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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돌이 Apr 05. 2021

빠르게 절망하고 포기하는 일

요즘 내가 생각하는 내 문제점은 너무나 쉽고 빠르게 좌절하고 포기한다는 점이다. 


어제 난포가 예상만큼 자라지 않았다는 사실을 듣고 나도 놀랄 정도로 많이 상심했다. 툭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줄줄 났다. 기분을 전환해보려 해도 잠깐 뿐이고 다시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이러는 이유가 비단 '난포 크기'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회사에서의 일이 재미가 없다. 재미가 없는 이유는 버거워서 할 엄두가 안 나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는 덩치가 큰 프로젝트를 혼자서 진행해야 하는데, 지시사항만 있을 뿐 함께 편하게 고민하고 궁리하고 실제 업무를 나눠서 할 동료가 없다. 일을 나누지는 못해도 마음을 나눌 동료도 없다. 혼자서 고군분투할 에너지나 의욕 또한 없다. 


무슨 뜬금없는 주제 변경이냐 할 수도 있지만, 현재 나의 업무 슬럼프와 임신 시도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 


회사, 업무에 불만이 가득해 그만두고 싶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버티고 있는 중이다. 만약 임신, 출산을 하게 된다면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사용하려는 계획이었다. 물론 오롯이 그 목적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생물학적 나이와 커리어 모두 고려했을 때 지금이 적기라는 판단이었다. 그래서 더 초조한 것이다. 이렇게 계속 준비만 진행하고 계속 실패한다면 현 직장에서 업무를 내려놓을 수 있는 시기가 늦어지거나, 혹은 새로운 도전을 할 시기가 늦어지니....


만약 점점 더 늦어진다면? 늦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시험관 시술을 해야 한다면??


퇴사하고 싶다. 






가장 실망스러운 점은 이런 시련의 상황, 문제 해결이 필요한 상황에서 나는 언제나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뻗어버리는 선택을 한다는 점이다. 이런 나의 모습에 늘 실망하게 되는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더 효과적인 행동방식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행동으로 취하기가 어렵다. 


이런 파트너의 모습이 남편에게는 얼마나 한심하게 보이고, 믿음직스럽지 못해 보일까.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된다. 


가장 큰 괴로움은 이 마음인 것 같다. 


내가 봐도 사랑스럽지 않은 모습인데, 남편이 나를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






기분이 널을 뛴다. 


다 못할 거야, 안될 거야 생각하다가도, 이렇게 저렇게 해서 하면 될 것 같아!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아주 절망에 빠져있기도 하고 그런대로 괜찮기도 하고.


머리를 아주 차갑게 해야 한다. 


어제 결국 남편과 다퉜다. 나는 계속 무기력하고 우울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고, 남편은 계속 나를 북돋아주려고 했다. 나는 가끔은 그래 그러자! 힘을 내자!라고 했고, 대부분 퉁명스러운 상태로 개선되지 않는 남편의 상태를 비난했다. 뭐가 안됐고, 이래서 문제였고, 앞으로는 절대로 이래야만 해! 끝없이 몰아붙였다. 


결국, 남편이 너무 힘들다며 모든 의욕을 잃어버렸다. 그는 정말 영혼이 쏙 빨린 빈 껍데기처럼 이른 시간에 잠에 빠져버렸다. 


나를 상대하는 것이 그렇게 피곤하다는 얘기겠지.


예상하고, 우려했던 일이었지만 실제로 벌어지니 더 참담했다. 


그리고 아주 정신이 맑아졌다. 아 이렇게 함께 사는 사람을 말려 죽일 순 없어. 그를 이렇게 불행하게 놔둘 순 없어. 행복하게 해 주지는 못 해도 저렇게 힘에 부치다 못해 견딜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어서는 안 돼. 그에게 모든 것을 의지할 수는 없어. 금전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냉정하게 내 살 궁리를 해야 해.


축 처지고 울분에 차 있었던 마음에 생명력이 솟아나는 기분이었다. 

아이러니하다. 누군가를 결국 파괴한 후에야 내가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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