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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초 Mar 20. 2021

인생 두부김치

햇양파를 볶는다.

올리브기름을 촥촥 두른 프라이팬에 얼기설기 투박하게 썬 양파를 한가득 넣고, 거기에 다진 마늘을 넉넉히 넣어 기름지게 볶는다.

양파의 매운 내가 살짝 가시고 수분이 빠지면서 얼마간 무르게 볶아졌다 싶으면, 거기에 잘 익은 배추김치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참치캔 하나를 따서 기름까지 싹싹 긁어 넣어 자작하게 볶아준다.


여기에 색다른 맛을 보태고 싶다면, 아삭한 콩나물을 한 움큼 넣어 준다. 그러고는 콩나물의 숨이 조금 죽을 때까지 뚜껑을 덮어 뒀다가, 국물이 졸아들도록 뒤적거리면서 얼마간을 더 볶아준다.

두부는 두툼하게 썰어서 따뜻하게 준비를 한 뒤에 접시의 가장자리를 따라 둥글게 원을 그리며 겹겹으로 담아내고, 여기에 자박하게 잘 볶아진 김치를 맛깔나게 담아내면, 한 끼 식사로도 손색없는 푸짐한 두부김치가 완성된다.

참치캔의 기름까지도 함께 볶아주는 게 중요하고, 아삭한 식감의 콩나물을 조금 넣어 준 것이 색다른 맛을 살려주어, 전체적인 음식의 맛이 배가 된다. 인생 두부김치로 등극할 자격이 되는 것이다.




음식이란 게 그렇다.

특별한 식재료가 아닐진대 조리의 순서와 불의 강약과 조리 시간에 따라 맛은 미묘하게 달라진다. 그렇기에 매번 똑같은 요리를 하더라도 그때마다 맛이 조금씩 다 다르다.

좀 더 나아가자면, 음식을 하는 사람의 심리상태까지도 음식의 맛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맛있게 함께 먹을 사람을 생각하며 양념을 하면서도 맛있기를 바라고, 조리가 되어 가는 것을 적절히 지켜보면서 맛 너머의 맛을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음식이 힘을 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몸살감기로 입맛을 잃었던 아이가 엄마가 끓여주신 칼칼한 콩나물국 한 그릇을 먹고도 기운을 차릴 수 있는 그 힘, 그 에너지! 

분명 그것은, 그저 허기를 채워주는 단순한 기능으로서의 음식이라기보다는, 사랑과 정성이 알맞게 배어 있어서, 본능을 일깨워주는 근본적이고 감각적인 음식이 되는 것이다.




자, 각설하고 이제 야심 차게 준비한 두부김치를 맛볼 차례다.

따끈하고 두툼한 두부에 기름지게 잘 볶아진 김치를 얹고, 단맛이 나는 양파와 아삭한 콩나물도 한 젓가락 올려서 크게 한 입 먹어본다.

참치와 제대로 어우러진 신김치와의 조화는 고소하기까지 하고, 어울릴까 싶었던 콩나물 한 줌을 넣었던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맞춤한 맛에 어쩌면 한 입 먹는 그 순간에 막걸리가 절로 생각나게 될지도 모른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주말 오후, 흐린 하늘을 무겁게 바라보며, 세상 맛난 두부김치 한입에 가볍게 막걸리 한잔이라면, 내 일생 중 오늘은 아마도 ‘행복했던 날’이라는 이름으로, 시간의 기억 장소에 오래 남을 것이다.


걸쭉한 막걸리 같은 오늘!

행복은, 바로 이 걸쭉한 막걸리의 또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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