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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돌이 Jun 28. 2021

무제 2

어제까지만 해도 간간히 있던 배의 통증이 거짓말처럼 완전히 사라졌다. 어제는 아랫배가 쑤시고 퇴근 즈음에는 가스도 많이 찼었다. 퇴근길을 힘차게 걷기가 힘들어서 정말 거북이처럼 걸을 정도로.... 그렇지만 이건 오래 앉아있어서 소화가 잘 안돼서 그런 것일 수도 있으니 의심할만한 증상이라고 하기에는 뭣하다.


통증이 멈추고 또 '착상통 시기', '착상통 기간' 폭풍 검색하고 틈만 나면 카페에서 글을 읽고 있다. 제발 착상이 무사히 되어서 착상통이 멈춘 것이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착상이 되어 임신 테스트 두 줄을 확인하고도 화학적 유산이 바로 되는 경우도 많던데, 만약 착상이 된 거라면 착 잘 달라붙어 있어 주기를!!!!






배란 추정 12일째 새벽. 10시에 씻지도 않고 잠들어버려서 잠이 깬 김에 씻고 소파에서 잠시 누워 있었다. 생리통 같은 기분이 묘한 통증이 있었다. 아침에 잠을 깨서도 똑같은 통증이 있어서 남편에게 아무래도 생리를 시작할 것 같다고 얘기했다....

아침에 회사에 출근하고 화장실에 가니 옅은 갈색의 분비물이 보였다. 아...!! 제발!! 


갈색 냉, 착상혈 폭풍 검색... 제발 착상혈이기를...


나는 대체로 생리 시작이 바로 터지는 거니까! 생리 전조가 아니라 착상혈이지 않을까??!!!

점심시간에 나가서 임신테스트기 사 올까?!!


혼자 머릿속에서 분주하게 생각이 돌아갔다. 그렇지만 회사에서 중간에 큰 실망을 하고 마음을 다스릴 자신이 없어서 테스트는 퇴근 후에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도 퇴근할 때까지는 분비물 양이 많아지지 않아서 조금은 기대하기도 했다. 






퇴근한 후 저녁에 남편과 함께 지인들과 약속이 있어서 즐겁게 먹고 떠들다 집에 들어왔다. 마음을 먹고 남편에게 지금 테스트해서 착상혈인지 생리혈인지 확인해보겠다고 말한 후 화장실에 들어갔다. 결과는 정말 완벽한 한 줄!!! 나와서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면서 생리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사실 점심에 회사에서 혼자 울컥울컥 울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서, 집에서 결과 확인하고 나면 그냥 시원하게 한 번 울어버리고 털어내자!!라고 다짐했는데, 습관이 된 것인지 시원하게 울기는커녕 처량하게 질질 짜는 모양새가 되었다. 남편이 다독여주면서 '언젠가는 올 거야. 다 때가 있는데 아직은 아닌가 봐.' 하며 위로해주었지만 내 절망은 '지금 빨리 와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오기 때문에........


울면서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가 다니기 싫다고 말했다. 남편은 갑자기 전혀 다른 주제가 나왔다고 생각했는지 당황해하면서 달래줬다. 여러 가지를 물어봐 주었는데 나는 끅끅대느라 제대로 답도 못하고.... '그럼 회사 그만두고 잠시 쉬면서 이직할까?'라고 물어봐 주었는데 '그러면 임신을 못하잖아.'라고 대답하면서 엉엉 울었다.


남편은 내가 회사 문제로 빨리 임신을 원하는 것인지 처음 알았다며, 앞으로는 그런 이야기는 함께 빨리 나누자고 상냥하게 말해줬다. 나는 나름대로 이전에 이직에 대해서도 얘기하고(이직이 하고 싶고 제의도 있지만 임신을 위해서는 지금은 적기가 아닌 것 같다), 임신이 지금 인생의 주요 과업이며, 이 단계가 끝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등의 이야기들을 나눴기에 남편도 나의 조급함을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남편은 그냥 내가 평온하게 지내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걸까. 






현실적으로 지금 그만두거나 이직을 하는 것은.... 내가 임신에 대해 아예 마음을 놓지 않는 이상 불가하다. 특히 그냥 그만두는 것은 경력 단절도 되기 쉽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이 생기니....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마음을 좀 잘 다잡고 회사를 다녀야 하는데, 맨날 견딘다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다니니 몸 컨디션이 좋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알면서도 이직 정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나..... 그래 봤자 좋지 않은 피드백이 더 많고, 좋은 피드백의 회사들도 이것저것 망설이면서 면접조차 가지 않았다. 점점 더 두려워진다. 앞으로 더 연차가 쌓이는데 불러주는 곳은 더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고, 당연히 임신 준비에도 안 좋을 텐데 이렇게 매일 사서 걱정을 하고 셀프 스트레스를 받으니 잘 될 수가 없을 것 같다. 


점점 나락으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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