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에서, 오늘은 강풍이 분다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침이 되니 베란다 창문이 들썩들썩하면서 제법 바람이 거세게 분다. 요즘처럼 집에 있는 날이 여러 날일 때면 반찬도 마땅치 않고, 늦잠을 떨치고 일어나서 먹는 밥맛도 영 깔깔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툭하면 간편하게 따끈한 눌은밥 한 그릇에 한두 가지의 반찬만으로 아침을 먹는다. 그것만으로도 포만감을 느끼기엔 충분해져서 집안일을 할 만한 상태로 충전이 된다.
전날 저녁, 잠자리에서 읽다 만 전자책 단말기의 배터리가 충분치 않아서 잠시 충전을 시켜놓으려다가, 이어지는 내용이 하도 궁금해서 커버를 열고는 쭈그리고 앉은 채로 여러 페이지를 냉큼 읽는다.
베란다 창틀을 통해 전해지는 바람소리가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 약하게 들어오는 햇살이 눈부시기도 해서 커튼을 열어젖히고 창문을 활짝 열어본다. 시원한 바람이 훅하고 밀려들어오는데, 그 결에 부스스 깨어난 화초들도 파르르 기지개를 켠다.
마른 잎도 좀 떼어주고, 겉흙이 마른 녀석들에게는 물도 흠뻑 준다. 십여 년 전만 해도 기르는 화초가 제법 되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더러는 죽기도 하고, 더러는 이사하면서 다치기도 하고 얼어 죽기까지 하다 보니 이제까지 남아있는 화분은 스무 개 남짓이다. 그나마도 작은 화분들이 대부분이고, 분갈이를 하면서 개체를 나누거나, 화원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서 새로 사다 기른 녀석들도 여럿 있다. 어쨌거나 이 녀석들을 돌보는 일이라고 해봐야 겨우 반 박자 늦게 물을 주고, 마른 잎을 떼어주고, 모자란 흙을 얹어준다거나, 쥐똥만 한 노란 영양제를 흩뿌려주는 정도가 전부다. 그래도 파릇파릇 기운차게 잘 자라주고, 봄이면 때에 맞춰서 여리디 여린 새순도 내놓는다.
요새는 아침이면 제일 먼저 베란다로 나와서 블라인드를 한껏 올리고, 화초들이 햇살을 골고루 받을 수 있게 해 주고, 겉흙이 말라 있는 화분에 물을 주는 것이 아침 루틴이 되었다. 키 큰 화분들에 가려서 햇빛을 덜 받는 작은 화분들은 햇살을 따라 자리도 옮겨주다 보면, 그런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하루가 다르게 새순이 고개를 내민다.
좁쌀 같은 영양제 수십 알을 흩뿌려주고 흙으로 슬슬 덮은 후 물을 흠뻑 주고 나니, 뾰족한 이파리 하나하나에까지 눈길이 미친다. 한쪽으로 치우치듯이 웃자란 가지를 잘라내고, 옹기를 닦아주니 여염집 규수처럼 자태도 곱다. 여태까지 보이지 않던 고상함이 느껴진다.
며칠 새 베란다를 서성이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늘 보고는 있었지만 조금은 무심히 지나쳤던 그런 일상이, 햇살을 만나고 물을 만나고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나면서부터는 전에 없이 새롭게 보이는 것이다.
지루하고 단순하게 흘러가는 일상이, 사실은 때를 만나지 못해 잠시 구석에 내몰려 있었던 것뿐이었는데, 결코 초라한 것이 아니었는데, 그저 약간의 다듬기가 필요했을 뿐이었는데......
사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다만, 같은 것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변했을 뿐이다.
물이 부족해서 잎가지가 축 늘어졌던 것들도 한껏 물을 빨아들이고 얼마가 지나고 나면, 기운을 되찾아서 다시금 고개를 내밀고 생동하는 것이 느껴진다.
얼마간 베란다에서 시간을 보내고 들어오니 거실 바닥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는 잡동사니들이 눈에 들어온다.
