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로 시작되는 김광석의 노래.
이 한 소절만 들어도 심장에서부터 바람이 일렁인다. 통기타와 어우러진 전주만 들어도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바람이 솟구치고, 맘 속에선 이미 봄꽃이 흩날리는 구름 위를 날고 있다.
첫 소절의 가사처럼,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당장이라도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찾아 나서야 할 것만 같다.
마른 먼지바람이 이는 산티아고의 순례길과도 잘 어울릴 것 같은 이 노래는, 앞만 보고 걷는 고행의 길 위에서 내 발치를 이끄는 힘이 되어주고도 남을 만큼 충분한 에너지를 품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음악이 우리의 영혼을 떨리게 하고, 위로가 되어준다는 점에서는 한치의 이견도 없다. 주위의 아무런 저항 없이 걷기만 한다면, 그 순간 순수한 의미에서의 자의식이 깨어나고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오롯한 시간이 될 것이다.
거기에 음악을 들으면서 걷게 된다면, 내 발걸음에도 호흡이 실리고, 멀리까지도 시선을 돌려 나 자신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할 수도 있겠지. 자연과 내가 따로 구분되지 않고, 그저 나는 아무런 변명의 여지없이 자연의 일부가 된다.
음악은 둘 사이의 동화를 이끌어내 주는 영매와 같이, 어느 순간에라도 자의식의 끈을 붙잡고, 자신의 내면으로 깊고 넓게 파고들어갈 수 있게 도와준다. 내가 자연스럽게 자연 속으로 녹아들어 갈 수 있도록.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이지만, 그 외로움을 잘만 이용하면 자발적 외로움이 주는 진정한 즐거움을 깨닫게 된다. 사람과 사람 간의 면대면 관계가 주는 즐거움이야 말해 무엇할까마는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필요에 따라서 적응해야만 하는 것이 바로 그런 자발적인 외로움이 아닐까?
바람 냄새가 물씬 나는 그 노래, 조금 더 불러보자.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덜컹이는 기차에 기대어 너에게 편지를 쓴다.’
그만! 여기까지!
더 이상 부르지 않아도 된다.
‘너에게 편지를 쓴다.’에서 이미 모든 게 끝났다. 모든 걸 이겼다.
마치 나의 외로움과 방황은 너에게서 기인한다는 의미가 다분한 감상이 느껴진다.
설령 ‘외롭다’ 거나, 설령 ‘너’가 그리워지는 순간이 많아진다고 할지라도 덜컹이는 기차에 한 번 기대보고라도 싶다. 그저 너에게 편지만이라도 쓰고 싶다.
그냥 이것저것 다 차치하고라도 바람이 불어오는 그곳으로 가기나 해봤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