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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돌이 Jun 03. 2021

또 실패!

또 실패를 맛봤다!


참고 참다 긍정적인 분위기의 글을 올린 지 하루 만에 생리가 터져버렸다. 거의 나만 보는 일기장 같은 브런치이지만 저렇게 기대에 들뜬 내 모습이 드러난 것이 참 창피했다. 


아 또다시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다니. 성공의 보장도 없고.....!!


가장 절망한 포인트는, 휴직할 수 있는 시점이 또 연기된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 이 일을 하고 싶지 않은데, 합법적(?)으로 일을 안 해도 되는 시기가 미뤄진다는 게 너무 싫었다. 임신을 기다리면서 즐겁게 했던 일 중 하나는 언제 출산휴가를 시작할 수 있는지 달력을 보며 세어보는 일이었다. 


이제 의심이 된다. 내가 임신하고자 하는 원 앤 온리 이유가 혹시 휴직을 하기 위해서인가?


그리고 모든 것이 하기 싫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이렇게 목표의식 없이 살아도 되는 걸까? 너무 한심한 것 아니야?? 고작 임신하고 싶은 이유가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써서 일을 안 하려는 거야??


다른 사람들도 각자 어려움과 고민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난임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직장생활을 잘하고 있는데, 나만 왜 이렇게 나약하고 책임감이 없지?


이런 생각들이 또 들었다. 


너무 내가 바보 같다. 


글로 써놓으니 왠지 또 내가 너무 내 탓만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이 일에서는 남 탓을 할 수가 없는걸.


얼마 전 구직 중인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최종면접까지 갔는데도 기혼여성이라는 이유로 '임신해서 쉰다고 할까 봐 못 뽑겠다.'는 사유로 번번이 탈락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물론 요즘 세상에 저런 사유를 대놓고 말하는 회사가 있을까 싶고, 후배의 과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저게 현실이다. 부끄럽지만 나도 채용을 담당할 때 저런 이유를 대며 우수한 후보자를 탈락시키는 상사 앞에서 입도 뻥긋 못한 것이 사실이다. 


지금 아무 소속 없이 사회에서 잠시 떨어져 나온다는 것은, 다시 진입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운 좋게 이직을 한다고 해도, 내가 임신을 이제 바라지 않는다! 하지 않겠다! 피임하겠다!라고 굳게 다짐하지 않는 이상 임신 가능성은 늘 열려있고 갑작스럽게 육아휴직을 쓰게 되는 것이 당연히 달갑지 않을 것이다. 


 




오전을 계속 무기력하게 보냈다. 생리통 핑계를 대면서. 

집안이 더러워도 치우고 싶은 마음과 의욕도 들지 않았다. 


앞으로 나의 인생, 밥벌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진심으로.





 

이제 마음을 놓는다는 것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괜히 걱정하면서 커피, 술 멀리하고, 먹게 되었을 때 괜히 심한 죄책감을 느끼면서 스트레스받는 일을 없게 해야겠다. 그러고 싶다. 그렇게 평범하게 살면서 평범하게 임신을 기다려야겠다. 마치 계획하지 않은 사람처럼. 


아마 남편이 원하는 그림이 위의 것일 거라고, 이제야 이해가 된다. 


아니, 계획하고 약 먹고 주사 맞고 있는데 어떻게 마음을 편히 가져? 그게 돼??라고 생각조차 해보려고 하지 않았었는데, 그냥 조금만 내려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니, 뭔가 '늦었다'라는 생각은 아예 가지지 말기로 하자. 






토요일에 병원에 갈 수 있어서 나는 정말 정말 기뻤다. 그나마 우울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였다. 목요일날 생리를 시작해줘서 고맙다고 하고 싶다. 내 장한 난소......


토요일 아침 병원은 정말 혼잡하다. 사람이 많은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우리 부부에게, 특히 남편에게는 정말 어려운 공간이다. 


다행히 남편의 검사 결과는 큰 이상 없음으로 나왔다. 선생님께서도 아직 내 나이가 젊으니 자연 수정을 계속해보자고 하셨다. 병원 오기 전에 우리끼리 나눴던 이야기와 맥락이 같아서 다행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언제나와 같이 같은 약을 처방받고 나왔다. 아, 그리고 지난번에 못했던 피검사를 위해 채혈도 하고 나왔다. 대부분의 호르몬 검사이던데... 잘 나올는지 모르겠다. 


위에 말한 것처럼 조금 가볍게 지내고 싶다. 슬슬 산책하고, 먹고 싶은 것 먹고... 그러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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