다시 신으려고 잠깐 신고 벗어 둔 내 양말, 요즘 한창 마스크를 직접 만들어본다고 천이나 바늘이나 가위 할 것 없이 어지럽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손세정제와 아령과 바디로션, 타월, 가위......
이것들은 도대체 어디 있다가 다 기어 나와서 이리 맥락 없이 뒤엉켜 있는 것일까?
테이블 위에는 읽다가 쌓아둔 책도 조금, 식혜를 마시고 치우지 못한 유리컵 두 개와 노트북과 리모컨, 볼펜과 안경닦이도 미미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맥락 없는 물건들의 널브러짐이 때론 대수롭지 않게 봐 넘겨지다가도, 또 어떤 때는 유난히 눈에 거슬리기도 한다. 마음이 먹어지는 대로 차분히 제자리를 잡아서 정리를 해놓고, 컵도 싱크대에 담가 놓는다.
때마침 초인종이 울려서 나가보니 택배가 도착했다. 아침부터 무슨 택배일까 싶었는데, 이틀 전에 주문한 책이 도착했다. 곧바로 박스를 납작하게 펴서 정리를 해본다. 내용물의 충전재로 박스에 함께 들어있던 신문지도 손 다림질을 해서 작고 납작하게 접어 정리를 했다. 요즘 아파트 분리수거가 더 까다로워져서 모든 박스를 납작하게 접어서 내놓아야 한다. 뒷 베란다에 박스만 따로 모아둔 곳에 포개어 정리를 하러 나갔다가, 내친김에 미처 못 접은 박스까지도 마저 정리를 했다. 그러다가 눈에 들어온 빨래 바구니를 보니, 수건이 여러 장 쌓인 것이 영 거슬렸다. 그대로 빨래 삶는 통을 꺼내어 비누칠을 하고 애벌빨래를 한 후 곧바로 가스 불에 올려 수건을 삶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니, 눈치 없는 내 눈동자가 아까 싱크대에 넣어 둔 유리컵과 아침에 미뤄둔 설거지거리로 자연스레 옮겨졌다. 빨래가 삶아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재빠르게 설거지를 하려고 보니, 어라? 세제가 거의 바닥이 났네? 싱크대 안쪽을 보니, 마침 며칠 전에 지인으로부터 받아놓은 설거지 세제 새것이 한 통 있었다. 얼른 덜어놓고는 설거지를 마쳤다.
경험으로 미루어보건대, 이럴 때 리필할 세제가 없었다면, 분명 설거지는 물 건너 간 일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앞치마도 생략하고 고무장갑도 끼지 않은 채로 후다닥 설거지를 하고 보니, 바닥에 물이 좀 튀었다. 물티슈로 부엌 바닥을 훔치다가, 그 결에 작은 아이 방문을 열고 아직 정리되지 않은 이부자리를 정리했다. 차렵이불을 먼저 세탁기에 넣고 이불 코스로 빨기 시작했다. 작은 아이 방을 마저 정리하면서 꽉 닫히지 않은 붙박이장의 문도 야무지게 닫아주었다. 어질러진 책상 위에 사회교과서가 툭하니 올려져 있기에 책꽂이에 꽂아놓고 방을 나섰다.
여기까지만 했어도 충분히 수고했고, 충분히 피곤한데, 방정맞은 발길이 이미 안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얼마 전 여행을 다녀와서 안방 한쪽에 여행용 트렁크를 그대로 놓아두었던 것을 정리할 요량이었는데, 가까운 지인들에게 선물하려고 여행지에서 사두었던 기념품이 그 안에 들어있었다. 마침 내일 그 지인들을 만나기로 약속이 돼있어서 그것들을 꺼내놓고, 트렁크도 제대로 정리를 해서 안쪽에 자리를 잡아주었다. 잊어버리기 전에 선물로 줄 기념품을 백팩에 넣어두려고 가지고 나와, 포장 백을 찾아서 정리를 했다. 생각난 김에 내 몫으로 샀던 냉장고 자석도 꺼내서 얼른 붙여 놓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이제야 꺼내게 됐네. 게다가 예쁜 벚꽃 엽서 여러 장을 모아둔 꾸러미를 우연히 찾게 되어서, 세 장씩을 따로 챙겨 다른 선물들과 함께 백팩에 넣어두었다.
