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현대서울은 오픈 전부터 이슈였다. 개인적으로는 여의도하면 IFC몰이 있는데 더현대서울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 기존의 대형 쇼핑몰과 경쟁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단지 백 가지 이상의 제품을 판다는 것 이상의 큰 의미를 담고 있는 ‘백화점’이라는 워딩이 빠져 있기도 하고 직장인 상권인 여의도의 중심에서 주말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그림을 좋아하는 나는 더현대서울이 여의도에 들어선 것에 대해 집과 가까운 여의도에 전시관이 생겨서 좋다는 생각뿐이었다. 전시관을 제외한 상층부의 첫인상은 위화감이었다. 1층 이상의 층들은 명품부터 시작해서 유명한 브랜드들의 매장들로 화려하게 채워져 있었다. 이전의 백화점들보다 더 괴리감이 느껴지는 럭셔리 백화점만 같았다. 다행히 지하 1층은 푸드코트와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커피 & 디저트 브랜드들로 채워져서 익숙해 더현대서울에 가면 그곳에 자주 머물렀다. 특히 내가 제일 애정하는 아인슈페너를 파는 카페가 있는 곳. 그런데 지하 2층은? 뭐지? 이상하게도 아는 브랜드가 별로 없었다. 별 흥미가 느껴지지도 않았다. 지하철을 타러 가는 출입구가 위치한 곳, 지하 2층은 나에게 그저 그런 의미였다.
그런데 얼마 전 브랜딩과 관련된 강연을 들으면서 더현대서울 지하 2층의 진실을 알게 됐다.
“임원 모르는 브랜드로 채워라” 더현대서울 ‘지하 2층’ 특명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내가 모르는 브랜드들이 많았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던 것이다. 취향을 가진 MZ세대가 경험할 수 있는 공간, 그곳의 최우선 가치는 그것이었다. 나는 임원급의 나이도 아닌데… MZ의 끄트머리에 걸쳐 낀세대 포지셔닝의 나는 아, 나는 하드웨어는 MZ에 속하더라도 소프트웨어는 그렇지 않았구나 확신을 갖게 됐다. 그리고 당장 시간을 내 더현대서울 지하 2층을 훑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왠지 오기가 생겼다.
아무 일정 없는 어느 오후, 비장하게 더현대서울로 출발했다. 지하 2층의 이름은 지하 2층이 아니라 creative cloud였다. 왠지 어느 메타버스의 이름 같기도 하고, 이름에서부터 역시 범상치가 않았다. 이전에는 그냥 들러리라고만 생각했던 지하 2층, 입구부터 한 가게 한 가게 샅샅이 둘러보기 시작했다. 먼저 지하 2층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는 의류 매장들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중간중간 익숙한 브랜드들이 보이기도 했지만 대부분 처음 보는 브랜드들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간 첫 매장, 생각보다 옷이 크게 튀거나 비싸지는 않았다. 생각을 어떻게 했길래? 두 곳, 세 곳 돌기 시작했다. 체험같이 시작된 쇼핑이 갑자기 진심이 됐다. 사고 싶은 옷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조금 더 과감하거나 조금 더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스타일들로 채워진 곳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굉장히 트렌디하고 세련된 느낌의 매장들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매장을 돌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입고 있는 옷이 조금 촌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옷이 싸고 비싸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하 2층의 완벽한 무드에 섞이기에 내 착장이 조금은 묘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뿐이었다. 그러다 눈에 띈 오버사이즈의 재킷을 하나 발견해 걸쳐 입었다. 마음에 들었다. 친절한 직원분의 도움을 받아 즐거운 쇼핑을 이어갔고 20% 세일 마지막 날이라는 말에 바로 카드를 긁었다. 왠지 엠지력이 조금 상승한 기분이 들었다.
혹시라도 놓친 매장은 없나 살피며 한 바퀴를 더 돌았다.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이전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인형들과 포토스폿들을 연출해 놓은 공간이었다. 그런데 지난번 분위기와는 달리 그곳을 채운 사람들의 연령층은 어린아이들이 아니라 어르신들이었다. 트로트가수 이찬원의 팝업스토어가 펼쳐지고 있었다. 이찬원이라는 인물을 캐릭터화 한 여러 곳의 포토스폿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아, 또 한 번 작은 충격을 받았다. 이곳은 도대체 어떤 곳이란 말인가. MZ를 위한 공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더현대의 모험인 걸까? 취향을 가진 MZ세대가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취향을 가진 어느 특정 세대라도 타깃이 될 수 있는 곳을 지향하려는 것일까? 오늘 이곳에 온 이유가 뭐였지 하고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MZ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를 이해하고 싶어서 라는 지점에 도달하자 더현대의 기발하고 기막힌 행보에 실소가 나왔다.
지하 2층 탐방이 종료되었다. 자, 이제 내가 진짜 가고 싶었던 곳으로 갈 시간. 내가 제일 애정하는 아인슈페너를 파는 카페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탔다.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