가 되어버린, 그런 기막힌 상황들 말이다.
그러니 이 리뷰는 악플이 아니다. 내 글이 독자의 감정을 건드리는 데 성공했다는 증거이자 훈장이다. (그렇게 정신 승리하기로 했다.)
그래, 내 책은 그런 책이다. 읽다 보면 남편이 불쌍해지기도 하고, 내 얘기 같아서 울컥하기도 하고, "맞아, 나만 미친 게 아니었어!" 하며 무릎을 치게 만드는 이야기.
<내 카트엔 아이가 없다>.
이제는 연재 게시판이 아닌, 진짜 독자들의 서재로 떠나보낸다.
오늘 밤, 당신의 카트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혹시 남들의 시선 때문에, 혹은 '원래 그래야 해서' 꾸역꾸역 담은 물건들로 무겁지는 않은지. 노란 젤리곰들이 묻고 싶단다.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아니면... 나랑 같이 시원하게 카트 한번 엎어볼래?"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016f8b629fe34f55
<우당탕탕 출간 표류기>
1탄 13만 조회수를 발로 걷어찬 여자
2탄 밀어주기 73인데, 출간하자구요?
3탄 빨간 곰 줄까 파란 곰 줄까 feat. 슈뢰딩거의 젤리곰
장을 본 줄 알았는데 인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