언젠가는 쓰겠지 싶어서 사두거나, 사놓고도 아까워서 차마 쓰지 않고 보관만 하고 있던 ‘죽어있는 물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벚꽃 엽서도 분명 언젠가는 쓸 거라고 생각해서 모아둔 것이었겠지만 지금처럼 나는, 그 엽서의 존재마저도 새까맣게 잊고 있었지 않은가. 뭐가 되었든 아깝다고 여투기만 할 게 아니라, 줄 수 있는 물건들은 아낌없이 나누고 소용에 맞게 바로바로 쓰는 마음자세를 가져야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예전 같으면 ‘언젠가는 쓰겠지.’하면서 차마 버리지 못했던 물건들에 대해서 이제는 아깝다는 생각을 과감히 떨쳐내게 되었다는 점이다. 쟁여두지 않고 버리거나 나눔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물건에 대한 집착을 덜어낼 수 있게 되었다. 나눔을 통해 그 물건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킴으로써 일단은 내 눈에서 안 보이게 하는 조치인 셈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그 순간, 바로 옆에 놔둔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린다. 요즘은 수시로 안전문자가 와서 자주 확인을 하느라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지낸다. 심지어 SNS를 확인하다가 의도치 않게 광고를 유심히 들여다보기까지 한다. 그러다 보면 무심결에 회원가입을 하고 있다거나,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뭐, 나 같은 잠재고객이 있으니 광고 글이 넘쳐나는 거겠지만.
생각난 김에 오래전부터 눈독을 들이고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체크 원피스를 다시 검색해 보았다. 몇 번을 살까 말까 망설여왔고, 생각보다 비싸서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한 채 여러 날을 장바구니에 담아놓기만 했었는데, 결국 결제를 눌렀다. 휴, 결국은 사고 말았네. 맘에서 서서히 멀어지면 그냥 사는 것을 포기하려고 절반쯤은 맘을 접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이 원피스는 포기가 안 되었다. 오히려 그냥 꼭 사고만 싶어 졌었다. 결국 3개월 할부를 불사하며 결제를 하고 만 것이다.
불과 하루 전인 어젯밤까지만 해도 읽고 있던 책의 주제가 미니멀리즘에 관한 책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또 물건 불리는 일을 자처하고 만 것이다. 뭔가 하나를 반드시 덜어내면 괜찮겠지? 하는 식으로 나름의 자기 합리화를 시킨다. 소비에 대한 약간의 부담감을 상쇄시키려고 얄팍하게 나 자신과 손쉬운 타협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루를 놓고 가만히 따져보면, 집안에서 동동거리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눈동자의 동선에 따라 맥락 없이 이뤄지기도 한다. 애초에 ‘오늘은 뭘 해야지!’하고 맘먹고 하는 일도 있지만, 더러는 아무 생각 없이 사부작대며 보이는 대로 즉흥적인 판단만으로 제법 많은 일들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끼니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밥을 챙겨 먹고 나서, 하던 일을 마저 하기도 하고 일의 능률이 한껏 올라있어서 시간이 훌쩍 지난 줄도 모른 체 집안일에 몰두하고 있기도 한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일의 흐름을 하나씩 되짚어보니, 참 많은 일들을 하고 있었구나 싶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상 속에 해야 할 일들이 녹아 있다는 것이, 건강한 삶의 흐름이고 패턴처럼 느껴진다.
눈동자와 손과 발의 협응력이 없었다면, 이 모든 일들을 일순간 달콤한 잠과 맞바꿨을 수도 있었는데, 참 다행이다. 거기에다, 이들의 계획을 또 간과하지 않은 내 두뇌와 심장이 있었기에 사부작대던 한낮의 일상이 아귀가 잘 맞아떨어지게 되었으니, 이 또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