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는 겨울에만 먹을 수 있는 간식들이 있어서 춥지만 따듯한 느낌이 든다. 추워서 잔뜩 움츠리고 다니는 덕분에 어깨와 등이 아픈 계절이기도 하지만 호호 불며 먹는 호빵과 어묵, 붕어빵까지 겨울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감사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을 계절이 어디 있는가 요즘 생각이다. 원래의 나라면 추워서 짜증 냈을 텐데 말이다.
퇴근길 가장 행복한 생각은 오늘 뭐 먹을까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싶다. 퇴근길 붕어빵을 사서 2020년의 마지막 날을 행복하고 따듯하게, 소소한 행복으로 마무리해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들떠있다가 문득 지갑에 지폐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아뿔싸 생각해보니 지갑을 가져오지 않았다. 출퇴근길이 걸어서 10분 거리이기에 교통카드를 쓸 일도 없고 갤럭시로 핸드폰을 바꾼 이후론 삼성 페이 덕분에 지갑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결제할 수 있는 편안함 때문에 지갑을 놓고 온 것이다. 붕어빵을 먹으려던 계획이 무산되었다.
퇴근길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계좌번호를 적어놓으시지 않으셨을까? 계좌이체도 가능한 곳이 요즘 많던데라는 희망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져 있는 붕어빵집. 그 속에서 계좌번호가 붙어있길 바랐건만 붙어있지 않았다.
한번 마음먹은 건 꼭 해야 하는 데 느리게 실행하는 편이다. 그런데 먹는 거 앞에서는 왜 이리도 실행이 빠른 것인지 집에 가서 현금을 가지고 다시 나오는 거야 라며 나를 다독이며 집으로 향했다. 항상 같은 자리에 물건을 두는 편이기 때문에 서랍을 열어보았는데 지갑이 없다.
하늘색 지갑이 분명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라며 어제 입었던 옷의 주머니를 살펴보고 다시 한번 가방을 살펴본다. 여기에도 없으면 정말 없는 건데……. 어디에 뒀지?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오늘 저녁 김밥집에서 현금을 낼까? 카드를 낼까 고민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어디에서 잃어버렸을까? 짜증 나는 마음이 일렁일 때쯤 상황을 해결해야 하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먼저 김밥집에 전화를 걸었다. 지갑이 없다는 이야기에 망연자실하게 된다.
하필 기분 나쁘게 2020년의 마지막 날에 이럴게 뭐람. 새해가 되기 전부터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괜히 의미를 부여하며 신용카드를 새로 발급받기까지 얼마나 불편한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민증도 만들려면 사진도 찍고 동사무소에도 가야 되고 귀찮은 감정이 올라오고 부정적인 감정들이 나를 감싸 안을 때쯤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가장 먼저 한 말은 분실신고를 하라는 이야기였다. 가끔은 언니에게 서운할 때가 있는데 감정적으로 다독여주고 공감해주기보다 해결하려고 할 때가 많아서 서운할 때가 있다.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이야기에 먼저 분실카드 신고부터 하라는 이야기에 평소의 나라면 속상한 마음을 다독여주지 않을까라는 원망이 들었을 텐데 이날은 유독 그렇게 이야기한 언니가 고마웠고 현명해 보였고 멋져 보였다.
그래. 그냥 분실신고를 하고 새 카드로 새해를 새 마음으로 시작하면 되지.라는 긍정적인 마음이 어디서 나왔는지 지갑을 잃어버린 15분 만에 분실신고를 하고 마음을 다독였다. 기분 좋게 붕어빵 먹으며 2020년을 마무리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서랍을 열었다. 현금이 하나도 없기에 동생한테 현금 만원을 빌려 신나는 발걸음으로 붕어빵집을 향했다. 아까만 해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는데 앞에 한 사람 다음엔 바로 내 차례다. 지갑 잃어버려놓고 신나게 붕어빵을 기다리는 내 모습에 웃음이 나와 웃고 있는데 붕어빵이 이제 끝났다는 아저씨의 말을 들었다.
나도 모르게 오늘 지갑을 잃어버렸고 현금도 없어서 집에서 동생에게 현금을 빌려 나온 거라고 안된다고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하였다. 정말 마지막 붕어빵이냐고 아쉽고 속상한 마음을 내비쳤더니 앞에 먼저 계셨던 아주머니께서 2마리도 괜찮으면 사가라고 양보를 해주셨다. 지갑도 잃어버렸는데 붕어빵까지 못 먹으면 엄청 속상했을 텐데 말이다.
만 원짜리를 내고 9천 원을 거슬러 받는데 아저씨가 살짝 짜증을 내셨다. 거스름돈 하려고 챙겨놓은 돈인데 또 바꾸러 가야 한다며 귀찮아졌다는 이야기에도 붕어빵을 양보해주신 아주머니의 마음이 고마워 웃으면서 죄송하다고 감사하단 말을 연신하고 복도 많이 받으시라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집에 와서 붕어빵 2마리를 가지런히 올려놓고 오늘의 일들을 떠올려보았다.
지갑이 10년 넘은 지갑이 아니라 아끼는 새 지갑이었다면 어땠을까?
지갑에 현금이 많이 있었다면 속상해하지 않았을까?
마지막에 붕어빵도 못 먹고 돌아왔으면 오늘 하루 정말 재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마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니 상황도 좋게 풀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며 기분이 좋아졌다.
내 기분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요즘 나는 되도록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올 땐 멀리서 내 감정을 지켜보고 툴툴 털어내며 감정은 내가 아니야 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다.
붕어빵 덕분에 빨리 지갑이 없어진지도 알았고 2021년 신축년 새해에는 새 카드와 새 지갑을 가지고 새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매 순간에 어떤 상황이든 감사하고 기뻐하며 좋은 감정들만 선택하는 한 해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