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까지는 클로미펜 복용, 폴리트롭 주사 중 갖은 증상을 겪고, 기록해놓았다. 조금만 배가 꾸루룩 거려도 기록, 조금만 현기증이 나도 기록, 조금만 졸려도 기록, 더워도 기록, 추워도 기록.
이제는 무뎌져서 그런지 증상이 아예 느껴지지 않는다. 저번 주 클로미펜 복용 후 극심한 두통을 제외하고는.... 내가 이제 신경을 덜 써서 그런 건지 아니면 실제로 몸이 적응해서 별다른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주사를 4번 맞고, 수요일에 아침 진료를 보러 병원에 갔다. 초음파 결과를 보시더니 약을 먹고 하나만 자라는 것처럼 보였던 난포가, 주사로 인해서 4개가 자랐다고 하셨다. 그런데 아직 크기는 완전히 다 크지 않아서 주사를 두 번 더 놓고 다시 병원에 확인하러 오라고 하셨다. 난포가 약이나 주사에 반응하지 않아서 자라지 않는 일은 벌어지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다시 병원 갈 날이 다가올 때쯤, 지난번 주기로 예측해봤을 때 슬슬 배란일이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했다. 남편과 숙제 날을 계획해놓았는데, 그날 퇴근하면서 엄청난 피로감이 몰려왔다. 겨우겨우 저녁은 차려 먹고 남편이 설거지하며 뒷정리를 할 때 나는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소파에서 자는 나를 침대로 보내면서 남편이 10시에 깨워주겠다고 했다. 나는 두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면 힘이 날 것 같은 느낌에 그러자고 했다. 그런데 남편이 나를 흔들어 깨운 것은 11시였다. 나는 계획을 짜고 행동하는 걸 좋아해서... 이렇게 계획이 틀어지면 의욕을 잃게 된다. 그리고 피로가 풀린 느낌도 들지 않아서 계속 자버리고 말았다.
눈이 떠진 건 새벽 한 시. 남편도 옆에서 쿨쿨 자고 있었다. 약속한 날인데 씻지도 않고 먼저 잠든 건 나였으면서, 야속함이 밀려왔다. 겨우 씻고, 잠든 남편을 흔들면서 원망을 쏟아냈지만, 깊이 잠든 남편을 깨울 수는 없었다. 아침에 눈 뜨고 다시 나를 10시에 깨우지 않은 남편을 나무랐다. 남편 입장에서는 먼저 잠든 게 누구인데 내 탓을 하나 싶어 억울했을 것이다.
가라앉은 기분으로 출근 준비를 하다 보니 머리까지 아파왔다. 화를 버럭 내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고 남편도 기분이 상한 것은 아니었지만 축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그리고 어젯밤부터 시작된 묘한 복통.... 난포가 여러 개 자라면서 나타나는 증상인 것 같다. 마음도 축 가라앉고 몸도 기운 없이 나풀거렸다.
이렇게 일희일비하는 롤러코스터 같은 기분을 그만 느끼고 싶다. 마음 같아서는 정신과 약의 도움을 받아서 평안한 마음으로 지내고 싶은데, 임신 준비를 하니 그런 시도도 못해보고.
이제 감정 기복이 임신 준비 때문에 복용한 호르몬 약 때문인지, 내 기본 성정이 그랬는지조차 기억이 안 난다. 나는 원래 어떤 사람이었지??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한다. 남들도 자연적인 호르몬 변화로 PMS도 겪고 생리 중 괴로움도 느끼고 하는데 나만 더 과하게 받아들이는 것 아닐까. 다 이 정도의 고-저를 겪는데 나만 더 허우적거리면서 스스로 힘을 빼고 있는 것 아닐까?
그렇지만 남들이 다 무슨 소용이야. 주관적인 내 기분과 감정이 더 중요하지.
정말 혼란스러운 날들이다.
명상에 관한 글을 읽다가 '정이(程頤)'라는 학자가 마음을 물병으로 비유한 것을 접하게 됐다. 빈 병(마음)을 강물(세상)에 던져놓고 물(상념)이 들어오지 않을 리가 없다고 설명하면서, 근심을 떨치기 위한 방법으로 마음을 채우는 것을 제안하였다. 따라서 '마음을 비우라'는 말만큼 잘못된 말이 없다고 봤다. 요즘 마음이 복잡해지고 괜한 기대를 갖게 되면 이후에 실망하게 되니 자꾸만 '마음을 비우자'라고 다짐하게 되는데, 말처럼 쉽지가 않고, 그러니 달성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위의 내용이 참 마음에 와닿았다.
그러나 '마음을 채우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자꾸 딴생각하지 말고 현재에 집중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열중하자고도 다짐했지만, 계속 내 현재 상태에 대한 불만으로 현재에 몰입하지 못하고 있다. 임신 준비도 그렇고 내 커리어에 대한 고민도 그렇고 계속 정처 없이 떠 다니고 있는 상태이다.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해결이 가능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