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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돌이 Apr 07. 2021

다시 또 초음파

난포가 자랐는지 확인하러 병원에 갔다.


바로 전 날 남편과 다툰지라, 오늘 난포 터지는 주사를 맞아서 오늘 밤에 숙제를 해야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제발 나와 자달라고 부탁해야 할까 걱정도 되었지만, 그게 대수랴 난포가 건강히 자라나기만 한다면 어떤 것도 나를 우울하게 만들 수 없을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소화도 잘 안되고 팽만감이 심해서 이건 또 무슨 신호일까 기대 반 체념 반으로 갔다.






초음파 화면에 크게 자라난 난포는 보이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마저 갸우뚱하게 만든 내 상태!


내막은 1센티 넘게 두꺼워졌는데 난포가 커지질 않았다. 분비물은 많아지고 있으니, 이틀 뒤에 다시 초음파로 확인해보자고 하셨다. 그동안 깜짝 배란이 되었을 리는 없을 것 같다고 하셨지만.... 선생님도 명확히 설명해주지는 못하셨다. 선생님은 50대 이상이셔서 경력도 많아 보이시니 난포를 못 찾으시거나 잘못된 해석을 하신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이 상태에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혹시 약을 더 먹는 건지 여쭤보니 지금 약을 더 먹을 수는 없다고 하셨다. 안 자라면 이번 사이클은 넘어가게 된다고... 카페나 블로그에서는 난포가 안 자라면 약을 더 먹거나 난포 키우는 주사를 맞는 경우도 많던데.... 일반 산부인과라 난임 병원처럼 적극적으로 인위적인 처치는 안 하시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 


저번처럼 큰 충격을 받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제저녁 머리가 차갑게 식는 일이 있기도 했고, 이제는 그냥 내 몸 상태가 정상에 근접해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됐다.


그렇지만 행복 회로는 또 나름대로 부지런히 돌아갔다.

가설 1) 완전 초기에 배란이 됐거나 지난번 진료 이후 깜짝 배란된 건 아닐까? 그래서 정자와 짠! 만난 것은 아닐지?? 그렇다기에는 그저께 해본 배란 테스트 수치가 너무 낮았지만, 배란 유도제도 먹었고, 다낭성 난소증후군인 사람은 배란테스트기가 정확하지 않다던데!!

가설 2) 난포가 더디게 자라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생리 주기가 긴 사람들. 나도 거기에 속해서 난포가 더디지만 열심히 자라서 종국에는 난포 터지는 주사를 맞고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기에는 지금 난포가 너무너무 작지만 말이다...


모든 가설에 부연설명이 너무 길다ㅎㅎㅎㅎㅎㅎㅎ






집에 돌아와서 남편과 산책을 하면서 다시 대화를 나누었다. 남편은 이제 겨우 시작단계인데 내가 너무 절절매고 스트레스받아서 짜증을 내는 것이 자신도 힘들다고 했다. 지금 당장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일은 차치하고 우리가 해볼 수 있는 것들을 차근차근해 나가자고 했다. 남편의 말에 나도 동의했다. 조금 더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길게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다른 사람의 난임 포스팅을 봤는데, 거의 1년 간 여러 우여곡절 끝에 결국 임신과 출산에 성공하신 분의 이야기였다. 이런 분들과 다른 많은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정말 아주 작은 경험과 노력을 한 것이겠구나 생각했다. 


그렇지만, 꼭 내가 그 모든 고난과 역경을 거쳐야 돼? 그리고, 고난과 역경을 거쳐도 실패할 수도 있잖아?


이런 불만과 불안감에서 어떻게 빠져나와야 하는 거지?






이틀 뒤, 토요일 이른 아침에 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봤지만, 난포는 자랄 기미가 없었다.


이번 사이클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걸로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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