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오전에 반차를 쓰고 병원에 갔다. 8시 30분 예약이라 출근할 때보다 일찍 나왔다. 아침부터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날이라도 좋으면 조금 기분이 산뜻 했을 텐데!
오늘은 초음파를 일단 보고, 나팔관 조영술이 가능한지 확인하고 가능하다면 나팔관 조영술을 하는 일정이었다. 워낙 나팔관 조영술에 대한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이 많아서 예약하고 나서부터 혼자 발발 떨고 있었다. 지난번 7시 반에 병원에 갔을 때와 확연히 다르게 8시가 넘은 시간에 가니 사람들이 꽤 많이 북적였다. 아마 앞뒤로 휴일이 있는 주여서 더 사람이 많았는지도 모르겠다.
초음파실은 참 아늑하기도 하고, 선생님들도 친절하셔서 그다지 무섭지 않다. 클로미펜을 2알씩 5일 먹고 초음파를 본 거였는데, 1.5 짜리 난포가 있었다. 그리고 내막 두께도 그리 얇지는 않은 편이었다. 초음파 볼 때에는 열심히 집중해서 수치도 기억하려고 하는데, 초음파실 문을 나서면 왜 이렇게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인지.....
초음파실을 나와 진료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자, 간호사 선생님께서 나팔관 조영술 가능하다고 하셔서 안내를 받았다. 시술 방법과 여러 부작용 등을 설명해주시니 또 가슴이 두근거렸다. 주사실에서 엉덩이 주사를 맞았는데, 오랜만에 겪는 주사 통증이었다. 근육 주사라 그런지 아주 뻐근하고, 그날 밤까지 엉덩이가 아팠다.
나팔관 조영술을 하는 곳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기다리는데, 너무 떨렸다. 엄청나게 아프다는데 잘 버틸 수 있을까ㅠㅠㅠ 혹시 나팔관이 너무 막혀있어서 더 아픈 건 아닐까ㅠㅠ
내 순서가 되어 엑스레이 기계가 있는 삭막해 보이는 공간에 들어갔다. 자세를 잡아주시고 조금 기다리게 하셨는데 마치 롤러코스터 타기 전처럼 떨렸다. 소독과 질경 삽입이 있었고, 선생님께서 불편해요~ 따끔해요~ 먼저 알려주시면서 하셔서 그다지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다. 질경도 그 전 산부인과에서 거의 매번 초음파실에서 했던 그 기구 같았다.
그리고 약을 넣는다고 하시고 아랫배가 아주 뻐근한 통증이 찾아왔다. 악! 소리도 나게 아팠다. 그러나 바로 2초 정도 후에 다 끝났다고 말씀해주셨고 그 통증은 서서히 가라앉았다. 내 예상보다 (울며 소리 지르셨다는 후기가 많았어서...) 훨씬 덜 아픈 편이었다. 그 후 현기증이 나거나 메슥거리지는 않는지 물어봐주셨고, 나는 딱히 그렇지는 않다고 말씀드리고 나오게 되었다.
나팔관이 막혀있으면 약물로 뚫어보시려고 하신다는데, 나는 바로 끝난 것을 보면 둘 다 잘 뚫려있나 봐! 희망찬 생각을 하며 진료실로 올라갔다.
진료실에서 만난 선생님은 나팔관이 잘 뚫려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아직 약에 반응은 없다며, 토요일에 다시 한번 초음파를 보자고 하셨다. 오잉 나는 1.5짜리를 본 것 같은데.... 아닌가?? 싶었지만.... 그래도 아직 터질 때는 안되었으니 조영술도 하고, 아무 말씀 없으신 거겠지 하며 알겠다고 했다. 약이나 주사를 더 주시지는 않았고, 이번에 온 김에 여러 가지 산전검사를 하자고 하셔서 채혈을 하고 가게 됐다.
채혈실 선생님도 친절하셨다. 약간 미안한 표정과 말투로 피를 많이 뽑아야 한다고 말씀해주셨다. 무려 9통! 나는 평소 혈관 찾고 피 뽑는 것에 큰 무리는 없는 편이라 수월하게 뽑았지만.... 9통이나 되니 시간이 아주 오래 걸렸다. 피가 쫄쫄 나와 용기로 들어가는 걸 보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이렇게 병원 방문 일정을 끝내니 오전 10시 30분이었다.
내 아까운 반차......
아침부터 긴장했던 탓인지, 병원을 나서자 되게 피곤하고 배가 고팠다. 그리고 날이 너무 스산하게 추워서 어딘가 따뜻한 곳에서 좀 쉬고 싶었다. 근처 카페에 가서 샌드위치로 요기를 하고, 오후 출근 시간까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아까 병원에서 대기할 때 잠깐잠깐 왜 그렇게 눈물이 날 것 같았는지..... 몇 번을 참아냈는지 모르겠다. 아니 왜 이 정도 일 가지고??? 눈물까지 날 일이야????라고 머리는 계속 생각하는데, 마음은 참 힘든가 보다. 이 정도 됐으면 병원도 익숙해졌고 내 상황도 받아들일 법 한데, 왜 이러는 걸까. 적응에 시간이 조금 걸리는 걸까. 참 미련하다 미련해.
카페에서도 계속 잠이 오고, 통창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도 흐리흐리하고 기분이 막 좋아지지는 않았다. 작정하고 몇 분간은 잠을 자고, 시간에 맞춰 자리를 떠 회사로 출발했다.
이번 주 금요일에는 사실 우리 부모님이 우리 집에 오시기로 하셨다. 같이 저녁 먹고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토요일에 가시는 일정인데, 토요일 아침 병원 예약이 있으니 이제 내가 난임 병원에 다니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게 됐다. 이제까지는 일단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었고, 부모님 걱정하실까 괜히 조용히 있었던 건데....
말씀드리면 또 우리 걱정 왕 엄마가 너무너무 걱정하실까 봐 걱정이고, 내가 퉁명스럽게 말씀드리거나, 아니면 징징 울면서 말씀드리게 될까 봐 또 걱정이다. 아 나 정말 우리 엄마 딸이다. 걱정이 너무 많아!
나부터가 별 거 아니야! 그냥 조금 확실히 빨리 진행하고 싶어서 병원 도움을 받고 있어! 더 해보고 안되면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을 생각해보려고!
밝고 긍정적으로 말씀드려야 부모님도 내가 사실 깊게 좌절하고 우울해하는지 모르고, 걱정도 안 하실 것 같다. 연습해야 할 것 같다. 그 주제만 생각해도 아직은 울적하고 눈물이 날 것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