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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돌이 Jun 09. 2021

익숙한 일상

토요일에 받아온 클로미펜을 두 알씩 5일 동안 먹었다. 클로미펜은 배란 유도를 시작하면서부터 먹어온 약인데, 이번이 4번째 복용이다. 처음에는 한 알씩 먹었고, 두 번째부터는 약 한 알로는 반응이 없어서 두 알로 늘린 후 배주사까지 병행해서 난포를 키우고 있다. 이번에 처방해주실 때 선생님께서 이전에 먹었을 때 특별히 힘든 점은 없는지 물어봐주셨고, 나는 별다른 부작용은 느끼지 못했어서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약을 먹은 지 4일째 되는 날부터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즈음 회사 일로 고민도 많고 스트레스도 적잖이 받았던 터라, 그냥 컨디션이 안 좋은가 보다고 생각했다. 퇴근 후 저녁 겨우 챙겨 먹고 잠들어서 다음날 아침에 깼다. 약을 먹고 푹 자고 일어났는데도 머리가 무거웠다. 그날도 아침에 클로미펜을 챙겨 먹고, 두통약도 챙겨 먹고 회사에 출근했다. 


아침에 빈속에 먹은 약은 두통에는 효과가 없고 속만 아프게 만들었다. 기운이 없다가도 회사 가서 활동하다 보면 컨디션이 나아질 때도 있는데, 그날은 머리도 깨질 듯이 아프고 속도 너무 좋지 않은 상태가 계속되었다. 이게 클로미펜 때문인지, 스트레스 때문인지, 두통약을 잘못 먹어서 그런 건지 도통 알 수 없었고 정신도 너무 없었다. 


11시 30분쯤까지 업무를 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연차를 쓴다고 말씀드렸다. 반차 퇴근 시간인 두시까지 참을 수도 없었다. 정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죽으로 점심을 먹고 두통약도 먹고 바로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죽을 먹으니 좀 살 것 같았다..... 배고파서 컨디션이 안 좋았던 건가.. 출근하고 두 시간 넘게 일해서 연차가 너무너무 아까웠지만, 그래도 누워있을 수 있어서 잘한 선택이었다고 나를 다독였다. 그 후 계속 자면서 나아지기를 바랐고, 저녁 즈음이 되자 조금 머리가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다행히 클로미펜 복용은 끝나서 다음날부터는 그래도 조금 나아진 상태로 지낼 수 있었다. 이런 고통을 겪고 나자 클로미펜 복용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혹시 다음번에도 배란 유도를 하게 된다면 약을 바꿔야 할까.... 조금 무서워졌다. 






토요일에 일주일 만에 다시 병원에 갔다. 8시 30분 예약에 맞춰서 갔더니 세상에..... 초음파 검사 대기가 28명이었다. 주차 중인 남편에게는 아예 병원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고, 북적북적한 대기실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지난주 토요일보다 더 붐비는 느낌이었고, 나중에는 관계자께서 환자가 아닌 보호자는 나가서 대기해달라고 안내까지 하실 정도였다. 기다리는 도중에는 대기 인원이 45명까지 올라간 것도 봤다. 


대기를 견뎌내고 초음파실에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내 자궁을 관찰했다. 아직은 작은 난포들이 보였고, 내막은 그리 얇지는 않은 것 같았다. 매번 왼쪽 난소는 잘 보이지 않아 선생님들이 배를 누르며 애를 쓰신다. 나중에 여쭤보니 왼쪽 난소가 자궁 쪽에 붙어있어 보기가 어렵다고 하셨다. 기능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하며 안도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병원 선생님들도 참 고생이 많으시다. 매번 이른 아침부터 쉴 새 없이 들어오는 환자들을 보려면 이 정도로 친절하신 것도 참 대단하시다고 생각한다. 


진료실 대기는 별로 없어서 바로 다음 순서로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선생님은 약에 반응하여 난포가 자라고 있고, 늘 그랬듯이 주사로 더 키우자고 하셨다. 이제는 내가 평일 내원이 힘들다는 것도 아셔서 수요일 아침 진료로 잡아주셔서 마음이 정말 편안했다. 이번 사이클은 결과와는 상관없이 반차를 쓰지 않는다는 것만 해도 참 좋다^^. 대기 환자가 별로 없는 것을 봤는데도, 이 병원 진료실에서는 마음이 조급하다. 이 날도 진료실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여쭤봐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난번 피검사 결과를 여쭤보는 걸 까먹었다. 쫓기듯이 나와서 간호사 선생님 말씀을 듣고 주사실에서 주사를 맞고 병원을 나왔다. 


다시 주사로 아침을 맞는 일상을 시작하게 되었다. 






생리를 시작하고, 클로미펜을 먹는 지난 일주일 반 정도는 계속 컨디션이 침체되어 있었다. 뭐 언제는 활기차고 에너지 넘쳤냐마는, 기분도 우울한 편이었고, 몸도 상태가 좋지 않았고, 무기력도 심했다. 저녁은 맨날 외식이나 배달음식이었고, 집안 청소나 정리에도 충실하지 못했다. 그나마 금요일 저녁에 반가운 얼굴을 만나는 약속이 있었고, 일요일에 부모님이 오셔서 청소를 열심히 하긴 했다.  


엇, 쓰다 보니 그래도 마냥 처져있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몸이 안 좋아 하루 푹 쉬긴 했지만 금요일 보고에서는 일단 좋은 피드백을 얻기도 했고, 퇴근 후 사회활동도 한 번 했고, 토요일에는 손님맞이를 위해 집안 정리도 열심히 했고, 일요일에는 가족모임도 갔다 왔다. 


늘 뭔가 나에게 부족해, 더 열심히 무언가를 해야 해, 생산성이 없어 등등 못살게 구는 생각과 말만 하는 것 같다. 나에게 더 너그러워져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글을 쓰면서조차 '내가 뭘 그렇게 야박하게 굴었어? 이룬 것이나 잘하는 것이 없는 게 사실이고 현실 아니야?'라는 내면의 소리가 들려온다ㅎㅎㅎ)


아무튼 나 자신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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