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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이제이 Nov 17. 2024

하루 한편 에세이

<엄마의 겨울나기>

엄마의 겨울나기 10월부터 시작된다.

고춧가루, 절임배추, 새우젓, 액젓 등 겨울나기에 필요한 품목을 미리 주문하는 것 그것이 시작이다.

모두 필요한 시기는 11월이지만, 엄마는 10월부터 마음이 바쁘다.

그나마 절임배추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겨울나기 일손은 크게 줄었다. 그전에는 배추를 100 포기 주문해서 추운 겨울, 마당에서 일일이 손질하고, 밤새 절여놓아야 했으니까.

엄마의 계획대로 10월 중순이 넘어가면서 집에는 고춧가루, 액젓, 새우젓 등이 하나씩 냉장고를 차지했다.

나는 그저 엄마의 전화 한 통이면 바로 엄마집으로 가서 겨울준비에 동참할 뿐이다.

11월 초.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야?"

"집~"

"짠무 담글 무 주문했어. 빨리 다듬어야 할 텐데."

"알았어"

며칠 후.

"어디야?"

"집이여~"

"총각김치 담글 알타리 주문했어. 저녁에 다듬어서 해야 하는데."

"알았어"

11월 셋째 주.

"내일 김장할 무, 파, 갓김치 주문했어. 언제 와?"

"좀 이따 갈게."

귀차니즘에 몸을 뭉그적 거리다가 엄마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었더니 다듬고, 씻어야 할 재료들이 쌓여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김장하면서 먹을 엄마의 시그니처 음식인 수육을 삶고 계셨다.

1단계는 다듬기

쪽파와 대파 그리고 갓과 무

2단계는 씻기

넓은 채반에 재료를 씻는데, 나는 꼭 고무장갑을 낀다. 내 손은 소중하니까.

3단계 썰기

무는 채칼로 채치고, 쪽파와 갓은 적당한 크기로 자르기, 대파는 흰 줄기는 어슷썰기

몇 시간 후.

무는 채쳐놓고, 파랑 갓은 썰어 놓고 지친 몸으로 집에 왔다.

다음날 아침.

오랜만에 집에 온 아들을 깨워서 엄마 집으로 향했다.

집 앞에서 김장을 도우러 근처 사시는 고모와 고모를 마중 나온 엄마, 그리고 언니를 만났다.

오전 9시.

드디어 겨울나기의 종착점 김장이 시작되었다,

예전보다 편리한 도구들이 많아졌는데, 그중 하나가 김장용 매트였다. 방수도 돼서 두고두고 쓰기 참 좋다.

전날 채쳐놓은 무를 쏟고, 그 위에 전날 만들어 놓은 양념을 쏟으면 나와 고모가 열심히 비빈다.

다 비벼지면 그 위에 역시 전날 썰어놓은 쪽파, 대파, 갓을 쏟는다.

다시 고모와 내가 비빈다.

빨갛게 먹기  좋게 비벼지면 총감독인 엄마는 고춧가루, 새우젓, 굵은소금 등을 추가하신다.

그러면 또 고모와 내가 비빈다.

이제 준비 완료!

아들이 절임배추를 나르면, 고모와 나는 잘 비벼진 양념을 하나씩 묻혀서 김치통에 넣는다.


약 한 시간 후.

김치가 끝나면 어제 썰어놓은 깍두기를 비비는데, 나는 허리, 무릎이 아파서 계속 자세를 바꾸었다.

힘들지만 완성된 김치통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왜 김치가 떨어지면 불안한지 모르겠다. 어쨌든 엄마의 겨울나기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이른 점심으로 미리 챙겨놓은 절임 배추에 남은 양념을 싸서 생굴 하나 올리고 밥 한 숟가락 올려 입속에 넣는다. 상콤 매콤 짭짤한 맛이 피로는 풀어주는 거 같다. 또 엄마의 수육에 남은 새우젓을 찍어 먹는다.

내가 좋아하는 살코기 수육은 정말 새우젓과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쌈 싸 먹을 절임배추 하나, 수육, 생굴, 김치양념 등을 챙겨 집으로 왔다. 이제 당분간은 엄마가 나를 부르지 않을 것이다.

엄마의 겨울나기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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